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지난 달 23일 그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7개의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문재인 대표에게는 불출마 선언을 철회하고 부산에서 출마하라는 것과 안철수 전 대표를 비롯한 전직대표들은 살신성인의 자세로 열세지역에 출마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표와 친노세력의 패권주의를 질타한 조경태 의원에 대해서는 ‘해당행위자’로 적시하고 강력한 징계를 요구했다.
이처럼 혁신위원회가 꺼낸 마지막 혁신카드는 한마디로 ‘친노패권주의’의 강고함을 그대로 보여줬다는 점이 특징이다. 안철수 전 대표에겐 위기를, 문재인 대표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참으로 극적인 대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필 당일 당 윤리심판원에서는 정청래 최고위원에 대해 사면(최고위원직 복귀) 결정을 내렸다. 이쯤 되면 문재인 대표와 친노의 앞길에는 거침이 없어 보인다. 겉으로 보면 친노의 완승 분위기마저 든다.

전직 대표들, 험지로?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문재인 대표에게는 불출마를 접고 다시 부산 지역에 출마하라고 했다. 문 대표가 국민과 당원 앞에 선언한 ‘불출마 선언’을 불과 7개월여 만에 폐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혁신위가 할 일이 아닐 뿐더러 국민과 당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2월 당 대표선거 때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며 당내 계파청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국민과 당원은 그런 그의 진정성을 보고 대표로 선출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혁신위의 제의를 빌미로 불출마 선언을 폐기한다면 문재인 대표의 진정성은 무엇이 되겠는가. 그리고 앞으로 문 대표의 말을 어떻게 믿을 것이며, 내년 총선 때 무슨 말로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왜 이런 꼼수로 국민과 당원을 바보로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
혁신위는 정세균, 이해찬, 문희상, 김한길, 안철수 의원을 언급하며 “열세(劣勢) 지역 출마를 비롯한 당의 전략적 결정을 따라 달라”고 했다. 겉으로는 ‘전직 대표들’이라는 이름으로 친노 중진을 끼워 넣었지만 실상은 김한길, 안철수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으로 봐야 한다. 우선 논리부터 성립되기 어렵다. 범친노계로 분류되는 정세균 전 대표는 고향인 전북에서 4선까지 지낸 인물이다. 그러나 지난 총선 때 ‘따뜻한 지역’을 벗어나 이른바 ‘험지(險地)’인 서울 종로로 차출돼 새누리당 홍사덕 전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른 험지로 가란 얘기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대구나 경북으로 가야 한단 말인가. 도무지 설득력이 없는 얘기다.
안철수 전 대표는 서울 노원병에서 2013년 4월 보궐선거에 당선돼 이제 겨우 임기 2년이 지났다. 아직 동네도 제대로 알기 전인데 또 지역구를 옮기라는 것은 무례하거나 오만한 독설과 다름없다. 도대체 지역 유권자들을 뭐로 보기에 이런 결론을 낼 수 있는 것인지 안타깝다 못해 부끄러울 정도이다. 명색이 혁신위의 이름으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것일까. 이에 안철수 전 대표는 “지역 주민과 한 약속을 저버리라는 거냐”며 “혁신하라고 했더니 선거 전략만 짜고 있다”고 비판했다. 적절한 지적이다.
혁신위는 전직 대표 다섯 명을 “2007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이후 우리 당을 이끌었던 전직 대표들”이라고 했다. 대표를 맡았던 동안 당이 어려웠고 재보선에서 잇달아 참패했으니 책임지는 차원에서 ‘살신성인’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의 문재인 대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재보선 참패는 물론 당을 최악의 위기로 몰고 있지 않은가. 탈당사태가 벌어지고 신당이 창당되고 있다. 당을 이렇게 만든 문재인 대표는 그런 논리라면 정계은퇴를 해야 합당하지 않을까. 그런데 불출마 선언을 폐기하고 출마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억지 아니면 궤변과 다름없다. 과연 이것이 문재인 대표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며 또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것일까. 친노와 혁신위, 조금도 부끄러움 모르는 사람들처럼 보일 뿐이다.

정청래와 조경태
혁신위가 문재인 대표에게는 카펫을 깔아줬지만 문재인 대표와 친노패권주의를 질타한 조경태 의원에게는 사실상 퇴출을 예고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조경태 의원은 험지 중의 험지인 부산에서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간판으로 3선을 한 중진의원이다. 사실 그가 3선까지 이뤄낸 ‘정치적 힘’은 연구대상이기도 하다. 새정치민주연합에게 조 의원은 엄청난 정치적 자산이요, 영남권 진출의 교두보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영남권 선거를 조 의원에게 맡겨야 할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혁신위의 판단은 달랐다. 문재인 대표와 친노패권주의를 질타했던 그의 목소리가 불편했기 때문일 것이다. ‘해당행위자’로 낙인을 찍어서 중징계를 요청한 것은 비노에 대한 친노 압박의 상징처럼 보인다. 당 혁신에 나선 혁신위가 그 역할을 자처한 것은 스스로 혁신을 형해화(形骸化) 한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는 문재인 대표와 친노의 호위무사 같은 모습을 국민이 어떻게 볼지가 궁금한 대목이다.
반대로 하필 같은 날, 정청래 최고위원은 윤리심판원으로부터 사면을 받았다. 그것도 만장일치였다. 화합과 통합을 위한 것이라는 해명은 듣기조차 민망하다. 그럴 거라면 뭣하러 애초 당직정지를 1년이나 내리는 ‘쇼’를 했단 말인가. 그러나 결론은 간명하다. 내년 총선을 철저하게 친노패권주의를 바탕으로 ‘문재인의 총선’으로 치르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리하여 친노 인사들을 대거 당선시켜서 문재인 대표의 대선플랜을 어렵지 않게 가동시키겠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이런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일까. 국민과 당원들의 분노와 실망감엔 크게 개의치 않아 보인다. 탈당 움직임에 대해서도 “할 테면 해봐라”는 식이다. 한마디로 거칠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문 대표와 친노의 뜻대로 굴러 갈까. 정치는 변하기 마련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했다. 지금의 작은 전투에서는 친노의 승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큰 전쟁에서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두고 볼 일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미래가 더 어두워 보이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편향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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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상 기자  estkin@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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