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획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박영수 위원장

20대 총선이 코앞에 닥친 2월 29일, 법정제출 시한을 무려 139일 넘긴 상황에서 겨우겨우 선거구 획정안이 최종 확정됐다. 그러나 오랜 산통이 있었건만 확정된 획정안은 그렇게 달가운 자식은 아닌 듯하다. 선거구 획정안이 일명 '게리맨더링'이 아니냐는 논란이 식을 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20대 총선 선거구, 게리맨더링 논란의 현장을 짚어보았다.

 

선거구의 기형적 분할, ‘게리맨더링’

 

‘게리맨더링’이라는 용어는 특정 정당이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선거구를 기형적으로 분할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였던 엘브리지 게리(E. Gerry)가 선거에서 자기 당에게 유리한 상원의원 선거구 개정법을 통과시켰는데 그 형태가 그리스 신화 속 도마뱀 ‘샐러맨더(salamander)’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때 새로 획정된 선거구는 자연적인 형태나 문화·관습을 무시하고 괴상한 모양으로 이루어졌는데, 한 지역신문기자가 그것을 샐러맨더에 비유하였고, 그것을 게리 주지사의 이름과 합성하여 게리맨더(Gerrymander)라는 말이 생겼다. 게리맨더링으로 선거구를 묶게 되면 생활권이나 문화의 동질성 같은 지역적 특성이 배제되다 보니 시·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주민 간 이질감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게리맨더링을 방지하고자 행정구역의 경계를 토대로 선거구를 나누려고 하고 있으나 잘 지켜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도시지역 선거구 증가, 농어촌 지역구 대거 축소

 

이번 획정안에 따르면 기존 재적 의원수 300명을 유지하되 지역구가 253석으로 7석 늘어난 대신 비례대표는 그만큼 줄어 47석이 됐다. 선거구별 인구는 지난해 10월 31일 시점에서 상한 28만명, 하한 14만명을 기준으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지역구별 인구편차가 2대 1을 넘지 않도록 했다. 이에 따라 분구 등으로 전국적으로 16개 선거구가 신설되는 대신 통·폐합으로 9개 선거구가 사라지게 됐다. 지역별 증가 규모는 경기도가 8석으로 가장 많이 늘어났고, 서울과 인천도 각각 1석씩 증가해 수도권에서는 전체적으로 10석의 새로운 지역구가 생겼다. 이는 전체 지역구 의석의 48.2%를 차지한다. 반면 농어촌 지역구는 인구수에 따라 강원 1석, 전남·북에서 1석, 경북 2석 등 5곳이 대거 축소되면서 해당 선거구 조정지역과 정치권 내부의 반발이 거세졌다.

 

김세환(오른쪽) 선거구획정위원회 사무국장이 2월 28일 오전 서울여의도 국회의사당 국회의장실에서 20대 총선 선거구획정안을이명우 정무수석 비서관(가운데)과 박수철(왼쪽)안전행정위원회수석전문위원에게 제출했다.

농촌 초거대 지역구…수도권 초미니 선거구 탄생

 

강원도의 경우 선거구 조정 협상에서 막판까지 논란이 많았으나 여당이 의석수 감소를 수용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이에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의 지역구였던 홍천과 횡성을 둘로 나누면서 5개 시·군이 합쳐져 비대한 몸집의 선거구가 두 곳 탄생하게 됐다. 이에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의 철원, 홍천, 양구, 화천, 인제 지역구의 경우는 면적이 5,925㎢로 강원도 전체 면적의 3분의 1을 차지하게됐다. 이는 서울시 면적이 605㎢인 것에 비하면 10배에 이른다. 또 염동열 새누리당 의원의 태백, 횡성, 영원, 평창, 정선 선거구역시 횡성을 흡수하며 비대한 면적을 갖게 됐다.

비대한 면적을 갖게된 지역구는 이밖에도 있다. 경상북도 역시 상주, 의성, 군위, 청송 지역군이 하나의 선거구로 묶이면서 비대 선거구가 탄생했다. 충청북도의 경우도 중부 4군에 묶였던 괴산지역이 남부 3군인 보은, 옥천, 영동이 최고 인구 기준인 14만명에 살짝 못미치는 13만 7000명이라는 이유로 이들과 하나로 묶였다. 이에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의 고향이었던 3만 2000명의 괴산군이 남부3군에 묶이면서 야당과의 접전에 변수가 생겼다. 전라북도 역시 완주, 진안, 무주, 장수가 하나로 묶여 농어촌의 발전을 막는 행위라며 해당지역의 비난을 받았다.

한편 수도권의 경우 10석이 늘어나면서 경기도 수원시의 경우 헌정사상 최초로 갑,을,병,정,무 5개의 초미니 선거구가 신설됐다. 이 과정에서 인구수가 많은 수원의 선거구 추가신설은 당연한 결과이나 정치권의 이익에 따른 선거구 획정이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구 상·하한선 따른 무작위 통폐합

 

선거구 획정안은 특히 생활권이 다른 지역을 마구잡이로 통폐합하면서 많은 지역의 반발을 샀다. 인천의 경우 중동, 강화, 옹진 단일 선거구가 탄생했다. 이는 723㎢의 면적으로 인천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서울시보다도 69% 큰 거대 선거구다. 이는 강화군은 그간 서구와 함께 묶여 서구 강화갑·을 2개의 선거구로 운영됐으나 인구 상한으로 인해 서구에서 분리됐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 해당 지역에서는 강화와 함께 묶인 옹진의 경우 이 둘을 잇는 교통편이 없어 실질적으로 생활권이 다른데 억지로 분리됐다며 원성이 높다.

