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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 스쿨존, 무명무실 실버존‘30’이 약속하는 안전한 미래
김의상 기자 | 승인 2015.11.02 15:41|(188호)

스쿨존(School Zone)은 1995년 도로교통법에 의해 도입된 제도로 공식 명칭은 ‘어린이보호구역’이다. 성인에 비해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반응속도가 느린 어린이를 교통사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매년 늘어나는 스쿨존 수에 반비례하는 예산이 스쿨존의 원활한 운영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이다.
노인보호구역인 ‘실버존(Silver Zone)’은 이보다 더 열악하다. 2008년 도로교통법을 개정하여 7년 동안 시행하고 있지만 홍보가 미흡해 실버존의 존재조차 모르는 운전자가 대부분인 데다 강원도의 한 실버존은 인도가 설치되지 않아 요양원까지 차도로 이동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부산경찰청은 9월 17일 오후 부산청에서 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매년 늘어나는 교통사고
매년 11월 11일은 보행교통 개선의 중요성에 대한 범국민적인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2009년 제정된 법정기념일 ‘보행자의 날’이지만 농업인의 날, 빼빼로데이에 가려져 알고 있는 국민이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자동차 등록 현황이 2,000만 대(가구당 1.1대)를 넘어서면서 세계에서 15번째로 ‘2,000만 자동차 국가’가 됐다. 도로교통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2000년 29만 건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감소해왔지만 2007년 21만 건 이후 반등해 꾸준히 늘며 지난해 22만 3천여 건을 기록했다. 이중 보행자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50,315건으로 집계됐다. 매일 140여 명의 보행자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셈이다.
특히 어린이·노인 연령층에서 보행 중 교통사고 발생률이 높은 것을 감안해 보호구역을 지정·운영하고 있지만 보호구역 내 규제가 제대로 지켜지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2014년 11월 18일 충북 청주 성화초 스쿨존지키기 대책위원회 학부모들과 김용규(왼쪽) 청주시의원이 성화초 인근 단독주택 단지 진출입로의 초등학생 통학로 침범 문제 해결을 청주시에 요구하고 있다.

실효성(實效性) 없는 스쿨존 많아…
학교 앞 ‘교통안전지대’를 표방하며 전국에 설치된 스쿨존은 1만 8천여 곳, 하지만 단속장비가 설치된 곳은 2014년 기준 211곳뿐이다. 이중 165곳은 무인단속장비의 과속단속 기준이 스쿨존 제한속도 30km/h를 넘는 40~70km/h로 되어있어 제대로 단속이 이뤄지는 스쿨존은 46곳에 불과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스쿨존 내 모든 구간은 24시간 주·정차 금지구역이다. 주·정차한 차량들 사이로 아이들이 튀어나올 경우 운전자가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가장 많이 어기는 운전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학부모들이다.
광명시에 위치한 한 스쿨존은 도로를 사이에 끼고 ㅈ고등학교와 초등학교 두 개교, 중학교 한 개교가 몰려있다. 이곳은 매일 아침 등교시간이면 수많은 학생이 지나다니고, 지각을 면하기 위해 뛰는 학생도 쉽게 볼 수 있다. 출근시간과 맞물려 차량도 정체 속에 줄지어 다니지만, ㅈ고등학교 앞 도로 끝차선에 있는 차들은 저마다 비상등을 켠 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교문에서 스쿨존 밖까지는 100m가 채 안 되는 거리지만 학부모들의 차량이 학생들을 내리기 위해 교문 앞까지 와서 불법정차를 하는 것이다. 게다가 학생을 등교시킨 뒤 눈치를 보며 학교 앞에서 불법유턴을 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 모두가 바쁜 출근시간에 자신의 편의만을 위해 편법을 쓰는 것이다.
이 같은 행태에 대해 관할 경찰서에 문의한 결과 경찰청의 발표와는 달리 “단속장비가 설치된 스쿨존은 24시간 규제가 시행되지만, 설치되지 않은 스쿨존의 시행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정해져 있다”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주변 학교의 등교시간이 9시인데 학생들이 모두 등교한 뒤인 9시부터 스쿨존 규제가 시행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물었지만 담당 경찰관은 “우리(경찰)가 법을 제정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기자가 이어 단속장비가 없는 해당 스쿨존에서 발생하는 규제 불이행을 어떻게 단속하느냐고 묻자 “경찰은 이동식 촬영부스가 있어야만 단속을 위한 촬영이 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설치만 해놨을 뿐 관리·감독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이어 “일반인이 캠코더 등을 이용해 동영상 촬영 제보를 할 경우 단속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서 속도위반, 지시위반, 신호위반, 보행자 보호의무위반, 통행금지위반, 주정차위반 등 5개항 위반 시 벌점 및 범칙금이 일반도로에 비해 2배 부과된다.

강원 춘천지역에 설치된 노인보호구역(실버존)에 인도표시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노인들이 통행하는 차량을 피하는 한편 도로 중간으로 보행을 하고 있다.

