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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노인을 위한 성(性)은 없다젊은이와 다를 것 없는데 사회인식에 얽매여…고령화시대에 맞춰 인식 바뀌어야
한재희 기자 | 승인 2015.09.08 17:54|(186호)
최근 ‘박카스 아줌마(노인들을 상대로 음료를 권하며 성매매하는 여성)’가 경찰에 대거 적발되면서 노인의 성(性)생활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박카스 아줌마’의 존재는 그동안 덮여있던 노인들의 불법 성매매 실태, 노인들의 성(性)생활을 드러내기 충분했다.
문제는 노인의 성(性)생활 자체를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점이다. 불법 성매매는 처벌 마땅한 문제지만 노인들의 성(性)생활에 거부감을 가질 이유는 없다. 무조건적인 거부감은 노인들을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인식하는 편견에서 비롯했다. 과거 나라를 지탱했던 유교문화의 영향이 크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노인의 성생활은 주책없고 부도덕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져 온 것이다. 해소되지 못한 노인들의 성적 욕구가 성범죄와 같은 강력 범죄로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사회에서 여전히 소외된 이슈다. 정경뉴스에서 노인의 성에 대한 실상을 짚어본다.
 
   
▲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박카스 등 피로회복제를 권하며 성매매를 유도하는 이른바 ‘박카스 아줌마’들의 성매매 행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노인의 성(性)생활과 관련이 있다.
노인의 사랑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하나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노년의 사랑을 두 가지 이야기로 풀어낸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지극히 간호하는 군봉(송재호 분)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만석(이순재 분)이 주인공이다. 군봉은 병색이 악화되는 아내를 보며 한날, 한시에 떠날 것을 결심한다. 짧은 유서를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생을 마감했다. 평생 함께 희노애락을 겪어온 아내에 대한 배려이자, 사랑이었다. 반면 만석은 풋풋한 사랑을 시작한다. 아내와 젊은 날에 사별하고 오랫동안 홀로지내다 ‘이뿐이’라고 이름을 지어 줄 만큼 가슴 설레게 하는 상대를 만났다. 마치 20살 때 첫사랑을 만난 것 같은 두근거림이 관객들에게도 전달됐다.
 
영화에서 표현한 두 노인의 사랑은 고결했고 아름다웠다. 우리가 생각하는 노년의 사랑이 그렇다. 지나온 세월을 함께 한 반려자에 대한 보답이거나 외로운 삶에 동반자가 되어주는 아름다운 만남이거나. 미디어 속 노인들의 사랑에는 성적 욕구가 배제되어 있다. 나이가 들면 성적 욕구가 없어진다는 편견을 공고화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실에서 노인의 사랑은 풋풋하기보다는 농익어있고 반려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만큼 자신의 욕구충족도 필요하다. 노인의 사랑을 아름답게만 표현하면 현실과의 괴리는 커질 수 밖에 없다.
 
젊은이와 다를 것 없는 본능적인 욕구 
   
▲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가 지난 5월 노인 311명을 대상으로 ‘노인의 성에 대한 인식’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즐거움·행복·사랑·따뜻함·황홀함 등을 느낀다는 의견이 총 153명이었다.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가 지난 5월 노인 311명을 대상으로 ‘노인의 성에 대한 인식’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즐거움·행복·사랑·따뜻함·황홀함 등을 느낀다는 의견이 총 153명이었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응답자는 10명, 수치심을 느낀다는 응답자는 11명에 불과했다. 노인들 역시 다른 세대와 마찬가지로 성에 대해 관심이 높으며 그를 통해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노인들을 얽매고 있는 것은 편협한 인식이다.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에 접수된 상담요청 중 4년 전남편과 사별을 하고, 최근 다른 남성과 교제하기 시작하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에게 미안한 감정이 든다는 사연이었다. 사연의 주인공은 ‘다른 지아비를 섬기는 것은 죄’라고 여겨왔기 때문에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인식은 특정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노인들의 이성 교제에 대해 묻는 설문조사에 ‘주책’이나 ‘일탈’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었다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실제 노인의 2/3가량은 여전히 성생활을 하는 등 성 문제에 대한 노인의 관심은 젊을 때와 비교해 변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2년 보건복지부가 65세 이상 노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성생활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대상자의 66.2%가 현재 성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35.4%는 성매수 경험도 있었다.
 
