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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 비웃는 전세금 상승,정부 정책 실효성 없어6년 새 50% 치솟아…가계 소비 위축으로 직결
김의상 기자 | 승인 2015.10.16 20:32|(187호)
동대문구 전농동 아파트에 사는 박 씨(32)는 내년 2월에 만료되는 전세계약 때문에 밤잠을 설친다. 신혼집으로 구해 2년 동안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집을 치솟은 전세금 때문에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2년 전 2억 1,000만 원이었던 전세금이 현재 2억 2,900만~3억 1,000만 원까지 올랐다는 소문이 들렸다. 퇴근길에 부동산에 들러 슬쩍 시세를 물어보니 얼마 전 이사 온 옆집 전세금이 3억이라고 한다. 조 씨는 전세자금대출을 알아봤지만 이미 2년 전 집을 구할 때 받은 대출금이 있어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집값이 조금 싸다고 하는 수도권 지역으로 집을 알아보고 있지만 직장과의 거리 때문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전국의 아파트 전세가율이 71%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 저금리 기조와 전세 물량 감소가 계속되고 전셋값은 상승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 전세금
전세제도는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주거제도다. 보통 2년 단위로 집값의 50~80%를 내고 남의 집을 장기적으로 빌려 사는 제도인데 두 가지 전제를 기반에 둔다. 하나는 부동산 불패 신화요, 다른 하나는 고금리다. 둘 중 하나라도 작동해야 전세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

부동산 시장은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등에 업고 투기자본의 주요 활동무대였을 만큼 활황이었다. 아파트 가격은 해마다 상승했고, 사람들은 사고팔기를 반복하면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불패신화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불패 신화는 깨졌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침체된 내수시장을 살리기 위해 저금리기조가 지속되면서 고금리 시대도 마감했다. 불패 신화는 불안정한 시장으로, 영원할 것 같던 고금리는 맥없이 떨어진 것이다. 현 기준금리는 1.50%로, 지난해 8월과 10월, 올해 3월과 6월 등 4차례에 걸쳐 기준금리가 0.25%p씩 인하된 뒤 석 달째 유지되고 있다. 저금리기조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두 가지 전제가 무너지자 부동산 시장의 수요·공급 균형이 깨지기 시작했다. 임차인은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을 예상해 매매를 망설이며 전세를 선호하는 대신, 임대인들은 저금리로 인해 전세를 기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속도가 빠른 이유다.

전세 공급이 줄어들면서 전세금 상승세는 꺾일 줄 모른다. 전세금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2009년 봄 이사철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6년 6개월간 47% 상승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이미 70%를 넘어섰다. 아파트 전세가율이 높다는 것은 위험신호다. 70%가 절대 기준은 아니지만 역대 최고 수준이던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도 60%대 후반이었다는 점은 현재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한다.특히, 서울이 가장 심각하다. 성북구는 아파트매매가 대비 전세금 비율이 80%를 넘었고 강남권은 재건축 이주 수요 급증으로 폭발적으로 오르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서울 전세금은 평균 4.45% 올랐는데 강남3구 아파트 전세금 상승률은 8.56%에 달한다.
 
