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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서예가 정도준 “선 하나 얻는데 평생 걸렸죠예술의전당서 `필획과 구조`展… 이순신 명언·천지인 대표작 등 90여점
매일경제 이향휘 기자 기고 | 승인 2017.06.22 16:21|(203호)
“글씨 인생으로는 이제 환갑 지나…서예 읽으려 애쓰지 말고 그냥 보세요”소년 문장가는 있어도 소년 서예가는 없다.’
예부터 전해져 오는 말이다. 젊은 나이에 훌륭한 문장은 가능하지만 서예라는 영역에서 경지에 오르려면 유독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얘기다. 추사 김정희도 50~60대 제주도 유배 시절에 추사체를 완성하지 않았나. 여기에 칠순 서예가가 있다. 좋은 선(線) 하나 얻는데 무려 평생이 걸렸다는 이 남자. 4년 전 온몸에 파스를 붙여가며 10m짜리, 무려 2500자나 되는 숭례문 상량문을 고투 속에 써 내려간 소헌(紹軒) 정도준이다. 외국에서 유독 인기가 많은 그가 국내에서 모처럼 전시를 크게 열고 있다.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현대작가 특별전에 그를 초대한 것이다. ‘읽는 서예’가 아닌 ‘보는 서예’를 골자로 한 그의 혁신적인 서예인생을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는 “올해 칠순이지만, 열 살에 붓을 잡았으니 글씨로는 환갑을 맞았다”며 “판소리에서 득음이 있듯, 서예가에게도 선을 얻는 일이 중요하다. 선 하나 얻는 데 평생이 걸렸다”고 고백했다.
‘필획과 구조’라는 전시명 아래 그의 대표작과 최근 작 90여 점이 벽에 걸린다. 이동국 서예박물관 수석 큐레이터는 “인공지능 시대 서예의 근본을 되돌아보자는 의미로 정도준 개인전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천지인
이번 전시의 시작은 ‘ㄱ’ ‘ㄴ’ ‘ㅁ’ ‘ㅇ’ ‘ㅅ’으로 구성된 ‘태초로부터’다. 올해 만든 신작으로 서구의 추상미술 과 맞먹는 조형성과 추상성이 압권이다. 서예와 회화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예가 문학에 예속돼 있어
자꾸 읽으려고 하는데, 서예 본연의 아름다움이 있어요.
저도 이제 가야 할 길이 보이는 것 같아요"

정도준은 한자 서예뿐 아니라 한글 서예의 달인이다. ‘태초로부터’를 비롯해 14개 자음을 한 화면에 쌓아 올린 ‘한글 자음’ 역시 자음들이 서로 견고히 받치고 끌어주고 밀어내며 먹의 농담과 번짐 등을 구조적으로 활용했다. 한글의 모음이 철학적이라면, 자음은 다양한 구성과 변형이 가능해 조형적으로 활용하기 좋다는게 작가의 설명이다. 그의 대표작은 한글의 창제 원리인 ‘천지인’이다. 하늘(·), 땅(ㅡ), 사람(ㅣ)을 조형적으로 재해석했다. 전시장은 크게 넷으로 나뉜다. ‘태초로부터’와 ‘천지인’ 등 글씨의 이미지에 집중한 ‘동굴-태초로부터’가 출발점이며, 그 뒤로 이미지와 텍스트가 병존하는 ‘집-문자의 우주’가 펼쳐진다. 셋째와 넷째는 각각 ‘집Ⅱ-따로 또 같이 살기’와 ‘붓길, 역사의 길’이다. 가장 큰 변화는 역사적인 인물의 글귀로 작업한 작품들을 대거 선보인다는 점이다. 숭례문에 쓴 상량문뿐 아니라 이순신의 명언인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 있나이다’ 등은 한글과 한자를 같이 써 당시의 비장한 느낌을 살린다. 작가는 “올해가 정유재란 420년이어서인지 이순신 정약용 윤봉길 안중근 김구 등 역사적인 인물에게 끌렸다”고 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서예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성격이 급한 사람도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먹을 갈다 보면 차분해지죠. 기계 문명의 시대에도 인간 본연의 것, 자신을 찾는 일이 중요합니다.” 중국에서는 서예를 서법(書法)이라고 하고,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 한다. 우리는 광복 후 서예(書藝)라 부른다. “출발할 때는 법으로 하고, 쓰고 있는 과정은 도며,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예죠.” 이번 전시에서 바람이 있다면 관람객들이 서예를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어려운 한자로 도배된 서예가 아니라 조형성과 예술성의 빛이 발하는 ‘보는 서예’가 그가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까만 선들의 나열이 아니라 획의 길고 짧은 것, 굵고 가는 것, 세고 약한 것에도 모두 의미가 있다.
특히 서예를 검정 한 색으로 생각하지만, 밝은 검정부터 어두운 검정까지 그 미세한 차이가 무한에 가깝다. 하얀색 종이와 검은 먹의 대비, 또 붉은 낙관까지 군더더기를 뺀 절제의 미학이 서예에 담겨 있는 것이다.


정도준은 1946년 진주 서예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1982년 첫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대상을 거머쥐며 서단에 데뷔했다. 전시는 12일 개막해 6월 11일까지. 관람료는 3000원. 6월 29일부터 8월 27일까지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후속 전시가 열린다.

매일경제 이향휘 기자 기고  mjknews212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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