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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와 아시아 경제전략 구도의 변화한국의 미진한 대응
김의상 기자 | 승인 2015.10.30 16:27|(188호)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을 둘러싼 논쟁이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미국 방문 중 박대통령이 직접 TPP 가입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국가 원수의 발언이므로 장관의 언급과는 급이 다르다. 하지만 몇 년 전 TPP 가입 기회가 있었음에도 실기한 이유는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TPP 참여 12개 나라 중 10개 국가와 이미 FTA(자유무역협정)를 맺었다는 사실은 TPP에 소극적인 태도를 합리화시켜주는 가장 큰 논리였다. 부품 소재 시장을 일본에 개방해야 한다는 점도 이유로 거론됐다. 농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 불가 역시 참여 지연의 논리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의 분명한 의사 표현으로 위의 말들은 핑계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참가 거부 혹은 지연 이유가 그토록 확실하다면 지금도 같은 논리를 계승, 현 정부는 TPP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TPP를 둘러싼 경제 이해득실을 다시 따질 필요가 있을까? TPP가 지닌 눈에 보이는 것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의미를 헤아려 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다.

10월 8일 오전 서울 코엑스에서 TPP 전략포럼 회의가 열렸다. 이번 포럼에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무역협회, 코트라 등의 TPP 전문가 및 기타통상 전문가들과 학계 인사들이 참여했으며 이들은 협상 타결 의의와 내용, 향후 한국 전략 방향을 모색했다.

아시아 경제체제의 전략적 변화
소련 멸망 후 미국을 비롯한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한숨을 돌렸다. 공산주의 멸망으로 민주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할 요인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소련 멸망 즈음 같은 공산주의로 출발했던 중국은 자본주의 개혁개방의 길을 열심히 걷고 있었다. 새로운 도전은 성공적이어서 엄청난 부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미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열강들의 승인 덕에WTO 가입에도 성공했다. 그 후 10%가 넘는 초고속 성장을 이어온 것은 모두가 안다. 이상의 설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중국은 분명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에 편승해서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이유로 후에 드러나는 중국의 표변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위와 같은 질서 순응이 지속돼야 서구 자본주의 열강, 특히 미국과 평화로운 관계가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TPP(미국 주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RCEP(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등 무역과 국제금융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거버넌스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입지를 넓힐 수 있는 경제 외교가 필요하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APEC 경제회의에서 인사하는 미·중 정상.

그런데 후진타오 주석 임기 후반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초고속 성장과 중화 민족주의에 불이 붙으면서 중국은 힘을 분출하며 주변국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을 숨긴다는 ‘화평굴기’는 ‘대국굴기’라는 용어로 대체됐다. 일본과 센카쿠열도 분쟁이 일어났고, 한국과는 이어도 논쟁, 멀리 동남아시아에서는 군도분쟁이 뒤를 이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시진핑 주석은 집권하자마자 신형대국 관계를 들고 나왔다.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모두를 포괄할 정도로 넓다”는 식의 발언을 통해 중국의 의도는 분명해졌다. 한 마디로 중국도 이제 컸으니 현재 아시아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이 그것을 인정, 중국의 대아시아영향력을 수용하라는 것이었다.

세상이 그렇게 간단할까? 미국은 세계대전을 두 번 이기고, 한국전, 월남전 등 수많은 국지전을 치르며 오늘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말로 기득권을 양보한 사례는 국제관계사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은 일언지하에 중국의 제안을 거절했고, 아마 속으로는 기가 찼을 것이다. 미국 대외정책의 패턴을 살펴보면 다음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사고와 정반대로 태도 돌변 현상이 공존한다는 점이 다른 나라와는 다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되지도 않을 법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주장하며 미국이 국제연맹을 만든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의회의 반대로 미국은 국제연맹 회원국이 될 수 없었고, 세계 문제를 뒤로 한 채 미주대륙으로 숨어버렸다. 미국 이상주의의 맹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지금도 자주 거론되는 얘기다.

비슷한 일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도 반복됐다. 소련에 대한 미국의 호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전쟁 중 경제원조를 아끼지 않았고, 전후에도 우호관계는 지속될 것으로 봤다. 영국이 그렇게 주의를 주는데도, IMF(국제통화기금)의 소련지분을 영국과 같은 수준으로 정해놓고 설립 당사자도 아닌 소련의 참여를 기다릴 정도였다. 하지만 1947년 그리스와 터키가 소련의 사주로 공산화 위험에 처하자 태도는 돌변했다. 그리스와 터키를 도와 소련의 의도를 무산시키는 것은 물론, 소련을 제일의 적으로 규정, 아예 봉쇄시키겠다고 나선 것이다. 무시무시한 내용의 투르만 독트린(Truman Doctrine)은 그렇게 선포됐다. 처음에는 어려워 보였지만 수십 년이 지난 후 소련은 우리에 갇혀 굶을 수밖에 없었다.

