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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희망의 간격’ 저자 (주)진웅산업 김종웅 회장‘나의 꿈, 지역발전과 국가발전에 헌신하는 것’
이채현 기자 | 승인 2016.02.16 11:04|(191호)
(주)진웅산업 김종웅 회장

경제가 어렵다고 하지만 김종웅 회장이 설립한 ()진웅산업 만큼은 그 말이 빗겨가는 듯하다. 현재 진웅산업은 내수시장에 이어 해외시장 진출, 공장 증설 등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강소기업이다. 놀라운 점은 김종웅 회장의 ()진웅산업이 이만큼 성장하게 된 데는 지연도, 혈연도, 학연도 없이 홀로서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무일푼부터 시작해 오롯이 김 회장은 한국인 특유 불굴의 도전정신 끝에 우수 중소기업 반열에 올랐다. ‘절망과 희망의 간격에 담긴 김 회장의 성공신화를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정경뉴스가 정리했다.

 정직과 신의로 운명 바꾼 김종웅 회장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김종웅 회장이 살아온 인생에는 많은 비가 내린 듯하다. 김 회장은 경북 영덕 산골짜기의 가난한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연스럽게 그에게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서당에서 한자를 배우는 것이 전부였던 그는 처음엔 한글조차 알지 못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문맹퇴치 운동 덕택에 공민학교에는 들어갈 수 있었으나 중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었다. 그냥 그렇게 농사일을 물려받을 운명이었다.

그런 김 회장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 일어난다. 그의 총명함을 높이 산 선생님들은 서울에서 공부 할 수 있도록 돈을 모아 가출을 시킨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서울이 아닌 엉뚱한 곳에 가게 되면서 그의 삶은 새로운 국면에 부딪힌다.

부산의 거지왕초에게 끌려간 김 회장은 다리 밑에서 신문팔이를 했다. 그 곳은 훔치고 속이고 빼앗는 것이 훨씬 살기 쉬운 곳이었다. 그러나 정직할 것을 강조하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김 회장은 그 안에서도 착실하고 정직하게 일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그의 성실함, 정직함은 퇴색되지 않았고, 그런 그의 면을 높이 산 거지왕초는 그에게 무리를 벗어나 서울로 올라가도록 했다.

이후 그는 서울에서도 부지런하고 정직한 것이 이웃에 알려져 염료상회 사환이 되고 직원이 되면서 고등학교를 거쳐 건국대학교에서 행정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염료회사인 ()진웅산업을 창업하여 끊임없는 도전·신의를 바탕으로 유망 중소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김종웅 회장은 돈보다 사람사이의 신뢰를 더 큰 자산으로 본다.

끊임없는 도전 산물, OLED 강소업체로 급부상

 

진웅산업은 1980년 경기도 동두천에서 피혁염료제조업체로 시작했다. 당시는 피혁염료를 수입에 의존하던 때였다. 김 회장은 염료 국산화라는 목표를 세우고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수입을 대체할 만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었다. 곧 수출대체 산업에서 수출산업으로 나아가며 1989년 무역의 날을 기점으로 두 번의 산업훈장을 수훈했다. 90년 초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면서 현지적응에 실패한 외국계 기업들을 뒤로하고 지역민과 호흡하겠다는 그만의 철학으로 사업을 키워나간다.

이후에도 김 회장은 석·박사 등 50여 명으로 구성된 연구원들을 포함한 130여 명의 모든 직원들과 함께 연구개발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에 2011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재료 개발에 성공, 피혁 염료업체에서 첨단전자재료 생산업체로 전환, 강소기업의 반열에 올랐다. OLED란 유기화합물을 사용해 자체 발광시키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화질의 반응속도가 LCD에 비해 1000배 이상 빠르다. OLED 재료는 평균 단가가 일반 염료에 비해 수천 배나 높은 고가의 제품으로 기술진입 장벽이 높고 막대한 투자가 필요해 중소기업이 감당할 분야가 아니었다. 그러나 진웅산업은 2000년대부터 약 15년에 걸친 오랜 연구 끝에 세계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OLED 색소를 제조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진웅산업은 2015년 한국산업대상을 수상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 자리까지 오면서 겪은 많은 문제와 시련은 김 회장에게 세상, 사업, 정책,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혜안을 주었다.

