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무잡잡한 피부와 단단한 몸매, ‘코리안탱크’ 최경주는 전남 완도 바닷가에서 아버지를 도와 밭을 갈던 소년이었다. 열일곱 살에 골프를 시작한 최경주는 2000년 미국 PGA 투어에 입성한 이후 통산 8승에 빛나는 세계적인 골프 선수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그런 그가 ‘아시아 최초 유치’라는 타이틀과 함께 프레지던츠컵을 고국에 선물했다.
국내 골프팬들은 대회 전 우려와는 다르게 성숙한 갤러리 문화를 보이며, 최경주 프로에 답례했다. 전 세계 226개국에서 10억 명 이상이 지켜본 2015 프레지던츠 컵은 한국을 널리 알리고, 국가의 위상을 높이며 스포츠·민간외교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정경뉴스는 프레지던츠 컵 유치의 일등공신이자 인터내셔널팀 수석부단장을 맡은 최경주 프로를 직접 만나 생생한 경기 후일담을 들어봤다.

세계적 골프선수 '코리안 탱크' 최경주 프로.

말 한마디에서 시작한 프레지던츠컵
최경주 프로는 2003년 남아프리카, 2007년 캐나다에서 열렸던 프레지던츠컵에 선수로 출전한 적이 있다. 최 프로가 2007년 캐나다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에 출전할 당시 캐나다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최 프로는 자국 선수가 한 명도 없는 캐나다가 대회를 유치한 것에 의아해했고, ‘우리나라는 나를 비롯해 출전할 선수도 충분히 있는데 개최하지 못할 이유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최 프로는 당시 대회 개최지가 미정이었던 2015년 경기 한국 유치를 건의했고, 이후 우리 정부와 톰 핀첨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커미셔너, 류진 2015 프레지던츠컵 조직위원장(주식회사 풍산 대표이사) 간 수차례 소통을 통해 마침내 한국이 아시아 최초로 프레지던츠컵을 유치하는 기쁨을 맛보게 됐다.
최 프로가 자국에 대한 애국심을 갖지 않았다면 캐나다의 대회 유치 사례를 경험하면서 경기만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최 프로가 던진 “우리도 유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 한마디가 전 세계 10억 명에게 한국을 알리는 초석이 된 것이다. 스포츠외교의 일등공신인 최 프로는 대회사상 최초로 마련된 수석부단장직을 수행하며 세 번째 프레지던츠컵 출전을 하게 됐다.
최경주 프로는 이번 프레지던츠컵에 선수가 아닌 수석부단장으로 참가했다. 닉 프라이스 인터내셔널팀 단장을 대신해 사실상 한국에 관련한 모든 것을 총괄한 책임자였다. 그는 선수들 몸 상태를 체크하고 긴장감을 풀어줬으며 코스에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최 프로는 “(내가) 일정 부분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선수들이 질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했기에 좋은 성적을 보일 수 있지 않았겠냐”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프레지던츠컵 우승컵을 들고 있는 단장단(좌로부터 제이 하스 미국팀 단장, 최경주 인터내셔널팀 수석부단장, 닉 프라이스 인터내셔널팀 단장).

