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진정한 보수(保守)가 있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국장농단으로 무너지자 사람들은 한국의 보수가 무너졌다고 느끼는 국민이 많다. 최순실이 보수의 얼굴에 분(糞)칠을 함으로써 그나마 조금 추겨 세웠던 국민의 자존심을 완전히 구겨놓았다. 동반해서 놀아난 박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를 아예 시궁창에 처넣어버렸다. 그 배반감에 국민은 허탈해 하고,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광장으로 모여든 것이다. 수치와 모멸감을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느끼게 한 사건이 민간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의 본질이다. 이것은 한국의 보수? 진보? 따질 것 없는 공통적인 배반이고 울분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한마음이 된 것도 아마 건국 이래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보수의 몰락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보수란 무엇일까?

사진: 연합뉴스 제공

한국의 보수는 무엇인가?

지금 촛불시위에 아무 말도 못하고 숨죽이고 관망만하는 세력이 보수인가? 아니면 뒤늦게 태극기를 들고 맞불 시위를 하는 조금 연세가 든 이들이 행동하는 보수인가? 그들은 ‘촛불’을 진보라고 인식하고 뭉쳤으니 의식은 보수라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이 태극기를 들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가치를 옹호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먼저 촛불을 든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가치를 깡그리 무시한 자들이었을까? 아니다 그들도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가치가 무너져 견디다 못해 뛰쳐나온 세력이다. 그러면 ‘촛불’(촛불을 든 시위대)과 ‘태극기’(태극기를 든 시위대) 사이의 대한민국 가치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보수의 가치는 무엇이고 진보의 가치는 무엇일까?

최근 김상수 작가가 모 인터넷 신문에 올린 ‘제대로 된 보수’에 대한 글의 한 구절을 옮긴다.

“제대로의 보수란, 지키고 가꾸어야 할 가치들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되고 지키고 가꾸어야 할 대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치판단에서 엄격하고 완고한 태도다.그럼 무엇을 지키는가? 가장 먼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고 보수 가치의 체계인 헌법이다. 하물며 가정, 지역, 국가, 전통문화,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존중과 같은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결사적으로 지켜냄이 보수의 행동양식이다. 따라서 나라가 위난으로 빠졌을 때 개인의 일신보다는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행동했던 독립 운동가들이나 패권주의에 매몰되어 이데올로기로 동족을 압살했던 세력들에 분연히 일어났던 사람들, 군사독재시대 때 민주주의를 가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했던 사람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리는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일깨우는 만 3년 전 광화문의 '촛불'들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고 보수 세력들이다.

또한 김일성·김정일 편향이 진보(進步)일 수 없듯이, 반공을 앞세워 인간의 기본권을 탄압하는 것도 보수일 수 없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와 또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대한 태도에서 보수란 엄격한 자기 각성과 행동양식의 절제를 동반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보수란 생태나 평화가 삶의 기초임을 기본으로 한다. 그래서 통일을 지향하거나 분단체제의 극복이 전적으로 진보나 급진의 전유가 아니듯 보수의 근본 가치에 큰 으뜸 항목인 것이다.

'기득권 가짜보수'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배웠다는 지식인들도 다반사로 오용하는 보수란 표현은 다시 말하지만, 그리고 계속해서 말하지만, 이는 인식의 오류다. 이즈음 말하는 보수란 무차별적 욕망계층인 뿌리 뽑힌 '기득권층'을 말하고자 함인데, 빨리 바르게 고쳐져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사회에서 조·중·동, 새누리당 등은 '보수'가 아니라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걸신(乞神) 집단인 '기득권층' 이라 불러야 한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한국 보수의 특징

태극기 흔드는 김진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왼쪽 두 번째)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소공원 에서 열린 보수 단체의 맞불 집회에 참석,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2016.12.17.

사이비 보수, 가짜보수로 불리는 새누리당이 드디어 분열되어 서로 진짜 보수, 원조보수를 다투고 있다. 정치권이 말하는 보수란 무엇을 말할까?

보수주의(保守主義)란 사전적 의미로는 급격한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을 중히 여기는 주의라고 되어있다. 보수주의는 변화라는 작용이 있을 때에야 그 반작용으로 사회에 나타나고 드러난다. 우리가 보수주의를 인식할 수 있는 경우는 변화의 시도에 반응하기 시작할 때이다. 즉 보수주의는 변화라는 작용이 있을 때에야 그 반작용으로 사회에 나타나고 인식되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가 없을 때에는 보수주의 내용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것을 보수의 잠재성이라고 한다.

