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제4차 전당대회 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이정현 의원이 새누리당기를 흔들고 있다. 2016.8.9.

여당 역사 50년 만에 처음으로 전라도 출신 비주류 이정현 의원이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되었다. 이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기적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그는 야당의 텃밭 전라도에서 ‘경상도 여당’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여 3번이나 당선됨으로써, 수십 미터 두께의 영호남의 얼음 장벽을 깬 유일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거기에다 새누리당의 말단 사무원으로 출발하여 37년 동안 17계단을 뛰어올라 당 대표가 되었다. 그는 무(無)수저가 금수저가 되어,  대한민국은 기회의 땅이고 열린 세상이라는 것을 증명해준 인간 승리의 한 본보기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기적을 일군 사나이 이정현은 누구일까?

“일 좀 시켜 달라, 정치를 바꾸겠다”
새누리당 대표 경선 과정은 치열했다. 전남 곡성 산골 출신 자칭 ‘촌놈’ 이정현이 경상도가 뿌리인 여 당의 대표 자리를 꿰찼다. 정당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가 열심히 전국을 누볐고, 한껏 몸을 낮춰 당내 인사들에게 당대표 출마 소신을 밝히고 다닐 때만 해도 벌써 그는 당 대표와는 거리가 먼 후보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속칭 ‘깜’이 안 된다는 평가였다.
처음엔 ‘이정현이 당 대표? 최고위원이 아니고?’라고 듣는 이의 귀를 의심케 했다. 대부분 과분한 자리에의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다. 그런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온몸을 던져 전국을 돌면서 자신 의 진정성과 열정을 알렸다. 그는 당 대표 후보 연설에서 승기를 잡았다.
“일 좀 시켜 달라. 정치를 바꾸겠다”라는 표호에 당원 들의 마음이 술렁였다. TV를 시청하는 국민도 그의 연설에 담긴 진정의 메시지만이 모든 후보들을 제 끼고 가슴에 와 닿더라고 말했다. 그의 진심과 열정 이 유권자들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었던 것일까? 밀 짚모자와 회색 점퍼의 사나이, 이정현은 압도적인 표 차로 새누리당 새 대표로 당선되었다. 찢기고 괄시받던 슬픈 거위의 꿈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 이었다.
 

대표 경선에서 연설을 토해내고 있는 이정현 후보

이정현의 약속
그는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국민 앞에 일곱 가지의 약속을 했다. “첫째, 지금 이 순간부터 친박·비박 등 계파 청 산, 지역주의 청산을 선언한다. 둘째, 민생 문제 만큼은 야당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여당에서 책임지겠 다. 셋째, 비주류, 비엘리트, 소외 지역 출신도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겠다. 넷째, 새누리당의 체질과 구조를 ‘섬기는 리더십’으로 바꿔 국민의 삶 속으로 뛰어들 겠다.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다시 찾아 내년 대선에 서 새누리당이 반드시 승리하겠다. 다섯째, 국민의 힘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겠다. 당원의 힘으로 새누리당을 바꾸겠다. 여섯째, 유능하고 따뜻한 혁 신 보수당을 만들겠다. 박근혜 정부를 반드시 성공시켜서 내년 대선에서 반드시 정권 재창출하겠다. 그 밖에도 민생·경제·안보에 집중하는 정책 정당 을 만들겠다. 능력 인사·탕평 인사·균형 인사·소외와 무수저에게 배려하는 정부와 당 인사를 추진하겠다. 야당과 협의하고 협치하겠다. 그리고 국가 안위와 국민 먹고사는 문제 외에는 결코 싸우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
이 대표는 “국민 여러분께서는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정치 개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당 원 동지 여러분들께서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당 혁신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당원 동지 여러분! 저와 함께 정치 혁명의 동지가 되어 주십시오. 죽어야 산다는 각오로 낡은 정치를 쇄신해 나갈 것입니다.”라고 정치 개혁을 핵심 과제로 내걸었다.
이 대표는 인순이의 노래 “거위의 꿈”을 좋아한 다. 처음 그 노래를 듣고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휴대전화 컬러링도 이 노래로 담고 있다. 그는 그 노랫말처럼 모두가 자기를 등 뒤에서 비웃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꿈을 키워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를 거대한 벽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 분노하고 있는 사람들, 꿈을 잃고 좌절한 사람들, 이들을 거위의 등에 태우고 날개를 활짝 펴서 하늘을 날아 벽을 넘겨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꿈이 현실이 되도록 오늘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인왕실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등 신임 지도부와 오찬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최연혜(왼쪽 부터)·강석호·조원진 최고위원, 이정현 대표, 박근혜 대통령, 정진석 원내대표, 이장우 최고위원, 김광림 정책위의장, 유창수 최고위원. 2016.8.11.

