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일 PD가 가요무대 연출을 맡은 지 2년이 넘었다. 대중가요에 도가 텄을 그에게 대중가요 애창곡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버님의 애창곡인 ‘울고 넘는 박달제’를 나 역시 좋아한다”는 그는 “가요무대를 맡고 나서 알게 된 것은 우리 대중가요에는 정말 좋은 곡들이 많다는 사실”이라며 “내가 태어나기도 전 노래를 여전히 내가 부르고 있듯이 내 아이들, 또 그 아이들이 부르지 않겠느냐”고 했다.

 

장수 음악프로그램 가요무대는 30년 동안 꾸준히 월요일 밤마다 시청자들과 함께하며 보는 이들의 향수를 달래왔다. 음악이라는 트렌드는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에 30년 이상을 이어온 음악프로그램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양동일 PD에게 가요무대 30주년을 직접 맡게 된 소감을 묻자 “30년의 방점을 찍고 시청자들의 사랑에 대한 감사의 뜻을 프로그램에 잘 녹여 전달해드려야 하는 부분에서 책임감이 크다”면서도 “좋은 프로그램을 물려준 선배들과 변함없이 사랑해주는 시청자께 너무 감사한 일”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양동일 PD는 가요무대 장수 비결로 ‘매주 새로운 주제’를 꼽았다. 제작진은 매주 회의를 통해 시의성 있는 주제나 그때그때 이슈, 계절에 맞게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노래를 선곡한다.

 

양동일 PD는 음악프로그램 연출자답게 음악에 대한 철학이 확고했다. 그는 “음악이라는 게 아주 오래된 예술장르이고, 심지어 원시인들도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심신을 달래지 않았겠느냐”면서 “음악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예술 장르이면서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효용을 가지는 예술”이라고 말했다. 우리 가요는 국민의 희로애락을 달래주고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대중예술의 첨병이라는 것이다.

특히 대중가요는 대한민국의 삶을 같이해왔다. 일제 강점기 때 서양음악이 도입되면서 ‘타향살이’, ‘나그네 설움’, ‘눈물 젖은 두만강’ 등이 나라 잃은 설움과 전쟁의 아픔, 독립에 대한 의지를 녹여냈고 대중가요의 틀이 잡히기 시작한 광복 이후 새로운 조국 건설의 부푼 꿈을 노래한 ‘럭키서울’, 한국전쟁으로 인한 분단의 슬픔을 노래한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통일을 염원한 노래 ‘가거라 삼팔선’ 등 대중가요는 대한민국 광복 70년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 양 PD는 “가요무대에서 들려주는 대중가요는 우리 국민들의 슬픔을 달래주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역할을 해왔기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가요무대는 지난 2014년 4월 16일 터진 세월호 사건으로 전국이 슬픔에 잠겼을 당시 약 두 달간 방송을 멈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시청자들로부터 다시 방송해달라는 요청이 많았고 이에 방송을 재개할 때 양동일 PD는 큰 고민에 빠졌다. 비극적인 큰 사건 이후의 첫 공연에서 기쁜 노래를 할 수도 없고 슬픈 노래로 국민들을 더 슬픔에 빠지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양 PD는 고심 끝에 제작진과 가수, 시청자들까지 모두가 아픔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했다. 6월 2일, 방영을 재개한 가요무대는 ‘아픔을 나누며’라는 주제로 마음을 전했다.

 

지난 2013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자비를 들여 참석한 두 명의 독일 교민이 출국하기 전, KBS 사장에게 편지를 보내 파독 50주년을 맞아 가요무대가 교민들의 애환을 달래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가요무대를 콕 집은 요청에 제작진은 부랴부랴 준비에 들어갔다.

2013년 8월 3일 독일 공연을 앞두고 양 PD는 교민들이 독일에 간 지 오래됐기 때문에 우리 가요를 기억하고 있을지, 호응은 충분히 나올지 걱정이 됐고 한편으로는 객석이 텅텅 비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공연 당일 독일 각지에서 교민들이 끝도 없이 몰려왔다. 그들은 7시간 이상 차를 타고 오기도 하고 3시 공연을 아침부터 기다리는 등 3,500석 규모의 대공연장 루르 콩그레스 홀을 가득 메웠다.

마침내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리고 김동건 아나운서의 “독일에 계신 동포 여러분 고맙습니다. 가요무대가 독일에 와있습니다”라는 멘트에 교민들은 물론이고 제작진도 모두 울었다. 반세기 동안 느끼지 못한 고국의 정(情)이라도 느꼈을까, 반갑다는 말 한마디에 회한이 솟구치고 그 동안의 한이 폭발했다. 양동일 PD는 “녹화 내내 눈물 흘리고 같이 따라 불러주셔서 감동적이었다”면서 “교민들이 제작진과 가수들에게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한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또 “우리 KBS 프로그램이 현지로 간 거지만 그들에게는 고국인 대한민국 자체로 느껴진 것”이라며 “책임감이 더 강해진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가요무대 첫 방송부터 진행을 맡았던 김동건 아나운서는 서인석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2003년 6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약 7년을 제외한 23년을 가요무대를 진행하면서 국민과 함께 웃고 울었던 산증인이다. 관객들의 호응을 조율하면서 무게 있게 프로그램 분위기를 압도하며 트레이드마크 역할을 해온 것. 한국 방송 사상 아나운서가 한 프로그램을 23년 동안 이끌어온 것은 전무후무가 아닌가 싶다.