이번 촛불집회의 경우를 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처음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촛불시위가 있을 때 보수는 거의 동조하는 마음으로 관망상태에 있었다. 어떤 부류는 직접 촛불 시위에 참석하여 같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정말 탄핵을 당하고 직무가 정지되었는데도 촛불은 꺼지지 않고 하야 할 때까지 이어간다는 주장이 나오고, 각종 좌파성 이념 구호가 촛불 마당에 등장하자 이것은 아니다 라고 하면서 보수는 결집하고 행동에 나섰다. 수십만 명이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으로 모여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적 보수의 특징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의 탄핵으로 여당인 새누리당이 진보세력에 밀려 정당의 기능을 상실하고 위기에 몰리자 이것을 계기로 한국사회는 새롭게 보수 담론이 공개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이런 것이 한국 보수의 생태인 것이다.

한국 보수는 작용이 없으면 반작용이 없기 때문에 그 수를 가늠하기 힘들다. 지난 노무현 대통령시절 얼마간 좌클릭된 정책들이 양산되자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고, 차기 대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도 말없는 보수들의 행동적 결집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사건에 대하여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 하여 보수의 반대가 없다고 판단하다가는 의외의 결과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라 이번 광화문 집회에 태극기부대가 몇 십만을 헤아렸지 않은가? 여론조사 등에도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요즘 여론조사는 거의 진보성향 그룹의 산물로 보아 크게 틀리지 않다. 보수와 달리 진보는 행동적이고 참여적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 탄핵이 보수에 불붙여

국민이 헌법이다 제5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2016.11.27.

지난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보수의 죽음을 예고했다. 최순실 국정농단부터 태블릿 PC가 JTBC에서 보도된 후 보수는 마치 핵폭탄을 맞은 듯 와해됐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보수의 아이콘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보수의 가치였던 대북 강경정책을 강화하여 친북, 좌파를 척결하는 데 앞장섰다. 대표적인 것이 유엔을 통한 북핵 대북제제, 개성공단 폐쇄, 이정희의 통합민주당 해체, 이석기 구속, 좌편향 역사교과서의 수정, 문화계 종북 세력 축출 등이다.

이런 정책들에 안도(갈채는 아니다)를 보냈던 보수 세력들을 일거에 등을 돌리게 한 사건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박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갈 정도로 대한민국의 보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는데 엄밀하게 따져보면 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배반감이고 실망이었지 보수에 대한 실망은 아니었다. 이것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광화문 광장의 진보 즉 소위 ‘퇴진행동’에 반하는 행동으로 ‘기획 탄핵’, ‘ 탄핵 무효’ 등의 구호가 태극기 측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은 순전히 ‘보수의 반작용’일뿐 보수의 본질을 벗어난 ‘행동’이다. 정직한 보수라면 야단 칠 것은 야단 쳐야 옳다. 그래서 보수 태극기는 법질서 유지와 공정한 법집행을 전제로 한 헌법재판소의 냉정한 판결을 요구하는 선에서 정리되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의 ‘행동’은 또 다른 면에서도 나타났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을 앞장서 공격한(보도한)(보수의 생각)) 종편이나 신문에 성명서 광고 게재를 거절하는 행동도 보였다. 이런 이유로 J일보는 보수대열에서 탈락 취급을 받게 되었다. 언론까지 공격하려는 ‘행동’은 너무 나간 것으로 보아야 옳다. 보수의 가치는 국가의 법질서를 지키는 선에서 만족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사이비 보수는 빨리 죽어야

작가 이문열은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다시 태어나라‘고 썼다. 북한의 아리랑 축제 같은 행동이 언론에 의해 민심이라고 호도했고 국민이 그렇게 믿게 되는 현상에 소름끼치는 전율을 느꼈다고 했다. 이 가운데 보수 정치인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한국 정치는 사이비 보수와 사이비 진보의 극한 대결 상태라면서 경제는 세계 초 일류를 지향하는데 유독 정치는 3류, 4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질타했다. 그리고 현 사태와 관련하여 지금의 위기는 보수의 실패가 아니라 사이비 보수의 실패라고 정의했다. 그는 “보수에는 4가지 원칙이 있다. 과거 경험을 중시하고, 끊임없이 잘못된 것을 보수(補修)하며, 도덕성이 높고, 성실하다. 반대로 진보는 이성적이고 급진적이며, 이상과 비전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지금의 보수 정치세력은 과거의 경험을 무시하고, 도덕성과 성실성에서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이비이고, 진보 역시 인기영합주의와 득표전략에 매달려 비전을 제시하지도 못한 채 종북, 친북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사이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미숙한 정치세력 상태에서 내각책임제를 도입하면 제2공화국 때와 같은 정치적 위기가 되풀이 된다고 말했다.