 

서울의 중구지역 역시 문제로 대두됐다. 중구 인구는 12만 6237명으로 인구 하한선인 14만명에 미치지 못하면서 다른 지역과 합해질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중구의 어느 인근지역과 합해도 최대 인구수인 28만명을 넘게 됐다. 결국 중구는 예외적인 경우로 생활권이 완전히 다른 금호동, 옥수동에 묶이면서 종로구 대신 성동구에 억지로 통합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상한 28만 명, 하한 14만 명을 기준으로 지역구별 인구편차가 2대 1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헌재의결정에 따라 전국적으로 16개 선거구가 신설되는 대신 통·폐합으로 9개 선거구가 사라지게 됐다.

특정 후보위한 억지 선거구 조정 논란

 

한편 강서구의 경우 인구 상한 28만명이 초과하면서 3개 지역구로 분구되는 과정에서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을 위한 ‘성태맨더링’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선거구 확정 직후 강서을에 출마하는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대 총선의 선거구에 비해 새 선거구 기준으로 보면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훨씬 월등한 차이로 이기게 된다고 주장했다.

 

호남의 유일한 새누리당 지역구인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의 순천의 곡성 지역 역시 지역구 개편의 가위에 잘려 우윤근 더민주당 의원의 광양, 곡성, 구례와 순천으로 편입됐다. 이에 곡성이 고향인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은 어쩔수 없이 인구수가 적은 곡성을 두고 순천을 택해 앞으로 해당지역의 향방이 알 수 없게 됐다.

 

경상남도 밀양, 창녕 선거구의 경우 의령함안 지역은 19대 선거구였던 의령, 함안, 합천 지역구의 인구수가 하한에 미치지 않았음에도 옆의 산청, 함양, 거창 지역의 인구수를 채우기 위해 합천을 이에 붙이면서 통폐합됐다.

 

부산 중동구 지역 역시 불만이 크다. 정의화 국회의장의 지역구로 통하는 중동구는 중구는 영도구에, 동구는 서구에 통합되면서 해당지역을 노렸던 예비후보자들의 원성을 샀다. 중·영도의 경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서·동구의 경우 유기준 전 해양수산부 장관 등 거물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부산 중·영도 새누리당 경선후보들은 선거구가 획정된지 10일만에 경선을 치르는 것은 신인들에게 크게 불리하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밖에도 중구와 영도구는 생활권역이 인접한 반면 서구과 동구의 경우 인접하고 있지 않아 해당 지역의 반발은 더욱 심하다.

 

인구상한선을 넘어 의석수가 1자리 늘어난 천안역시 선거구가 지역적 특수성이 아닌 마구잡이로 편성되면서 지역민들의 원성을 샀다. 이에대해 새누리당 천안지역 예비후보들은 선거구 획정안이 현역 더 민주 구고히의원에 유리안 안이라고 주장했다.

 

인구편차 2:1, 선거구 획정의 함정

 

거대한 지역구가 생기면서 선거운동에도 애로가 생겼다. 서울의 10배 크기가 되는 지역을 두 세 시간씩 걸려가며 5개 정도의 지역군을 돌면서 선거운동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골 지역의 경우 서울과 같이 SNS 등 인터넷을 통한 홍보역시 여의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농어촌 지역구가 피해을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현재 선거구획정이 이런 문제를 안게 된 것은 인구기준 때문이다.

이번 개정 선거구 획정안은 2014년 10월 30일 헌법재판소가 ‘기존 3대1 선거구 획정이 인구기준 표의 등가성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린 뒤 각 선거구의 인구 편차가 2대 1을 넘지 않도록 하라는 새 원칙을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새 원칙이 제시된 후 2015년 선거구획정위원회를 독립기구화하여 노의했으나 이는 올해 2월 28일까지도 줄곧 불발이 됐다. 2:1 인구기준에 의거 여야가 유불리를 따지다보니 국토면적에 대한 고려는 하지 못했다. 또한 헌법 41조에 의거하면 200명 선의 국회의원 정수 두고있는데 다소 위헌의 소지가 있는 300석이나 된 현재 국회의원 정수에서 더 이상 농촌지역구를 쪼개 의석을 늘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표의 등가성을 위한 헌법정신의 의미는 사라지고 19대 국회에 또 하나의 오명만 늘려준 셈이다.

 

충남 천안시주민자치협의회와 천안·아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선거구가 획정되자 3월 2일 천안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천안지역의 선거구 획정이 행정구역과 생활권을 무시한게리맨더링 획정안이라고 비판했다.

선거구, 누군가는 책임져야 할 것.

 

현재 선거구가 역대 최악의 선거구획정이라는 약평을 받는 가운데 강원도 철원군노인회를 비롯한 4개의 지역단체는 3월 14일 제20대 총선 선거구획정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지역구 곳곳에서는 보이콧의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일간에서는 이번 기회에 오히려 유권자의 선택으로 새로운 인물을 들여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구 획정은 ‘우리 손으로 물갈이를 하면 된다’고 태평하게 말하기에는 지역정서와 거리, 면적 등을 너무나도 무시했다. 현재 천안 을구만 해도 해당지역 불당동은 꾸준히 인구가 유입되는 지역으로 향후 1년내 1만5000여세대가 새로 입주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21대 총선에서 천안 을구는 또다시 인구 상한선인 28만명을 넘어 다시 선거구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여야 이해득실 속에 탄생한 이번 선거구 획정에 대해 정치권 모두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채현 기자  redjoker@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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