실버존이 뭐예요?
거동이 불편하거나 반응속도가 떨어지는 노인은 교통사고 발생율도 높을 뿐더러 교통사고 발생 시 중상에 이르거나 사망하는 등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교통사고 발생 시 노인 보행자 사망률은 71세 이상 7.33%, 65세 이상 70세 이하 3.75%, 61세 이상 64세 이하 2.30% 순으로 14세 이하 0.55%, 15세 이상 20세 이하 0.92% 등 어린이와 비교해 크게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보행 중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보행자는 895명으로 전체 사망자 1,843명 중 절반이 노인 보행자였다.
노인 보호구역 ‘실버존’은 2008년 도입된 교통안전구역으로, 거동이 불편하고 교통법규 준수에 대한 의식도 부족한 노인들이 도로를 무단횡단하다 당하는 사고로부터 노인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실버존은 스쿨존과 마찬가지로 전 구역 내 운행속도가 30km/h로 제한되고 주·정차도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실버존의 존재를 아는 운전자는 많지 않다. 실버존이 적기도 하거니와 과속방지턱, 표지판 등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실버존임을 모른 채 지나치는 곳도 있다. 현재 실버존은 전국적으로 670여 곳에 불과하다. 1만 8천 개 스쿨존의 4%가 안 되는 수준이다.
원주시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4만여 명에 달하지만 실버존이 설치된 곳은 한 곳뿐이다. 김인순 원주시의원은 “노인 교통사고에 대한 시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만큼 노인복지회관을 비롯해 공원 등 노인 집중 장소를 선별해 실버존 지정 및 다각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시 관계자는 “스쿨존처럼 명확하게 대상지를 선정하기 어려운 데다 관련 부서와의 협의도 거쳐야 하는 등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경로당과 노인복지시설, 공원, 체육시설 등 노인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 설치할 수 있게 돼있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시간대에 한 곳으로 밀집하는 학교 앞 스쿨존과 달리 실버존은 지정구역에 대한 명확한 주체를 지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전통시장 주변 등의 경우 관련 법규가 없어 지자체에서 자발적으로 설치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노인 관련 시설에서 직접 신청해야 하지만 홍보가 미흡해 노인들조차 실버존을 모르거나 필요성을 못 느껴 신청을 하지 않는 것도 한 원인이다.

설치비 전액 市 부담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 보행자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10,605건으로 총 50,315건 중 21%를 차지했다. 19세 이하 미성년자 9,056건보다 많은 수치다. 그러나 실버존을 임의로 설치할 법적 근거가 없고, 설치비용의 50%가 국비로 지원되는 스쿨존과는 달리 설치비용을 전액 지자체 예산으로 마련해야 하는 실버존은 각 지자체에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스쿨존과 마찬가지로 실버존을 지정하면 속도 제한과 함께 과속방지턱, 적색 포장, 방어벽 설치 등 안전조치를 해야 하는데, 여기에 드는 비용 4천만 원이 걸림돌이다. 허억 가천대 국가안전관리대학원 교수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 사고의 3분의 1이 노인인데, 정부의 노인 관련 예산은 제로”라며 “예산 배분 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 정갑윤 국회부의장(울산 중구)이 10월 19일 오후 중구 학산동 당원협의회 사무국에서 약사중학교 어머니회 김미선 회장, 남외초등학교 어머니회 이정선 회장, 백양초등학교 허소연 회장 등 학부모 및 학부모회 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학교 안전 및 교육환경 개선에 더욱 힘쓰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학부모들은 이중창문 설치, 방음벽 개선 등 학교 및 주변시설 개선, 스쿨존 내 신호점멸 및 과속방지턱 개선 등 등하굣길 교통안전대책 마련 등을 요청했다.

마음의 속도, 시속 30킬로미터
스쿨존·실버존 같은 보행자 보호구역이 아니더라도 이면도로, 하이패스 통과구간, 주택가 등 속도 30km/h 제한 도로가 유독 많다. 세계적으로도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 각국은 이미 도심의 차량속도를 30km/h로 제한하고 있다. 왜 ‘30’일까?
답은 사고발생률에 있다. 지난해 울산은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인구 10만 명당 8.7명에 달해 부산 5.3명, 서울 3.9명에 비해 많고 광역시급 최고 수준이었다. 울산 경찰은 12월 남구 문수로 구간 속도제한을 기존 70km/h에서 60km/h로 낮춰 운영한 결과, 시행 후 교통사고 발생률 20%, 인적피해 64.3%이 줄어들었다고 발표했다.
백남철 한국건설기술연구원 ICT융합연구소 연구위원은 “연구결과 치사율은 20mph(32㎞/h)에 비해 30mph(48㎞/h)은 7배, 40mph(64㎞/h)은 31배 높아진다”며 “특히 60세 이상 노인의 치사율을 보면 20mph(32㎞/h)에서 5% 사망, 30mph(48㎞/h)에서 50% 사망, 40mph(64㎞/h)이상으로 자동차와 충돌하면 98% 사망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제한 속도를 낮춰 얻을 수 있는 안전과 건강상의 이점이 매우 크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나와 내 가족을 지키는 속도 ‘30’
현대과학기술의 집약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가 제공하는 편리함은 매력적이다. 차가 없었다면 문득 바다가 보고 싶어질 때 당일치기로 다녀오거나 마트에서 일주일치 장을 보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반면 안전을 위협하고 대기오염을 가중시키는 등 건강한 삶을 해친다는 단점도 있다. 자동차가 주는 편의를 포기할 수 없기에 편의와 안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위한 것이 제한속도 30km/h다.
보행자 보호구역 제한속도 30km/h를 지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마음 속 이기주의가 피어오르기도 하거니와 이를 꾹 참고 규정속도를 지키면 어김없이 뒤에서 불빛과 아우성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30’을 지켜야만 하는 것은 스쿨존·실버존이 내 자녀와 부모를 교통사고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교통약자뿐 아니라 보행자 전체가 안전한 삶을 약속받는다면 그 가치는 환산 불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운전자 역시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가 되는 것을 알고, ‘보행자를 위한 서행운전이 곧 나를 위한 운전’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의상 기자  estkin@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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