노인의 일그러진 성…성범죄의 주범이 되기도
성에 대한 욕구는 변함이 없는데, 노인이라는 이유로 욕구를 억제해야 한다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노인들의 일그러진 성의 한 단면은 노인 매춘이다. 최근 문제가 된 ‘박카스 아줌마’가 단속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노인의 성생활과 관련이 깊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A씨(77)는 “아내가 떠난 뒤 성적욕구를 해결하지 못해 성매매를 했다”며 “3만원이면 성관계에 여관비용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상대를 찾는 노인과 경제적인 이유로 박카스를 든 여성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불법적인 성매매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욕구를 해소할 창구가 없는 노인들이 성범죄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지난 6월 경기 이천에서는 빨랫줄에 빨랫줄에 널려 있는 여성 속옷을 훔친 혐의로 조모(75)씨가 붙잡혔다. 이천시 창전동 일대에서 고물 수집을 하던 이씨는 “수년 전 아내가 자궁경부암으로 성기능을 상실했다. 쌓인 성욕을 배출할 길이 없어 그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인 성범죄에 어린이와 장애인 등 약자가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아 심각성을 더한다. 경찰청이 집계한 65세 이상 노인 성범죄자는 2010년 571명이던 것이 2011년 629명, 2012년 702명, 2013년 930명, 지난해 1,076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전체 성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10년 2.8%, 2011년 2.9%, 2012년 3.1%, 2013년 3.2%, 지난해 3.6%로 한 번도 줄지 않았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노인 성 문제에도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다.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담당 정부 기관도 없다. 노인들을 위한 체계적인 성 상담이나 성에 대한 재교육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010년부터 보건복지부의 노인 성 상담을 위탁받았던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사업 첫 해에 4,000만원, 2011년에 9,500만원이 예산을 받아 성 상담 사업을 추진했지만 2012년부터는 지원이 끊겼다.
 
사회적 논의 시작되어야…
   
▲ 서울어르신상담센터는 지난 2014년 11월 건강한 노년의 성상담센터 홍보캠페인을 진행했다.
2002년 개봉한 영화 <죽어도 좋아>는 노인의 성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고독한 삶을 살던 일흔을 넘긴 남녀가 만나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박진표 감독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그들의 성생활이나 로맨스에 대해 불쾌하거나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말했다. 개봉 당시 두 노인의 성관계 장면 때문에 논란이 되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노인의 성에 대해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가 개봉한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 인식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성교육과 전문가 양성을 통해서 건전한 성문화를 정착시키고 유교적 가치관의 영향으로 금기시해왔던 성 인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 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적으로 노인들이 성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고 올바른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노인의 성에 대해 부끄럽다거나 불쾌하다는 사회적 편견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생활에 대한 만족 정도가 자기만족감과 자신감, 자기 유용감 및 심리·정서적 안정감의 정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연구결과는 이미 오래전 발표됐다. 성생활에 대한 만족 정도가 높은 남성 노인은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자존감이 높고, 여성 노인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현실만족감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노인의 성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잘못된 인식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노인도 자신의 욕구와 관심에 따라 성적 표현을 할 수 있는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다.
 
노인 성문제 해결은 먼저 이 문제가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장기적인 정책을 만들어 지원하고, 경찰이나 행정기관, 사회단체 등이 운영하는 상담소 내에 노인 성문제를 전문적으로 상담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노인 복지관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성교육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박범신의 소설 <은교>(2010)에 등장하는 대사다. 늙음은 벌이 아니다. 본능을 억제하고 주변으로부터 힐난 받아야 하는 이유는 더욱 아니다. 누구나 늙는다는 평범한 전제를 생각한다면 노인들의 성문제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노년의 사랑을 ‘주책’이나 ‘일탈’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국가다. 2018년에는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26년이면 초고령사회로 접어들 전망이다. 지금부터라도 노인의 성에 대한 인식변화를 위한 진지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한재희 기자  wisehan@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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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개봉한 영화 <죽어도 좋아>(감독 박진표) 공식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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