스포츠외교로 국격 상승하다
프레지던츠컵이 개막하기 전 국내 골프 갤러리 문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갤러리 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 자칫 대회를 유치하고도 국가브랜드에 손실을 초래할까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 내내 훌륭한 관전 태도를 보여 ‘완벽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대회를 마무리했다.
미국팀을 상대하는 국제연합, 인터내셔널팀의 응원 열기 또한 대단했다. 10만 명이 넘는 갤러리가 몰려 역대 최다 갤러리 수를 기록해 선수들 역시 본인 기량 이상의 실력을 뽐내며 대회 마지막 날까지 승부를 알 수 없는 접전을 펼쳤다. 최경주 프로는 “국내 골프팬들이 한마음으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경기였다”며 “팬들이 (훌륭한 관전매너를) 보여주신 만큼 준비요원과 선수들도 준비한 것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말했다. 최 프로는 이어 경기 종료 후 눈물을 흘린 것에 대해 “많이들 오해하시는데 진 것이 아쉬워 운 건 아니다”며 “실력 차이를 집중력으로 메운 선수들과 열화와 같은 성원을 해준 팬들을 생각하니 감동이 복받쳐 울었다”고 밝혔다.
기량만 놓고 본다면 인터내셔널팀이 미국팀에 뒤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터내셔널팀 닉 프라이스 단장과 최경주 수석부단장 등 단장단은 기량 차를 이겨낼 전술에 고심을 거듭했다. 최경주 프로는 “팀 배정과, 플레이어 순서를 전략적으로 짠 것이 유효했다”며 “인터내셔널팀에 보낸 국민들의 성원이 선수들에게 의지를 심어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최 프로는 이어 “선수들이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음식, 교통, 시설, 문화 등에 불편함이 없도록 대회 관계자들이 신경을 많이 썼다”며 “양 팀 선수 모두 즐기는 경기를 할 수 있었고, 한국에 좋은 이미지를 갖고 기분 좋게 떠났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프레지던츠컵은 세계 정상급 골퍼들이 모인 경기인 만큼 승패를 떠나 그 자체로 우승이 아닌가 싶다”며 유감없이 잘 싸운 성공한 대회라고 평가했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인물은 ‘수퍼문’ 배상문 선수다. 그는 병역과 관련해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본인이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게다가 팽팽한 접전 끝에 마지막 경기에서 플레이를 하게 돼 마치 본인의 실수가 팀의 패배를 만든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상황이 부담감을 가중했을 것이다.
최경주 프로는 경기가 끝난 후 배상문을 안아주며 “네 탓이 아니다”며 “아쉽지만 잘했다”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했다. 최 프로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 친구한테는 군대 문제가 가장 큰 문제였으니까 이 기회에 다 씻어버리길 바란다”며 “제대 후 새출발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친구니까 잘할 것”이라고 격려의 말을 이었다.

지난 10월 15일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에서 인터내셔널팀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는 갤러리들.

외국에서도 인정한 골프 문화
북핵 문제 등으로 최근 미국 조야에서 평가가 나빠진 한국의 국가이미지가 회복세를 띠고 있다. 최경주 프로는 프레지던츠컵이 끝난 뒤 미국에 다녀오는 길에 우연히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부시 전 대통령이 최 프로에게 건넨 첫마디는 “Your country is best”였다. 또 최 프로가 속해있는 골프클럽 내 미국인들 역시 “이제껏 경험한 프레지던츠컵 중 가장 재밌었고 특히 코스가 굉장히 아름다웠다”며 극찬을 보냈다.
2015 프레지던츠컵은 골프대회를 넘어 해외동포의 자긍심을 높이고, 한국의 문화수준을 외국에 널리 알린 매개체였다. 특히 GDP 대비 무역의존도가 110%에 육박하는 우리나라는 이번 대회가 가져다 준 경제효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최경주 프로는 “객관적으로 선수 입장에서 보더라도 내가 참가했던 세 번의 프레지던츠컵 중 어느 곳보다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며 “이번 프레지던츠컵을 통해 한국의 국가브랜드 가치가 분명히 올라간 것으로 본다”고 자평했다.

세계적인 스타들이 티샷을 할 때마다 많은 갤러리들이 환호하고 있다.

골프대회는 대통령배가 없다?여전히 미지수인 국내 골프의 미래
이렇듯 국내 골프계는 세계에 위상을 떨치고 있지만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축구, 야구 등 주류 스포츠에 한참 뒤떨어진 주니어 육성 프로그램은 국내 골프 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박 대통령이 프레지던츠컵 개막식에서 2016년 리우올림픽에 골프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을 언급했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이 전무한 것도 안타깝기만 하다. 골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자 국가대표선수를 키우기 위한 센터를 부랴부랴 설립한 중국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최경주 프로는 “선수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며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상위에 꼽히는 만큼 이젠 귀족골프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골프에 대한 정부 정책도 그 수준에 맞춰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최경주 선수가 2013년 4월 10일(현지시간) 전 GWAA(미국골프기자협회) 회장인 덕 퍼거슨 AP 선임기자로부터 아시아에서 최초로 ‘찰리 바틀렛 상’을 수상하고 있다.

