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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석 (주)동아수출공사 회장제16회 자랑스런한국인대상 수상자(종합대상) 특별인터뷰 2
최재영 본지 발행인 | 승인 2017.01.09 18:08|(202호)

제16회 자랑스런한국인대상 수상자(종합대상) 특별인터뷰 2

이우석 (주)동아수출공사 회장

평생 영화인의 외길 인생 걸어온 산증인

한국의 영화 위상 세계로 드높인 자랑스런 한국인 

 


이우석 회장(81)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영화사 (주)동아수출공사를 설립하여 한국영화 ‘깊고 푸른밤’외 총 85여 편의 우리 영화를 제작하였으며,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미국 영화 ‘늑대와 춤을’외 총 150여 편의 외화를 수입하여 국내 영화 제작과 영화 배급사 발전에 크게 기여, 올해 영화 인생 반세기를 맞은 50년 동안 한국영화사에 큰 업적을 남긴 산증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1958년 서울 덕신공사 영업부장을 시작으로 1960년 서울 (주)서울아카데미 영화사 영업부장과 이듬해인 1961년 극동흥업 주식회사 수출부장을 역임, 1965년엔 제일영화 주식회사의 상무이사로 재직한 후, 1967년 1월 24일 현재의 동아수출공사를 설립하게 된다. 이후 현재까지 50여 년간 수 십 편의 영화 제작 및 수입은 물론, 1985년 동아극장 개관을 시작으로 2000년 9월 센트럴6 시네마, 2001년 씨네플라자 등의 극장을 운영하며 극영화 시장에의 장악력을 강화하면서도 1990년 (주)영성프로덕션을 설립, 방화 및 외화 650여 편을 비디오로 제작 출시하였다.


또한, 대만 CTS와의 판권 계약으로 들여 온 TV드라마 ‘판관 포청천’은 1995년 KBS와 MBC를 통해 방영되면서 55%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 전 국민적인 인기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 회장은 1971년 제 10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영화수출 장려상을 수상한 이래로, 1980년 제작한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이 제19회 대종상 감독상과 신인 연기상을 수상, 제17회 한국연극영화예술대상에서는 작품상과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국내 영화제작자로의 위상 또한 드높이게 된다. 1981년 제작한 김수용 감독의 ‘만추’에서는 주연 여배우인 김혜자 씨가 제2회 마닐라국제영화제 최우수 여자연기상을 수상하였고, 1985년에 제작한 최인호 원작, 배창호 감독의 영화 ‘깊고 푸른 밤’은 제30회 일본 문부상과 아, 태 영화제 각본상 및 작품상 수상했다. 제24회 대종상에서는 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촬영상, 조명상, 각본상을 수상하였다. 이듬해인 1986년엔 최인호 원작, 곽지균 감독의 ‘겨울 나그네’를 제작하면서 영화진흥공사가 뽑는 ‘좋은 영화’에 선정되었고, 이는 제25회 대종상 신인감독상, 여우조연상, 미술상을 수상하게 된다. 1988년엔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제작으로 제27회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최우수예술가상을 수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수상, 같은 해 로카르노영화제 청년비평가상 3위의 업적으로 국내 영화계에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게 된다.

이 같은 영화 예술 분야의 활발한 활동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운영위원을 역임하는 등 국민문화 향상과 국가 발전에의 공로를 인정받은 이 회장은 2001년 문화훈장인 ‘보관문화훈장’과 2011년 국민훈장인 ‘동백장’을 수상하였고, 현재도 영화 산업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 한국영화복지재단 이사 및 세종문화회관 후원회 이사, (사)민족문화영상협회 이사로써의 대외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고 있다.

한때 영화 인생 절정기에는 동아극장을 직접 운영하면서 잘나갈 때도 있었지만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를 해온 가운데 경영난에 부딪혀 극장도 넘어가고 어려움을 겪는 힘든 고난을 보냈다. 가족사는 부인 황순희(80)여사와 슬하에 1남2녀를 두었고 서울대, 이화여대 등 명문대를 졸업하고 시집을 잘 보내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수상소감을 간략히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A. 자랑스런 업적을 이룩한 사람에게 부여되는 영광스러운 이 상을 수상하기에는     부끄러운 것이 많아 기쁨보다는 오히려 송구함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소감입니다.  

   1967년 1월 24일 동아수출공사를 설립하고 만으로 반세기를 맞은 50년이 되는 올해 뜻 깊게도 ‘자랑스런한국인대상‘을 수상하게 되어 제게는 의미가 크고 영광스럽습니다. 

 

Q. 한국영화의 위상을 세계로 드높여 영화인생의 귀재로서 국내외 영화발전에 기여한 일등공신입니다. 영화인으로 평생을 바친 것에 대해 소감을 밝힌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A. 인생의 역경 속에서 “영화”는 운명이었고 삶을 지탱한 숙명 같은 존재였습니다. 

