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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소통의 탈을 쓴 선동의 장(場)순간적인 감정 못 이겨 이성적 판단 놓쳐선 안 돼
장우호 기자 | 승인 2015.10.16 11:46|(187호)

불과 몇 년 새 인터넷의 파급력은 급격하게 커졌다. 과거에도 인터넷은 ‘정보의 범람’이라 불릴 만큼 많은 정보, 또 잘못된 정보가 있었지만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이용자가 직접 검색을 통해 찾아 나서야만 했기에 선동을 목적으로 한 잘못된 정보가 삽시간에 전국적으로 퍼지는 일은 드물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2세대 개방형 SNS가 인기를 끌면서 네티즌은 쉴 새 없이 제공되는 정보를 받아보는 것만으로도 바빠졌고 정보의 흑백을 가리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됐다. 대부분의 정보는 정확한 출처와 근거가 없지만 오늘도 네티즌은 법관 혹은 응징자가 되어 누군가를 판단하거나 벌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언더도그마에 의해 SNS가 소통이 아닌 선동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채선당 사건
2012년 2월 충남 천안에 위치한 외식 프랜차이즈 채선당 매장에서 벌어진 식당 종업원과 임산부 손님 간의 폭행 논란으로 전국이 시끄러웠다. 임산부 유모 씨가 육아 관련 유명 네이버 카페 ‘맘스홀릭베이비’와 트위터에 “임신 24주 된 맘이에요. 오늘 천안 채선당 식당 종업원에게 배 폭행 당했어요”라는 글을 올린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유 씨는 채선당 천안 불당점에서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하던 종업원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자신이 임산부임을 밝히자 종업원이 복부를 발로 차는 등 상상하기 힘든 대접을 받았다고 밝혔다. 논란이 일던 당시 가수 故 신해철은 트위터를 통해 자신 역시 채선당 분당점에서 불쾌한 대접을 받았다는 글을 올렸고, 일명 ‘채선당 임산부 폭행 사건’은 불매운동을 동반하며 SNS을 통해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졌다. 한 네티즌은 목격자임을 자처하며 유 씨의 주장에 힘을 싣기도 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채선당 측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띄우는 한편 해당 매장의 폐점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신속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여론은 이미 마녀사냥을 시작한 뒤였고 유 씨의 글이 올라온 다음 날부터 전국에서 쉬지 않고 걸려오는 욕설 전화로 매장은 영업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임산부 유 씨는 SBS 모닝와이드 2012년 2월 20일 방송분에서 인터뷰를 통해 “지금 (뱃속의) 아이와 저의 (모든 걸) 걸고 한 치의 거짓도 없어요. 정말 제가 목숨 걸고서라도 끝까지 진실을 밝힐 거예요”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식당 종업원의 폭행 여부를 확인하던 채선당이 뜻밖에 “종업원이 임산부의 복부를 발로 찼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반박 자료를 내면서 사건은 전환 국면을 맞게 됐다. 경찰은 유 씨, 종업원, 점주 등의 진술과 CCTV 영상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김경열 당시 천안 서북경찰서 형사과장은 사건이 있은 지 열흘 만인 2월 27일 중간 수사 결과 발표에서 “(종업원과 임산부 손님이) 같이 머리채를 잡고 실랑이를 했다”며 “종업원이 임산부의 배를 찬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종업원과 다투는 과정에서 유 씨는 ‘재수 없는 X’, ‘미친X’ 등 폭언도 일삼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 매장 점주는 6년 넘게 영업해 온 식당을 쫓기듯 넘기면서 1억 7천여만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고 작은 텃밭을 일구며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산부 유 씨의 거짓 글 때문에 한 가정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지만 그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 허위 사실을 유포하게 되면 ‘정보통신망법 위반’이 적용 가능하지만 유포의 목적이 다른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하면 비방 목적의 인정이 쉽지 않아 처벌 또한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은 “중소기업, 자영업자 같은 경우에는 이런 (블랙컨슈머의 갑질) 부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소비자의 부당한 요구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여론재판은 정당한가
불과 3~4년 새 포스코 계열사 임원의 ‘기내식 황제라면 사건’,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서 로비 지배인의 뺨을 때린 ‘제과점 오너 사건’, 남양유업의 ‘욕설하는 갑질 사원’ 사건 등이 터졌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서 대중은 승무원, 지배인과 같은 감정노동자와 본사의 지시를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대리점 주인을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며 이들을 괴롭힌 강자에게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그 결과로 폭행, 막말을 한 임원과 영업사원은 해고되고 남양유업은 내부적으로 대책을 수립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들에게 사죄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몇 건의 사건들이 진척된 과정을 지켜보면 대중의 힘이 얼마나 정의감에 넘친 것이며 힘의 논리를 앞세운 사회적 부조리는 결국 대중 앞에서 철저하게 응징당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모범사례처럼 여겨지게 된다. 그런데 대중에 의한 여론재판을 과연 정당한 시각에서 바라본 바람직한 처벌이라고 칭송만 할 수 있는 것일까?