 

 

꿈과 목표의식을 잃은 젊은 세대를 위해

 

김종웅 회장이 절망과 희망의 간격을 낸 동기는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가난한 만학도였던 탓에 김 회장은 70년대 초 겨우겨우 건국대 행정학과를 졸업해 82년부터 석사학위를, 2000년에 들어5년 만에 지방자치분야 관련 행정 박사를 취득, 이후 모교 건국대에서 겸임교수로 초대받아 강연을 하던 중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본 젊은이들에겐 앞으로 갈 길이라든가 목표의식이라든가 국가관, 책임의식, 역사의식이 결여돼있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의 눈에 비친 젊은 세대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독재자일 뿐이고 박정희 대통령은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나 한 사람으로만 각인 돼 있으니 자연스레 애국심이라든가 자긍심이 생길 일이 없었다. 김 회장은 그들에게 올바른 국가관, 역사관, 목표설정에 도움을 주고자 책을 집필했다.

 

1989년 석탑 산업훈장수훈 당시 김 회장

도전과 신뢰라는 목표와 신념

 

흙수저로 태어나 자력으로 성공한데까지의 그에게는 두가지 목표와 신념이 있었다. 첫 번째는 도전하는 것이다. 허황된 것을 도전하라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 알고 싶은 것을 도전하는 것을 꾸준히 해야 한다고 했다.

또 하나는 절대 남을 의심하거나 의심받을 짓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가 자라오면서 어머니에게도 항상 듣던 말이다. 자기기인(自欺欺人), ‘남을 속이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주위 모든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받다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현금보다도 더 많은 자산이 된다고 생각했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마음가짐

 

김회장이 지금까지 진웅산업을 이끌어 오는데는 몇 번의 어려움이 있었다. 김회장은 1991년 한중교류가 처음 시작할 무렵 중국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중국 경제 중심지인 상해에서 공장을 시작했다. 김회장은 단순히 돈만 벌어서 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지역에 호흡을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그 지역 주민들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받았을 수 있었다.

일단 중국의 값싼 인력과 중국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김회장을 사업 성공의 기로에 올려놓았다. 김 회장이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중국에는 공무원들도 발 벗고 나서서 기업이 발전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다. 규제만하고, 기업인들이 하려는 것을 제재만 하려는 한국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중국의 공무원들 덕분에 중국에 더 빨리 정착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스스로의 사업을 위해 왔지만 중국 원로들이 찾아와서 지역발전에 도움을 준 것에 고마워하는 모습을 보며 김 회장 역시 그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중국에 진출한 모든 기업이 김 회장처럼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많은 외국기업이나 한국에서 후발대로 온 기업들이 왔지만 지역 사회에서 신뢰를 쌓지 못해 다시 돌아가는 것을 많이 봤다. 이들은 그 지역민들과 함께 하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품역시 마찬가지였다. 김 회장에게는 인간 대 인간 못지않게 제품에 대한 신뢰도 중요했다. 그는 원가가 조금 더 들더라도 확실한 제품을 만들어 신뢰를 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했다.

 

중소기업과 개인에게 너무 먼 한국 정책

 

그에게 한국은 아직 제도 자체가 국민이나 사업인 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행정 내부의 편의 위주로 구성 돼 있었다. 가령 사업을 할 때 한 개의 인가를 위해 너무 많은 절차가 필요하고 결국 너무 많은 시간이 지체됐다.

그런 정책들은 대기업 위주의 제도가 많아 중소기업이나 개인들은 중간에서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가령 대학교 연구소의 경우 학생들이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하려면 비록 위험할 수 있는 것이라도 제공이 돼야한다. 그런데 현 상황은 그것을 위해서 이것저것 잡다한 허가절차와 제재하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대기업이야 따로 관리할 수 있는 시설이나 법적 절차를 자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으니까 손쉽게 허가를 받는다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그들이 어떤 연구를 위해 허가를 받으려면 석 달 넉 달이 걸리고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중소기업이나 작은 연구소에서도 연구개발을 맘 놓고 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를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법조계 출신 위주의 국회, 절차와 규제의 철벽 만들어

 

김종웅 회장은 행정상 너무 많은 절차와 규제가 있는 이유에 대해 두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 번째 이유는 실질적인 기업경영을 해본 정치인이 많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법조계 출신이기 때문에 기업인들이 겪는 어려움을 짚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강고했다. 이로써 법조계와 경영자 출신이 균형을 맞춰 국정을 잘 운영하는 것이 그 해결책이라 했다.

