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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애소설 <임마뉴엘 부인>에 대하여…
[0호] 2008년 07월 10일 (목) 00:00:00 마광수 기자
성애소설 <임마뉴엘 부인>에 대하여…

1960년대에 이르러, 부부간에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오히려 ‘불륜’을 당당하게 쾌락으로 이용하는 소설이 나타났다. 바로 프랑스의 여류작가 임마뉴엘 아루상이 쓴 <임마뉴엘 부인>이다. 임마뉴엘 아루상이 쓴 <임마뉴엘 부인>(Emmanuelle)은 영화로 더 유명해진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60년대에 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성 혁명서’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임마뉴엘 부인>에서는 새로운 성철학을 제시한다. 우선 ‘불륜’을 성적 쾌락의 증진작용을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상투적인 삽입성교뿐만이 아니라, ‘관능적 상상력’에 의한 여러 가지의 ‘특이한 성취향’(지금까지 ‘변태’로 불렸던)이 모두 다 성적 쾌감의 증진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이 작품을 나는 우선 영화로 보았다. 그런데 기대했던 것보다는 너무 단조롭고 상투적이어서 실망했다. 그러다가 원작소설을 구해보고 이 작품이 진짜로 의도하고 있는 주제의 핵심을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임마뉴엘은 20대 후반의 유부녀이다. 그러나 남편의 흔쾌한 동의하에 동성연애, 그룹섹스 등을 마음껏 연습해본다. 그녀의 남편은 자기의 친구가 방문했을 때 자기 아내 임마뉴엘을 친구의 섹스 파트너로 제공할 만큼 파격적인 성관(性觀)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임마뉴엘의 여자친구들과도 태연하게 성관계를 갖는다. 그러면서도 부부간의 애정에 절대로 금이 가지 않는다는 것이 이 소설이 갖는 특색 있는 설정이다.

임마뉴엘은 또 성철학자인 마리오라는 남자를 만나 새로운 성의식을 습득해나간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관능적 상상의 해방’이다. 상투적인 삽입성교만 하기보다는 차라리 뭇 이성(異性)을 상상하며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마리오는 관능적 상상력이야말로 섹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성해방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관능적 상상력의 해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력’보다는 ‘정열’이 중요한 것이고, 가장 잘 듣는 최음제는 비아그라가 아니라 성적 상상이라는 것을 나는 늘 주장해왔다. 그러던 차에 읽게 된 것이 이 소설이어서 나는 큰 공감을 느꼈다. 서구의 ‘섹스혁명’에 불을 당 긴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임마뉴엘 부인>에서 특이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토록 자유로운 섹스를 부르짖으면서도 결혼제도를 용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각자 바람피우기를 허락하는 결혼이라고는 하나 어쩐지 찜찜한 기분이 든다. 이런 점이 이 소설의 결함이다. 내가 보기에 결혼제도는 마땅히 없어져야만 할 ‘악(惡)’이다. 프리섹스의 실천만이 인류를 권태와 가학(加虐)의 질곡에서 구해줄 수 있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쨌든 ‘불륜’을 용인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대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장편소설 <임마뉴엘 부인>이 프랑스에서 처음 출판된 것은 1963년이다. 그때 초판본의 표지에는 타이틀만 쓰여 졌을 뿐, 저자의 이름은 인쇄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담하고 유니크한 내용은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크게 인정을 받았고, 문단에서도 큰 화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과연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가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는데, 1968년에 다시 중판되면서 저자의 이름이 밝혀지게 된다. ‘임마누엘 아루상’이라는 여성이 바로 <임마누엘 부인>의 저자였는데, 이 책이 바로 자신의 자서전적 소설이라고 저자 자신이 설명함으로써 프랑스 문단에 더욱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새로운 성철학을 제시해준 위대한 소설

만약 이 소설이 평범한 에로소설이었다면 이만큼 대단한 평판과 화제의 대상이 되었을 리 없다. 이 작품이 독자에게 주는 가장 큰 매력은, 과거의 에로소설들이 단순히 리얼한 성행위 묘사나 리얼한 성심리, 특히 도착적(倒錯的) 성심리의 해부에 주안점을 두고 쓰여진 데 비해서, 이 작품은 그러한 에로틱한 성행위나 성심리 묘사의 차원을 뛰어넘어 불륜과 변태와 퇴폐를 인정하는 새로운 성철학을 제시해주었다는 점에 있다.