이정현의 인생 역정·정치 역정 이정현(李貞鉉)은 1958년 9월 1일 전라남도 곡성 군 목사동면 동암리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 났다. 동암리는 13가구가 떨어져 사는 두메산골 마 을이다. 그의 본관은 성주(星州) 이(李)씨다. 그는 곡성 목사동초등학교, 순천주암중학교,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양희수 전 국회의원 등의 정치인 합동 유세 현장을 보고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곡성군 목사동면 주민들의 가장 큰 소 원은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라는 손편지를 써서 보 냈는데 대통령비서실에서 이 편지를 받아보고 전남 교육청을 통해서 목사동초등학교 교장에게 “뭔가 다른 아이니 잘 키우도록 하라”라고 격려했다는 일화가 있다. 성적은 중하위권에 머물렀고 대학은 동 국대학교로 진학했다. 대학 4학년 때인 1985년 광주시장과 전남도지사를 역임했던 구용상 전 의원이 민주정의당 출신으로 담양군-곡성군-화순군에 출마하자, ‘정치 좀 똑 바로 하라’는 6장짜리 손편지를 보냈는데, 생각지도 않게 구 전의원이 자신을 좀 도와주지 않겠느냐고 설득하여 영입되었다.
처음에는 구용상 의원의 전화받는 비서, 사모님 수행 비서부터 출발했다. 주로 수행 비서 역할을 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선거 때 호남에서 평화민 주당 돌풍으로 구 의원이 낙선하자 이정현은 민정 당 특채로 입사했다. 당직자 최말단인 간사 ‘병(丙)’ 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강한 유대감이 있는 공채 출신자들에게 ‘근본 없는 놈’이라고 따돌림 당하던 신세였다. 영남이 주류인 그 사회에서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오기가 발동하여 주말도 평일같이 근무하기 를 15년이나 했다고 한다. 출근길에 신문과 라디오 의 기사와 뉴스를 파악하여 정리, 분석하는 일을 스스로 했다. 정치 사례들을 분석, 정리하고 현실 정 치에 다시 적용해서 분석했다. 여기서 익힌 실력으 로 19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와 서청원 대표에 게 매일 3장짜리 정세 분석 및 전략기획보고서를 전달했더니, 당 지도부 인사들도 보내달라고 해서 그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고 그 결과 승진도 하여 전략기획·정세분석·대변인실·여의도연구소 기획팀장까지 승진하게 된다.
그는 당에서는 호남 출신이라는 이유로, 고향에서는 ‘영남당’ 출신이라고 배척당했다. 2004년 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광주 서구 을에 출마했으나 1.05%(720표)의 득표로 혹독하게 패배했다. 당에서는 그가 출마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당시 박근혜 당 대표는 이정현에게 두 차례 전화하여 낙선 위로 점심을 사겠다고하여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정현은 한나라당 이 호남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으로 피를 토하듯 일장 연설을 했다.
박 대표가 연설을 듣고 “어쩜 그리 말씀을 잘 하세요”라며 감탄을 했다. 그는 곧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제17대 대통령 선거 경선에서 박근혜 캠 프에 합류하여 대변인과 특보를 지냈다. 당시 박근혜는 경선에서 이명박에게 패했다. 모두가 박근혜를 떠났지만 이정현은 남았다. 그리고 이명박 후보로부터 선대위 고위직을, 김문수 경기지사 측으로부터 정무 부지사직을 제의받기도 했으나 모두 고사하고 박근혜를 지켰다.
"박근혜가 이정현에게 경기도 부지사직은 수락해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하자 “자꾸 그런 말씀을 듣게 된다면 정치를 그만 두겠다”라고 했다. 나중 이야기지만 그 자리 제안을 받고 솔직히 욕심이 나더라고 했다. 그동안 제대로 된 자리에 오른 적이 없어 봉급을 받아본 적이 없고 그의 아내는 무일푼으로 암 투병 중이었다.  
그는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에 입성했다. 친박계 공천 학살 논란 속에서도 비례대표 22번을 받았는데 운좋게 당선되었다. 그러면서도 박근혜의 평의원 시절에도 비공식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박근혜의 입’, ‘박근혜의 복심’, ‘박근혜의 그림자’라고 불리고 있다.
그는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광주 서구 을 선거구에 다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러나 39.7%라는 의미 있는 득표를 하여 일약 총선 스타 로 불리게 되었다. 그해 7월 30일 재보궐 선거에 서 순천-곡성 선거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49.43%(60,815표) 득표. 곡성군에서는 83%의 몰표를 받았다. 이로써 1988년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광주·전남 지역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계열 소속의 첫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전남 순천 선거구에서 44.54%인 66,981표로 당선되었다. 이번 20대 총선에서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새누리당의 아성인 대구에서, 정운천 새누리당 후보가 전주 을 선거구에서 당선되는 이변을 낳아 지역색의 퇴조를 보였다. 지금까지 호남 지역구에서 새누리당 계열 정당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에서 국회의원 당선자가 나온 예는 제14대(1992년) 총선 때 무주-진안-장수에서 민주자유당 황인성 전 국무총리와 제15대(1996년) 총선 때 군산에서 나온 강현욱 전 장관 둘뿐이었다. 그가 당 대표까지 걸어 올라온 37년의 지난 계단 들은 다음과 같다. 의원 비서→당 사무처 간사(丙)→간사(乙)→간사 (甲)→차장→부장 대우→부장→부국장 대우→부국 장→국장→부대변인→수석부대변인→국회의원→ 청와대 수석→최고위원→당 대표.
 