“어떻게? 왜?” 대선 후보 철저한 검증부터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금 상황은 정치가 공의(公義)를 잃고 사물화(私物化)됨으로써 빚어진 국가 표류 사태다. 보수의 가치와 철학을 분명히 하는 신(新)보수가 깃발을 세우고 새로운 국가 비전과 리도십을 제시할 때 대한민국은 혼란을 끝내고 재도약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당과 정치인이 지리멸렬하면 지식인과 범보수 진영이 힘을 모아 신보수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신보수가 성공하려면 우선 지향하는 가치를 명확히 해야 한다. 새누리당 안의 친박과 비박, 당 밖의 범 보수가 모두 자신들의 가치를 재정비해서 국민에게 양극화문제, 폭민(暴民)정치, 대중 문제 등 당면 과제를 어떻게 풀지 보수적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구보수의 유산에서도 계승 발전시킬 부분이 있다. 대북관계와 역사관처럼 국가의 정체성과 헌법적 가치에 관련된 것은 더 강화해야 한다. 대권주자들은 자신이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제3지대론’은 문제가 많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적당주의로는 ‘사이비 제3지대에 빠질 위험이 크다.

박 교수는 “신보수의 리더는 경선이 아니라 합의 추대해야한다. 고만 고만한 사람끼리의 경선은 의미가 없다. 현재 이른바 유력 주자들은 철학도 약하고, 윈칙대로 살아오지도 못했다. 보수의 가치를 새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협치에 바탕한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신보수를 세우는 일을 정치권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지식인과 범 보수가 나서야 한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이 절실하다. 박 대통령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대선후보 검증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당에만 맡겨놓지 말고 언론, 학계 등이 직접 나서야 한다. 누가 싫어서 누구를 찍는다는 식으로는 안 된다.“ (조선일보에서 발췌)

박 교수가 주장한 ‘대선 후보의 철저한 검증’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대선후보를 지식인들과 언론 그리고 제3세력이 합동하여 검증하는 것은 다음 대선에서 가장 바람직한 일이 될 것이다.

보수정당 새누리당의 적전 분열

이처럼 보수의 재정립과 재건립이 시급한 시점에서 보수정당을 자칭하는 새누리당이 친박과 비박으로 쪼개졌다. 냉정하게 보면 적전(敵前) 분열이다. 이것을 보수의 선명성 경쟁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나 정치는 모르는 것. 새누리당의 탈당파가 보수의 가치를 놓고 스스로 ‘보수신당’을 자처하면서 상대방을 서로 사이비 보수라고 지칭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도 친문(親文)과 비문(非文)사이에 분열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잘 하면 4당구도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이런 판세를 놓치지 않고 관망하고 있는 제3지대의 후보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탐색하고 있다. 그는 누가 보아도 원조 보수다.

어차피 2017년 대선은 보수와 진보 양자 대결로 이루어질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실망한 보수가 다시 결집할 수 있을 것인가, 촛불을 업은 진보가 원사이드 게임으로 이길지 흥미진진한 게임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박근혜 학습효과로 인하여 아마 전례 없이 철저한 인물 검증이 필수가 될 것이 분명하다.
또 하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처럼 의외의 돌출 후보가 탄생할 수도 있는지도 관심거리다. 아직 변수는 많다. 그러나 누구든 국민의 혹독한 자격 검증, 인물 검증, 사상 검증은 필수 관문일 것 같다. 그리고 비선 실세도 가능성도 뿌리까지 들출 것이다. 대선 후보를 꿈꾸는 자, 아마 자기 창자 속까지 들춰 보여줄 것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

이래저래 2017년 조기대선은 벌써부터 국민의 관심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황인환 본지 편집위원장 weis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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