언더독에 보내는 연민의식
투견장에서 개싸움이 끝나면 승리한 개와 패배한 개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를 빗댄 말들이 시사용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승리한 개는 위에서 짓누른다 하여 ‘탑독(topdog)’으로 절대강자를 가리키고 반대로 그 밑에 깔린 개는 ‘언더독(underdog)’으로 싸움에서 지고 꼬리를 내리는 개처럼 열세를 보이는 상대적 약자를 통칭한다.
미국의 선거전략가인 마이클 프렐(Michael Prell)은 언더독에 ‘독단적인 신념’이 가세하면 ‘언더도그마(underdogma)’라는 특이한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렇게 형성된 언더도그마란 어떤 문제나 사안에 있어 강자인 탑독은 언제나 악하고 약자인 언더독은 늘 선하다는 신념, 즉 약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말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언더도그마는 이성에 바탕을 둔 합리적인 철학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믿음의 산물이다. 힘이 약한 사람은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고결한 존재로 여겨지지만 반대로 힘이 강한 사람은 강하다는 이유 때문에 비난받아 마땅한 것으로 인식한다. ‘약자=선(善)’, ‘강자=악(惡)’이라는 이분법으로 선악을 쉽게 구분하는 심리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언더도그마는 약자를 반사적으로 옹호하는 반면 강자를 헐뜯게 되며 다른 사람들의 실패는 보상해 주고 싶지만 성공은 처벌하려는 의식이 깔려 있다.

동정심 유발해 표심 구걸하기도…
언더도그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선거에서 약세에 놓인 후보에게 동정심을 느끼며 역전승을 거두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표를 몰아주는 현상으로 강자에 대한 유권자의 견제심리를 말한다. 당연히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자에게 표가 집중되는 ‘밴드웨건(bandwagon) 효과’와 정반대의 의미인 것이다.
언더독을 자처하는 후보는 유권자와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면서 쉽게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선 정책이나 후보 자질에 대한 평가는 무시된다. 때로는 이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자신을 스스로 언더독으로 자처하면서 마치 절대강자로부터 탄압받는 것처럼 굴어 동정표를 호소한다. 결국 포퓰리즘으로 가득찬 슬로건을 제시하여 선거에서 승리하지만 이러한 비현실적인 선심성 정치공약은 국가재정에 커다란 부담을 주게 되고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될 뿐이다.

언더도그마, 날개를 달다
언더독, 즉 약자에 대해 연민을 보내는 현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우리 고전문학 중 흥부전을 보면 가장의 의무는 다하지 않은 채 신선놀음만 하려는 흥부는 형에 비해 가난하다는 이유로 절대선, 자수성가한 놀부는 동생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절대악으로 표현됐다.
언더도그마의 문제는 합리적인 사고를 무시하고 사실관계에도 영향을 받지 않으며 오로지 힘의 정도에 따라 조건반사적으로 도덕적 우위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이런 언더도그마는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특히 국제 금융위기로 조성된 ‘1% 대 99%의 대결구도’와 SNS의 확산으로 추진력과 가속도를 더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른 채 겉으로 드러난 정보만을 대량 수집하는 것이 가능해진 인터넷 환경에서 언더도그마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시무시한 성질을 갖게 된다. 인터넷에서 접하는 정보는 내막까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일방적인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사진, 동영상 등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이에 반박하기 위해 상대방이 나설 때에는 이미 많은 네티즌에게 눈엣가시가 돼있거나 흥미를 잃은 네티즌이 무관심으로 일관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전문가라 칭하는 사람들의 단편적인 주장들이 대량으로 범람하기 때문에 이해 역시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언더도그마는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상태에서 ‘약자가 옳고 강자가 나쁘다’는 선입견은 선악을 구분하는 사고의 판단과정을 굉장히 빠르게 끝마쳐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언더도그마는 수많은 사건과 정보를 접하는 인터넷상에서 오지랖을 넓히기에 가장 편리한 도구로 쓰인다.

냉철한 이성적 판단이 선행돼야…
앞서 소개한 사례에서 임산부 유 씨는 일개 소비자로 약자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불과 몇 마디 거짓말로 선량한 가게 점주의 인생을 뒤흔든 슈퍼갑이었다. 그리고 평범한 임산부였던 유 씨를 슈퍼갑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네티즌이었다. 당시 네티즌은 죄의 경중을 따지는 법관이자 벌을 내리는 응징자로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동했지만 실상은 자신의 능력과 권한을 뛰어넘어 스스로를 ‘정의의 사도’로 만들기 위한 자기만족에 불과했다.
지금 이 순간도 오만하고 탐욕으로 가득 찬 탑독들을 쓰러뜨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네티즌은 박수를 쳐주며 격려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정의를 앞세워 선입견에 빠진 채 공정심을 잃고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외눈박이식 비판을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약자가 보호와 배려의 대상임은 마땅하나 세상에는 자신의 입장을 이용해 동정을 호소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공격적 약자도 있기 때문이다.

장우호 기자  koreana37@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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