이정현 대표의 친필(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왜 당 대표가 되고 싶어 했는가?
그는 스스로 자신을 새누리당의 소외 계층이며 무(無)수저라고 칭한다. 그가 호남 출신으로서 스 스로 촌놈이라고 자처하면서 새누리당 대표에 도 전한다는 것은 보통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한 도전이다. 이런 결심을 어떻게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당이 현재 위기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잘 라 말했다. 당이 잘 나가고 있으면 자신 같은 존재가 어불성설 어디 감히 당 대표를 넘보겠느냐는 말도 했다.
그는 총선 후 밀짚모자와 자전거로 전국을 순회하면서 나름대로 얻은 신념이 “정치를 바꿔야 된다”라는 것이었고, 이런 위기에서는 자신만이 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사명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 일을 하려면 당 대표가 되어야 가능하겠기에 도전한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 대표가 돼서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기로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저를 선택해 주신 전라남도 순천 시민들의 엄중한 명령이자, 제가 순천 시민들께 드린 약속”이라고도 말했다. “우리 정치에 좌절하고 분노한 국민의 심판이었 던 4·13 총선으로 20대 국회가 구성되었지만 우리 정치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라면서 “혁신·쇄신·개혁, 이런 건 화려한 말잔치일 뿐 국민을 피로하게 한다. 그리고 국회의원은 특권이나 기득권에만 집착하고 있지 국민이나 민생은 안중에도 없다. 이런 풍토를 과감하게 바꾸기 위해 당 대표에 도전했다”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나는 당 대표로서 대한민국 정치를 바꾸기 위한 첫번째 방법으로 우리 정치에 특권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모든 기득권을 철저히 때려 부수겠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서번트(머슴) 리더 십으로 국민을 섬기고 민생을 찾아가는 당으로 만 들기 위해 당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 고치겠다 고 주장했다.
 

전북도청 4층 종합상황실에서 새누리당 호남권 예산정책협의회가 개최된 가운데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호남 지역의 소외감이 없도록 하겠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 2016.8.23.

이제 거위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러나 당 대표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여서는 안된다. 당 대표로 서 할 일이 목표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정치 개혁을 외쳤고 새누리당을 개조하여 다음 총선에도 승리를 거둔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새누리당을 ‘경 상도당’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전국 당으로 외연을 확대하려는 꿈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진실 한 정치 철학과 실천력을 기대해보자.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당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 장과 출신 성분이 비슷한 전라도 산골 자칭 ‘촌놈’ 이다. 새누리당 대표가 전라도 출신이어서 지금 국회 지도부는 때 아닌 호남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전북 진안), 심재철·박주선 국 회부의장(광주, 전남 보성) 등 호남 출신이 국회의 장단을 장악한데 이어,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 위원장은 전남 진도가 고향이다. 비록 며칠 안 남았지만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는 서울 출생이나 조부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이 전북 순창 출신인데다 본인도 광주에서 초등·중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대권 후보 물망에 오른 이들 중에는 안타깝게도 전라도 출신이 아직 한 명도 없다. 이로써 이정현 대표가 우리 정치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차기 대권에서 새누리당이 정권 재창 출하는 데 어떤 전략가로 크게 부상할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김의상 기자  estkin@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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