   어렵게 살아온 영화인을 위로하고 남은 인생을 지금보다 격을 높여 가치 있게 살라는 격려로 생각됩니다.  

 

2. 공적조서를 살펴보니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발전을 위해 혼신을 바쳐 희생을 하면서 고생도 많이 하셨는데 후회한 적은 없는지요?

-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고, 열악했던 영화계의 한 사람으로 살아오며 언제나 혼신의 노력을 할 수 밖에 없었기에 후회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Q. 영화제작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와 가장 보람 있던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영화 제작의 척박했던 환경과 경비조달의 어려움 등 크고 작은 난관에 부딪쳐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고 극복하는데 힘을 기울 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편의 영화가 탄생 되었을 때의 기쁨과 보람은 저의 에너지가 되어

   새로운 작품에 대한 도전의 밑거름이 되어 주었습니다. 

 

Q. 좋은 영화를 만들어 많은 상도 수상했는데 어떤 영화가 가장 기억에 남았는지요? 그리고 남녀배우 중에 명연기에 심취된 배우는 누구인가요?

A. 좋은 영화를 만들어 수상의 영광을 이룬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1980년 ‘바람 불어 좋은날’,  1983년 ‘적도의 꽃’,  1985년 ‘깊고 푸른 밤’, 

   1986년 ‘겨울 나그네’와 1991년 ‘그들도 우리처럼’,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등 많은 영화들이 떠오릅니다. 

   ‘바람 불어 좋은 날’은 국민배우인 안성기씨의 데뷔작으로 풋풋한 신인시절 

   안성기씨의 명연기가 빛을 발한 영화로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Q. 대한민국영화산업이 그 당시는 많이 힘들었을 것으로 아는데 국가에서 영화 진흥정책 차원에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바람이 있으시면 밝혀주세요.

A. 지금 영화계는 대기업의 거대 자금으로 운영되어 작은 영화사들이 간판을 내리고

   사라지는 황폐한 현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흥행에만 치중되어 질적인 향상은 뒷걸음 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지요. 

   정부와 관계 기관들은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이 지양될 수 있도록 

   과감한 제도 개선과 방편을 마련해야 하는 시기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Q. 한평생 영화제작이 천직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다시 태어나도 영화인으로 살고 싶은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요?

A. 저의 일생은 오직 영화로 점철되어 있기에 다른 삶의 분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도 영화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또 제가 오매불망 꿈꾸었던 훌륭한 작품으로 미국의 명작들을 능가하고 대한민국을 허리우드에 앞서는 영화의 나라로 만들고 싶습니다. 

 

 

Q. 영화산업발전에 기여한 문화 훈장 보관문화훈장과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으셨고 이번에 자랑스런한국인대상까지 수상한 보람은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A.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은 질곡의 세월을 어렵게 살아온 우리 영화인 선배, 동료,  후배들을 대신하여 제가 대표해서 받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송구하기 이를 데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상보다 ‘자랑스런한국인대상’의 수상은 제게 의미가 큰  것이 사실이며, 힘들었던 수많은 날을 함께 동고동락해온 영화인들에게 이 상이  위로가 되기 바랍니다.  

 

Q. 이 회장님은 평소 좌우명과 삶의 철학이 무엇이며 여생동안 아직도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으신지요?

A. ‘나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너그럽게’가 저의 좌우명입니다.
자신의 잘못은 모른 척 하고 타인의 문제에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늘 내가 먼저 솔선수범하여 타인의 귀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1973년 ‘황사진’을 시작으로 2011년 ‘퍼펙트게임’까지 한국영화 85편을 

   제작하였습니다.  앞으로 저의 소망은 100편의 한국영화를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Q. 후배 영화인들에게 선배로서 교훈삼아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밝혀 주시길 바랍니다.

A. 지금의 영화산업은 디지털의 가속화로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화를 완성하는 것은 아날로그적인 ‘휴머니즘’즉 ‘감성‘입니다.

   인간 내면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대중의 문화를 이어주기를 바랍니다.   

 

Q. 끝으로 건강관리 비법, 취미 생활, 가족소개 해주시기 바랍니다. 

A. 요즘도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만보이상 걷기를 하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날이 좋으면 지인들과 골프를 즐기기도 하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는 아내와 아침  일찍 일어나 양재천을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제 건강의 비법입니다. 
 

   장남인 이호성(64) 아들은 동아수출공사 대표이사로 저의 든든한 오른팔이 되어 주고 있고 출가한 두 딸은 손주들과 함께 쉬는 날에는 자주 아내와 저를 만나러 옵니다. 손주들이 커 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아내와 제게는 더 할 나위 없는 삶의 활력이고 기쁨입니다.

 

최재영 본지 발행인  mjknews212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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