각종 골프대회에서 이름을 떨친 선수가 숱하게 나오지만 여전히 수많은 유망주들이 열악한 환경에 방치되는 것에는 ‘골프는 개인 스포츠’라는 편견도 한 몫 한다. 선수들이 개인적으로 출전해 수입을 얻는 것은 맞지만, 골프는 결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또 태극기를 달고 국가를 대표해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개인을 뛰어넘어 국가 자산으로 봐야할 것이다. 최 프로는 “국가는 재능 있는 선수를 발굴해 훌륭하게 키워낼 의무가 있다”며 “국민생활체육회나 문화체육관광부도 골프에 대한 편견을 지우기 위해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내 대통령배 골프대회는 1975년 10월을 마지막으로 40년간 부활하지 못했다. ‘대통령배’는 많은 국민의 관심을 받는다는 일종의 징표이며, 그것이 갖는 위상은 대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대통령배 골프대회가 사라진 것은 당시 골프는 일부 계층에만 국한된 스포츠였기에 국민들에게 이질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현재 국내 골프인이 60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대통령배’가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최 프로는 “‘대통령배’라는 이름을 쓰면 상부에서 지적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소극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문제”라며 “이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겠냐”고 말했다.

최경주 프로가 6월 1일 쪽방촌 거주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쌀을 모으기 위한 '라이스 버킷 챌린지'에 쌀 300kg을 기부하며 동참했다.

나눔 정신 이은 ‘빈 잔 철학’
최경주 프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골프 선수가 되기까지 아낌없는 지원으로 도운 피홍배 회장을 삶의 모토로 삼았다. 그래서 최 프로는 “(피 회장을) 아버님으로 모시고 친자식 같은 마음으로 존경한다”고 말했다.
최 프로는 피 회장을 닮아 자선사업에 손이 크다. 2007년 최경주재단을 만든 이래 기부한 54억 원을 포함해 총 100억 원에 이르는 금액을 기부했다. 아시아 최초로 미국 기자들이 자선 골퍼에게 주는 ‘찰리 바틀렛 상’도 받았다. 최 프로는 “내가 가진 재능과 시합을 통해 얻은 경험, 기술을 후대에 모두 주고 가고 싶다”며 나눔의 뜻을 밝혔다. 그는 이어 “현재 꿈나무들이 크고 나면 또 다른 아이들이 꿈나무가 될 것”이라며 “꿈나무가 자생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하겠다”고 했다. 봉사정신이 투철하다고 평가받는 데 대한 기자의 질문에 최경주 프로는 “지금까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되돌려주기 위해 꿈나무들을 키우는 데 나름대로 베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진의 ‘빈 잔’을 애창곡으로 꼽는 그는 오늘도 누군가의 빈 잔을 채우기 위해 땀 흘리며 구릿빛 피부를 반짝이고 있다. 그의 구슬땀으로 가득 채울 빈 잔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최경주재단이 7월 28일부터 3박 4일 동안 안산 대부도에서 ‘Coming Together as ONE’이라는 주제로 2015 여름 캠프를 개최했다.

최경주 선수 주요 프로필
경력
2007 최경주재단 설립(재단 이사장)
2008 서울특별시 홍보대사
육군 홍보대사
2010 민선5기 서울특별시 홍보대사
2012 인천국제공항 명예홍보대사
2012 희망서울 홍보대사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홍보대사
2015 제11회 프레지던츠컵 인터내셔널팀 수석부단장

프로대회 우승
1996 한국 오픈

1999 코오롱 한국 오픈
기린 오픈
우베 고산 오픈
2002 뉴올리언즈 콤팩 클래식
템파베이 클래식
2003 SK텔레콤 오픈
린데 독일 마스터즈
2005 SK텔레콤 오픈
그린스보로 크라이슬러 클래식
2006 크라이슬러 챔피언십
2007 메모리얼 토너먼트
AT&T 내셔널
2008 LG 스킨스 게임
SK 텔레콤 오픈
하와이 소니 오픈
2009 이스칸다르 조호르 오픈
2011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수상
2011 (사)한국언론인연합회 선정 자랑스런한국인대상
스포츠부문 수상
나누는 행복이 가득한 곳 (사)최경주복지회
후원계좌 ㅣ 신한은행 140-008-158958(예금주 사단법인 최경주복지회)
후원문의 ㅣ Tel. 02-556-1026 Fax. 02-556-1027 / Email. kj@kjchoifoundation.org

장우호 기자  koreana37@mjknews.com

<저작권자 © 정경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