정부 정책 실효성 없어
전국아파트 전세가격지수 추이

박근혜정부는 2013년 2월 출범 후 2년 7개월간 총 11번의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약 3개월마다 새로운 대책을 내놓은 셈이다. 주택매매 활성화와 서민주거안정이 목적이었지만 지금까지는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토교통부가 9월 2일 내놓은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강화 방안’은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을 낮추기엔 역부족이며 치솟는 전월세 시장을 안정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강화 방안’은 노후 단독주택을 재건축·리모델링해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집주인 리모델링 임대 시범사업’과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물량 확대를 골자로 한다. ‘집주인 리모델링 임대 시범사업’은 집주인이 주택도시기금으로부터 낮은 금리(1.5%)로 융자를 받아 노후주택을 개량한 뒤, 이를 임대료 시세의 50~60%만 받고 빌려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집주인이 굳이 융자를 받아 리모델링을 하고 전세를 줄 이유가 없다. 월세로 전환하는 것이 본인에게 훨씬 이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세에서 월세로의 전환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부동산시장 통계를 보면 전·월세 물량 10개 중 6개는 월세다. 4년 전엔 10개 중 3개였다. 뉴스테이는 내년이나 돼야 본격 공급이 가능해 전세난 해갈에 거의 도움이 되지 못한다. 정부정책이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대책이라기보다는 부동산시장 띄우기 정책이라고 비판을 받는 이유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감시팀 부장은 “재건축·재개발 촉진책은 오히려 전세난을 부추기고 있고 뉴스테이는 임대사업자의 수익성에 치중해 ‘중산층을 위한 월셋집’이라는 당초 취지와 멀어졌다”며 “이처럼 공급자 중심의 정책으로는 서민주거안정을 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정책이 임차인보다는 임대인 위주의 공급정책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주거안정보다는 부동산시장 활성화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는 뜻이다. 재건축 연한 단축과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도 적용 시기 연기, 총부채상환비율(DTI) 및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완화 등 각종 규제완화 조처를 쏟아낸 게 대표적이다. 서민 주거비 안정 방안은 4월 임차보증금 및 전세대출 금리 인하 정도가 고작이다. 행복주택이나 준공공임대주택 등 서민용 임대주택 공급책도 내놨지만 제도적 한계에 부딪혀 실효성이 없거나 신혼부부·대학생 등 특정계층에 국한돼 있고 공급물량도 제한적이어서 서민주거안정을 도모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가계 빚 증가, 소비 위축시키고 재정건전성 악화시켜
현대경제연구원은 고령화, 일자리 감소, 소득 분배 악화에 이어 전세금을 경기 침체의 4대 주범으로 꼽았다. 전세금을 위해 대출을 받거나, 월세 전환으로 인해 주거비 부담이 증가하면 가계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지난 6월 “월세 주거비가 1% 오르면 전체 가구의 소비 감소는 0.2%, 저소득층 가구의 소비는 0.09% 줄어든다”고 발표했다. 빚으로 인한 소비침체는 결국 내수 경기를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이런 사이클이 부동산 시장과 나라 경제를 회복 불능으로 망가뜨릴때까지 무한 반복될 수도 있다.

가계 빚이 늘어나면 국가 전체의 재정건전성도 보장할 수 없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주택대출규제정책을 대폭 완화시켰다. “한여름 옷을 한겨울에 입고 있는 격”이라고 비유한 최 부총리의 주장대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 한도를 각각 70%, 60%로 완화했다. 그 결과 주택담보대출은 급증했고 올 상반기까지 전세대출이 있는 가정은 약 80만 가구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전체 전세 가구수가 350만인 것을 감안하면 4가구 중 1가구꼴로 대출을 받아 전세금을 마련했다는 뜻이다. 6월 말 기준, 은행권과 주택금융공사 등의 주택담보대출은 567조 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12.2% 증가했다. 2010년 이후 2분기 기준 연평균 증가율의 두 배가량 높아진 수치다. 소득이 정체한 상황에서 빚내서 집 사라는 정부의 부동산 부양 정책 탓에 가계부채는 1,130조 원에 육박한다. 가계부채가 우리나라 경제를 위험에 빠뜨릴 만한 뇌관이 되는 것이다.
 
정책 방향 변화 절실
가을 이사철과 서울 강남권 재건축단지의 이주가 임박해 전세난 확산이 우려되는 9월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부동산중개업소에는 전세물량은 사라지고 매매 시세를 알리는 전단지가 가득하다.

부동산 대책의 무게중심을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쪽으로 확실하게 옮겨야 한다. 전세금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저금리기조에서 탈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주거 안정망 보완 차원에서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을 더 추진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저금리 속에서 전세가 월세로 전환되는 흐름을 막을 수 없고 급격한 월세화에 충격에 대한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계 입장에서 없던 월세 부담이 생기면 소비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월세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정부가 세입자 보호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계약임대주택’ 제도를 시행 중인 독일을 참고할 만하다. ‘계약임대주택’은 집주인에게 취득·등록세, 재산세 등을 감면해주고, 집 수리비(가구당 최고 3,000만 원) 지원 등의 혜택을 주는 대신 임대계약 기간을 장기로 설정하는 임대주택 모델이다. 더불어 임대인보다는 임차인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집세를 주인 마음대로 올릴 수 없고 임차인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할 경우 일정시간을 제공하도록 한다. 주거의 안정성을 보장해주기에 충분하다. 그 결과 독일의 주택소유자는 43%에 불과하다. 유로지역 평균 63%를 훨씬 밑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국가와 민간이 운영하는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며, 주택 구입을 위해 대출을 받는 일은 극히 드물다.

장기적인 정책방향 설정과 함께 단기 대응도 시급하다. 임대주택 공급을 꾸준히 늘리자는 ‘9·2 부동산 대책’은 방향은 맞지만 보완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 우선 주택공급 정책의 초점을 임차인에 맞춰 다시 구상해야 한다.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는 전·월세 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 등이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선진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지역임대료위원회를 별도로 만들어 적정 임대료를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봄 직하다.

정재호 목원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실질적인 서민 주거비 부담완화를 위해 직접적 가격 규제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의상 기자  estkin@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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