김 회장은 두 번째 이유로 규제완화에 너무 예민한 한국 분위기를 꼽았다. 설거지를 아예 하지 않으면 접시를 깨뜨릴 일이 없지만 실제로 닦다보면 한두 개 깨뜨릴 수 있는 일이다.김 회장은 그런 것에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며 이를 무조건적으로 처벌하고 막는 것보다 고의성 유무를 판단하고 구별하여 융통성 있게 처벌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결과가 나쁘단 이유로 도전정신을 가지고 시도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면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국민이 잘 사는 국민의 국회가 돼야.

김종웅 회장은 경제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기업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잘 받쳐 줄 수 있는 국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사업은 일종의 경기와 같다고 했다. 국내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과 함께 경쟁하며 일분일초를 다퉈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 국회는 입법기능 조차도 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고 했다. 기업들 민간인들과 함께 호흡하는 국민의 국회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회의원들 역시 원가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이 주는 세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까보다 당리당략과 표를 얻기 위해 예산을 어떻게 많이 확보하느냐 에만 혈안이 돼있는 국회를 비판하며 국가 예산은 국민들을 위해 쓰는 돈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준비된 사람들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회의원 중 자신의 연설문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보좌관이 써주는 대로 발언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청년실업 해결 3: 해외시장 진출 인력 양성·교육체계 전환·규제완화

 

우리 경제는 대부분이 수출에 의존한다. 이에 김종웅 회장은 앞으로 미래가 유망한 중남미 시장 등에 적극적으로 투입시킬만한 인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업이나 개인 뿐 아니라 해외에 있는 대사관들 역시 정부의 일만 볼 것이 아니라 자국의 국민들이 활발히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회장은 다른 한편으로 교육체계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론을 가르칠 교수와 실무를 가르칠 실질적으로 일하고 있는 경영인이라든지 기술자 등이 쌍방향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영국의 예를 들며 우리나라역시 무분별하게 많은 대학교 수를 대폭 줄이고 학생들이 이론 뿐 아니라 실무를 함께 배워 산업현장으로 바로 투입될 수 있는 교육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로 유럽의 유수한 기업들이 한국으로 진출해 이곳의 우수한 인재들을 동원해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언급하며 복잡한 규제로 국내로 들어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현실에서 규제완화는 청년실업에도 도움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진웅산업 전경

젊은이 애국심, 화목한 가정·봉사하는 정치인으로부터

김종웅 회장은 젊은이들의 애국심 부족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명했다. 그는 애국의 뿌리는 화목한 가정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부모에게 사랑받은 아이는 한국을 떠나 산다고 해도 부모가 있는 나라를 잊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로 지도자들이 국민에게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고 주장했다. 국회의원들이 봉사 정신없이 사리사욕만 채우면 국민들 역시 정부를 규탄하고 비난 할 뿐이기 때문이다.

 

삶의 희망은 목표와 함께, 운명에 끌려가지 말아야

 

그는 삶은 희망이 있기에 지탱되는 것이며 희망은 목표와 함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을 잃으면 삶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절망과 희망의 백지 한 장 간격에서 좌절을 털어내지 못하고 운명에 질질 끌려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존경하는 인물은 2011년 작고하신 박태준 포철 명예회장이다. 박태준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애국심 의리 신념 약속 등을 중시했다. “경영을 충실하게 하는 데에 나의 것이라는 의식은 도움이 되지만 거기서 나온 성과는 공의 것이다.”는 박 회장의 신조는 김종웅 회장이 아직까지도 깊게 새기는 말이다. 김 회장은 기업인들 역시 이런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김종웅 회장의 저서 절망과 희망의 간격을 보면 과연 성공한 경영인의 마인드를 엿볼 수 있다. 경영인으로서 바라보는 국회 역시 다른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 국민의 국회라는 말이 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보초병이고 국회는 국민의 민의로 쌓아올린 탑이다. 김 회장의 당부처럼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고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는 국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경력

3대 서울특별시의회 의원(대변인)

()송파발전연합회 회장

새누리당 서울특별시당 부위원장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

진웅산업 회장

송파구의회 의장

새누리당 새누리포럼 대표

건국대학교 겸임교수

저서

그날을 위하여(진원출판사)

아직 넘어야 할 언덕이 있다(학진출판사)

경험 지혜 그리고 미래(문학바탕)

절망과 희망의 간격(문학바탕)

수상경력

석탑 산업훈장수훈(1989)

중소기업대상 수상(1998IMF당시)

동탑 산업훈장수훈(2005)

2015 한국산업대상 수상(2015)

이채현 기자  redjoker@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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