세계적 권위지인 <뉴욕타임즈>의 서평란에서도 “<임마누엘 부인>은 평범한 에로소설의 범주를 뛰어넘는 신선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은 작품 속에 숨겨진 새 시대의 연애론을 전개한 일종의 철학서이다”라고 극찬할 정도였다.
이 작품은 또한 <마타하리>, <채털리부인의 사랑> 등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실비아 크리스텔의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책보다도 오히려 더한 파문을 영화계에 불러일으켰다. 리얼한 성묘사 장면으로 인해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무삭제 필름이 개봉되지 못했지만, 비디오로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영화는 1부가 성공하자 연이어 2, 3, 4부가 잇달아 제작되었으며, 지금도 여주인공을 다른 캐스트로 바꾸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또 <옐로우 임마누엘>, <이집트의 임마누엘> 등 유사품이 나왔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소설 <임마누엘 부인>에서 스토리는 별의미가 없다. 20대 초반의 기혼녀 임마누엘이 방콕에 근무하는 남편을 찾아가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하여, 비행기 안에서 미지의 남성과 벌이는 충동적이고 원시적인 정사(情事), 그리고 방콕에 도착하여 여러 남녀들과 어울려 벌이는 동성연애와 혼외정사 등이 삽화식 구성으로 나열되어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들은 임마누엘 부인과 그의 남편 잔, 임마누엘에게 레즈비언으로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을 가르쳐준 여자친구 마리안느, 그리고 임마누엘을 새로운 성철학에 눈뜨게 하는 역할을 하는 신비의 사나이 마리오 등인데, 이들 가운데 이 소설의 핵심적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인 마리오가 가장 직접적으로 작가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임마누엘은 관능적 상상력과 고혹적인 미모를 아울러 함께 타고난 여성이다. 그녀는 ‘성적쾌감’이야말로 인간의 행복을 좌우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으로 절대적인 가치라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그러한 아이덴티티(identity)에 대한 확실한 철학적 기반과 확신은 없었다. 그러다가 동양 특유의 자유롭고 신비한 관능적 판타지들이 넘실대는 타일랜드의 수도 방콕에 와서, 여러 친구들과 개방적으로 접촉하면서 가지는 색다른 체험을 통하여 차츰 더 대담하고 적극적인 성녀(性女)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처음 배운 것은 ‘동성간의 연애’와 ‘이성간의 연애’가 한꺼번에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여자친구 마리안느를 통하여 레즈비언으로서의 즐거움과 마스터베이션(자위행위)의 쾌감을 습득하게 되고, 그러한 변신은 남편 잔을 분노하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쁘게 한다.

이 소설에서 임마누엘의 남편 잔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그는 임마누엘을 단지 소유하려고만 하지 않고 그녀의 새로운 ‘성적 자아’를 아낌없이 일깨워주고 후원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자기의 친구가 찾아왔을 때 친구에게 자기 부인을 섹스 파트너로 제공하기까지 한다. 또한 그는 관음증적 쾌감을 즐겨 임마누엘이 여자친구와 벌이는 동성애적 페팅(petting)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고, 또 가끔 그녀들과 함께 어우러져 1대 2의 러브게임을 즐긴다. 그는 임마누엘을 가장 개방적이고 당당한 ‘창녀’로 만드는 것을 생의 기쁨으로 여기는 남자이다.

레즈비언으로서의 기쁨과 마스터베이션을 할 때 얻는 기쁨이 이 소설에서는 같은 종류의 쾌감으로, 여성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오르가슴의 원천으로 강조된다. 말하자면 남성성기의 삽입에 의한 정상적인 성행위는 오히려 관능적 상상력을 차단시켜 진짜 황홀한 오르가슴을 선사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들끼리 벌이는 동성애적 페팅은 남성호모들끼리 하는 항문성교처럼 페니스의 삽입행위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고, 순수한 피부접촉과 혀를 통한 애무를 위주로 하는 것이어서 더욱 신선한 쾌감을 준다. 말하자면 ‘자연적인 섹스’가 아니라 ‘반(反)자연적인 섹스’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다는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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