같은 논리를 현재의 아시아 정세에 적용하면 무리일까? 앞서 설명했듯이 중국의 미국에 대한 도전이 가시화되자 미국은 언제 친중을 했냐는 듯이 태도를 바꿨다. 대중 경계 태세 돌입은 부시 대통령 임기 후기부터 가시화됐다. 오바마 정부에서는 아시아 회귀정책(Pivot to Asia)으로 제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먼저 중국을 군사적으로 포위하기 시작했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첨단 전략무기가 오키나와, 괌 등 중국과 가까운 지역에 배치됐다. 태평양 함대를 가시적으로 강화하는 조치가 뒤를 이었다. 센카쿠 열도가 미일동맹의 대상이라는점을 분명히 하며 중국에 경고도 날렸다. 동남아시아의 군도 분쟁에 대해서도 미국이 설정한 기존 질서, 즉 자유통항의 원칙을 위반하면 안 된다고 중국을 압박했다. 이어 베트남과 인도를 군사협력 파트너로 끌어들였다.

TPP는 위와 같이 전략구도 변화가 가시화되는 와중에 미국이 적극 참여하며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하기에 TPP를 대중포위전략으로 이해하는 데도 무리는 없다. 우선 최고 수준의 시장개방 원칙을 고수함으로써 중국의 TPP 참여를 사실상 봉쇄하고 있다. 특히 자본시장의 완전 개방은 중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인데,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간단히 말해 중국의 고성장이 꺾이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개방 후 발생한 한국의 경제위기가 중국의 뇌리에 아직도 생생하기에 개방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TPP와 관련해 한국 통상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누적원산지 규정(accumulation rules of origins)역시 중국을 포위,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 중국경제가 고도화되기 시작하자 약 10년 전부터는 중국도 한국과 같이 부품 소재 등 중간재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중간재 수출은 더욱 중요해지지만, 가장 넓은 시장을 가지고 있는 TPP 회원국에게 중간재를 파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려워진다.

전략 구도 변화와 한국의 대응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참여국.

경제전략구도가 변하는 상황에서 중국과 전략적으로 대척점에 있는 국가 대부분은 TPP에 참가했다. 특히 일본과 베트남의 참여가 돋보인다. 중국 역시 미국의 포위전략에 적극 대응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와 일본이 참여를 거부한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를 영국 등 유럽 강대국을 참가시키며 성공시켰다.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고 개방수준이 낮지만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를 주도, 한국과 일본과 함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규모나 질적 측면에서 중국 주도 국제협약들이 미국의 그것과 비교될 수는 없는 일이다.

TPP 협상 타결을 알리며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과 같은 나라가 세계경제질서를 주도하게 할 수는 없다”는 단정적인 표현을 썼다. 이 정도면 미국과 중국 중 하나가 고개 숙이기 전에 경쟁이 수그러들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그렇다면 한국의 대응이 미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며칠 전 한국의 유력 언론인은 현황을 다음과 같이 예리하고 뼈아프게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대중(對中) 전선에서 미국과 함께 중국에 맞설 의사가 없다는 신호를 여러 번 미국에 보냈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의를 미루고, 미국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난사군도 문제에도 아예 입을 다물었다… 며칠 전에도 미 국방부와 가까운 유력 연구소가 중국의 대만·난사군도 공격을 가정한 미·중 전쟁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미국의 중국 경계심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일본은 그걸 알고 있고 우리는 모른다. 미·중 사이에서 가중치를 어느 쪽에 무겁게 둬야 하는지 무시한다. 벌써 워싱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송희영, 「조선일보」).”

정확한 지적이다. 그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중국이 북한의 반대를 무릅쓰고 1990년대 초반 한국과 수교한 이유를 살펴보면 설명의 단초가 나온다. 중국의 영민한 지도자 등소평(鄧小平)은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이해와 한국 수교 후 향유하게 될, 특히 경제적 가치는 공존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정경분리 원칙인데, 중국은 놀랍게도 그때 정해진 외교 원칙을 지금도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헷갈리기 시작했다. 2030년경 중국이 미국을 앞설 것이라는 검증 안 된 가설, 중국을 통해 북한을 제어할 수 있다는 희망, 문화적인 동질성, 밀접한 무역관계 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앞으로 15년 후 중국의 국력이 미국을 앞설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지식 세계에서 사라졌다. 북한을 제어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가정도 등소평의 원칙에 따르면 어림없는 일이다. 경제와 문화 역시 전략적 계산과는 별 상관이 없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균형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그렇게 합리화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최근 들어 명확해지고 있다. 말을 뒤집어 보면 한국도 등소평의 원칙을 따르면 충분했다는 의미다. 경제분야는 경제 논리로, 정치분야는 전략적으로 판단하면 그만이었다. 따라서 안보 이해는 미국에 맞춰야 했고, 반대로 경제적 득실은 우리의 이해에 따라 계산하면 됐다. 예를 들어 TPP 참가에 중국의 눈치를 볼 이유는 애초부터 없었고, 반대로 중국이 주도한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역시 미국을 설득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행동은 반대였다. AIIB 참여가 지연되면서 제 대접을 못 받고 있고, TPP는 다 늦게 참여를 부탁해야만 하는 입장이 됐다. 지금이라도 위의 원칙을 지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국제관계의 기본 원칙을 재삼 강조하는 이유는 전략구도에서 밀리는 것이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의상 기자  estkin@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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