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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보] 숙의민주주의로 대의제의 완성 고민할 때숙의 민주주의, 갈등 해법의 새로운 대안으로 볼 수 있는가 1
정경NEWS | 승인 2017.12.28 16:31|(205호)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3개월에 걸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해 공사 재개로 결론이 났다. 공론화위원회가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실험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출범 당시부터 법적 근거를 둘러싸고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고 여론 정치라는 비판도 받았다. 12월 특집에서는 찬반 갈등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거치는 ‘숙의민주주의’가 갈등 해법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은재호 선임연구위원 / 한국행정연구원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론화가 끝났다. 어떤 이들에게는 집단지성의 가능성을 본 ‘감격적인’ 순간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신조어)’의 ‘정치 쇼’에 불과했다. 원전 공론화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양극단으로 널뛰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풍이 끝난 뒷자리를 정리하는 것은 또 다른 소풍을 준비하는 자들의 몫이다. 공론화란 무엇이고, 공론화의 어떤 것이 집단지성의 발현을 가능하게 하는지 하나씩 짚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론화가 집단지성의 가능성을 담고 있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며, 그것이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장치와 인내가 필요하다.
공론화(公論化)란 ‘공론에 부치다’라는 표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여럿이 모여 함께 의논하는 것을 의미한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표현을 빌리면 ‘사적 개인과 공적 의제를 매개하는 공론장(公論場)의 형성과정’이 공론화다. 여기에서 공론장이란 사회 현안에 대해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숙의(熟議)하며 국민과 정치권, 국민과 정부가 소통할 수 있는 공적 공간을 의미한다. 알고 보면 새로울 것도 이상할 것도 없는 개념, 공론화는 공청회의 다른 말이다. 다만, 끼리끼리 모여서 일방적인 자기주장으로 끝나는 풍성한 말잔치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공청회의 전부라면 공론화에 이용되는 학습과 토론 기술은 다양하다. 합의회의, 시민배심원제, 시나리오 워크숍, 규제협상, 공론조사 등 거의 한 세기에 걸쳐 각국의 고유한 사회적 구조와 맥락 속에서 잉태된 ‘참여적 의사결정 기법’이 그 근간을 이룬다.
어느 기법이 좋은지는 공론화의 목적, 이슈 성격, 참여자의 특성, 시간적 여유, 예산 규모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공론화에 한 가지 형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에 따라 다양한 기법으로 분화될 수 있다. 어느 경우든 공론화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숙의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알아가는 일련의 소통 과정이자 관계 관리 과정이다.
 
공론화의 숙의 기제
현대적 의미의 공론화가 과거 공론화와 차별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핵심원리 때문이다. 참여자들 사이의 정치적 평등성과 숙의성이 그것이다. 정치적 평등성이란 참여자들의 관계가 어떤 형태로든 계서화되지 않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특정인의 의견에 가중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의견을 동일하게 취급함을 의미한다.
이는 토론 과정에서 상대방의 기호와 선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해 대화 과정에서 내가 가진 판단기준(즉, 자신의 합리성)을 내려놓고 대화를 통해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즉, 내 의견을 되돌아보는 성찰성)을 높인다. 참여자들 사이의 평등성은 이렇게 성찰성을 극대화하여 선호전환을 용이하게 해 합의형성이 더 쉽게 이루어지게 하는 공론화의 핵심요소다.
숙의성이란 특정 규범과 규칙을 선호하는 다양한 주체(성)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을 일컫는다. 이미 선행학습을 통해 윤리적·정치적 입장이 형성된 개인들이 자신이 가진 애초의 입장을 내려놓으며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경험적 성찰과 반성적 사고를 거듭할수록 자신의 오류를 수정하며 의견을 바꾸는 성찰적 변화가 자주 관찰된다. 참여자들 사이의 평등성에 이어 숙의성이야말로 성찰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또 하나의 원리다.
정치적 평등성이 숙의성과 결합되지 않을 때 포퓰리즘이 나타난다. 숙의성은 공론화가 포퓰리즘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는 핵심요소다. 다수결에 의존하는 투표가 아니라 숙의성에 의존하는 공론화를 통해 정론을 형성하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에 대항하는 공적 이성의 승리다.
 
공론화와 대의제의 충돌 우려는 기우 
위 두 가지 핵심원리를 소홀히 하거나 왜곡할 때 공론화는 언제든지 ‘답정너’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위 두 가지 원리를 충실히 재현할 때 공론화는 숙의민주주의의 네 가지 장점을 온전히 재현할 수 있다. ①숙의 토론은 경쟁을 조장하기 보다 공감을 형성하고 확장시
켜 상호이해와 사회적 유대를 증진한다. ②이 과정에서 타인의 생각을 포용하며 자기가 가진 애초의 의견을 수정하는 선호전환이 이루어져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이 커진다.③이때 여자들의 효능감과 책임감이 높아져 정책의 정당성과 수용성도 높아진다. ④이는 다시 사회적 신뢰를 증진하고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협력을 증진시켜 사회갈등을 예방하는 한편, 사회적 거래비용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 공론화가 대의민주주의와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이것은 기우다. 근대 민주주의의 시원에서부터 대의제의 양대 기둥은 의회와 공론장이었다. 대의제의 공식적인 제도화가 의회라면, 공론장은 비공식적 제도로 남아정당과 의회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다. 선거구 획정, 선거제도와 권력구조 개편 등, 정치적 이해관계가첨예하게 부딪쳐 의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의제일수록 공론화를 통해 대의민주주의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 1987년 9차 개헌이 이뤄진 지 만 30년이 되고 촛불 시민혁명이 한 돌을 맞는 지금은 대의제의 훼손을 우려할 때가 아니라 대의제의 완성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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