 

양동일 PD는 “즐겁게 하고 있어 크게 힘들지는 않지만 예산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고 했다. 전국에 있는 시청자가 매회 3천 명 정도씩 방청을 신청하는데 공개홀 좌석이 600석인 게 못내 아쉽다는 것. 또 밤에 녹화를 하는 탓에 지방으로 공연을 가려면 현재 예산의 여덟 배가 필요해 가기가 힘들다고 한다.

양동일 PD는 “매주 시청자의 사연을 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힘도 얻는다”며 몇 가지 사연을 소개했다. 어느 40대 가장은 가요무대를 보고 있으면 자기 아버지가 떠오른다고 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변변찮은 안주에 소주잔 기울이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좋아하던 걸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삶의 무게를 깨달은 지금은 그 마음을 알겠다고 했다.

시골의 한 여성은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이 없던 아버지가 평소 좋아하시던 가요무대 제작진 앞으로 신청곡을 보냈는데 가요무대에 나오는 노래를 듣고 아버지가 처음으로 말을 떼 온 가족이 울었다는 사연도 보내왔다.

지난 5월 11일 가정의 달을 맞아 ‘가孝무대’라는 주제로 방송을 할 만큼 사연은 대부분 부모님께 방청권을 드리고 싶다는 내용이다. 대한민국이 잘 산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편히 쉬지 못하고 힘들게 일하는 부모님께 이렇게라도 효도하고 싶다는 것이다.

 

양동일 PD는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가요무대의 세 가지 정신을 소개했다. 첫째는 대한민국 가요 역사의 기록이다. 가요무대는 곡 소개에 항상 곡이 만들어진 연도, 작사 및 작곡가, 원곡 가수 등의 노래에 대한 정보를 함께 내보낸다. 오래된 곡은 이 작업에 꽤나 애를 먹는다면서도 굳이 힘들게 하려는 것은 우리 대중가요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함이다. 양동일 PD는 “현재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도 언젠가는 가요무대에 나올 노래”라며 “‘옛 노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음악의 기록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둘째는 전 세계 동포가 함께 묵는 사랑방이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우리 민족에게 고향을 떠나서 살게 했다”는 그는 “비율로 보면 유대인 다음으로 해외에 많이 나간 게 우리 한민족”이며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 민족을 묶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향수를 달래는 노래”라고 말했다.

셋째는 통일 후 동질성 회복의 도구다. 양 PD는 “탈북민들 역시 가요무대를 사랑해주신다”며 “통일이 됐을 때 남북 간의 동질성을 빨리 회복하는 게 중요하고 음악이 주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 역할을 우리 대중가요와 가요무대가 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또 “통일이 된다면 유라시아 횡단열차를 통해 제주도에서 시작하는 세계일주 공연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양동일 PD는 “가요무대를 낡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프로그램을 하면 할수록 가치가 있더라”며 “어머님의 소중함을 모르듯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다”고 했다. 전통가요를 된장찌개라고 비유한 그는 누구나 부를 수는 있지만 맛있게 부르기가 어렵다. 즉 “누구나 된장찌개를 끓이지만 맛있게 끓이기 어려운 것처럼 단순하고 개성이 없는 것 같지만 거기에 맛을 내는 건 더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또 “맛은 잘하는 것과는 다르다”며 “성량이 좋고 고음이 잘 올라간다고 노래를 맛있게 부르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1993년 KBS 공채로 입사 22년차인 양동일 PD는 “처음 방송을 시작할 때는 다큐멘터리를 꿈꿨는데 시간이 갈수록 장르 자체보다는 그 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 중요해졌다”며 “가려진 가치를 잘 닦아서 시청자에게 격조 높은 연출을 보여주는 것이 PD의 역할”이라고 했다. 선배님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남겨준 덕분에 아직도 가요무대 선배 PD들을 보면 늘 고맙다는 그는 이 프로그램을 변함없이 사랑받게 잘 유지시켜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50년이고 100년이고 시청자들과 함께 계속 사랑받기를 바란다고 했다.

1920년대 대중가요 역사가 시작돼 어느덧 1세기를 바라보고 있다. 대중가요 100년, 가요무대 30년을 맞아 양동일 PD는 11월에 있을 30주년 특집에서 ‘영원의 노래, 불멸의 목소리’라는 주제로 한국 가요사를 빛낸 7인의 가수에게 헌정하는 7부작 공연을 준비 중에 있다. 한 회당 한 가수를 조명해 총 7회로 꾸릴 계획이다. 현재 물망에 오른 가수는 고故 배호, 이난영, 남인수, 현인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