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월은 메르스 정국이었다. 지금도 끝나지는 않았지만 메르스 사태는 가끔 있는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고 분명 국가 위기상황이었다. 보건행정과 컨트롤타워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연일 터지는 확진자와 사망자는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정부나 병원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되었고, 이 불신의 목소리가 극에 달했으며, 언론에서는 이를 비상시국이니 위기상황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외적으로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까지 연기했고, 보건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전락하는 등 국가적 망신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소비와 관광 등이 직격탄을 맞으며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 국민들은 마스크 쓰고 출근했고, 모임 등을 자제하면서 방역에 동참했다. 이렇듯 국가 위기상황에서 국민들은 의연하게 대처한 반면, 여당과 청와대는 뭘 했는가 묻고 싶다. 정치권과 정부에서는 위원회만 잔뜩 만들어 놓고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고, 컨트롤타워가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 그 실체를 찾기 어렵다. 그러는 와중에도 당청 간에는 국회법 관련해 거부권행사니 뭐니 하면서 청와대에서 대책회의를 거부했다. 형제 간 재산싸움도 초상을 치룬 후에 하는 것이 상식이다. 누가 뭐래도 메르스 대란 속에서 청와대와 여당 간의 대화가 단절된 것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초동 대처를 지적했고, 메르스 발생 세계 2위국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굴욕까지 맛보야만 했다. 전쟁도 아니고, 사회혼란 목적의 생물테러도 아닌데, 이 정도면 누군가가 지적한 대로 무능, 무지, 무성의, 무책임의 극치로써 정부의 행정기능과 정권의 정치력 부재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국가재난에 관한 한 골조만 세워져 있고, 소프트가 없는, 즉 프로그램을 돌릴 줄 모른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심지어는 슈퍼전파자는 정부와 대통령이라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 결과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하락했고, 여당도 그 영향을 받았다. 지역과 계층 간에도 역시 지지율에 많은 변화를 보여주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면 큰 문제이고, 대안이 없었다면 더 큰 문제다. 지지율이 세월호 때보다 더 많이 빠지는 것을 보면서 일부에서는 마치 집권 말기에 나타나는 레임덕 같은 현상이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첫째, 국민 불안을 국민 안정으로 이끄는 리더십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대면보고가 늦었다든지, 컨트롤타워와 보고체계 등의 혼선이라든지, 당정청 협의가 없었고, 전반적으로 국정운영시스템이 마비된 것으로 느껴진 점에 대해서는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둘째,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회나 모임을 자제하는 등 일반 국민들의 방역시스템은 훌륭했으나 의학적인 전문지식이 빗나갔고, 전염원 관리에 허점을 보인 병원과 국가방역시스템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으므로 이를 지적 받아 마땅하다. 낙타 고기나 낙타 우유를 주의하라고 홍보하는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보건의학적 체계와 행정체계를 정립하고 이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셋째, 눈에 보이지도 않은 바이러스 하나가 나라경제를 마비시켰다. 소비에 병목현상이 생겼고, 관광업계에는 치명타를 맞았다. 그리고 여름휴가철도 다가오는데, 서민경제는 얼어붙고 말았다.

넷째, 여기에 한미정상회담을 연기한다든지, 보건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전락한 부분은 망신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국격을 훼손시킨 것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국정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곳이 ‘여당’이라고 불리우는 곳인데, 여당대표 개인은 부지런히 활동했지만 국가시스템 가동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화가 안 되면 국민을 상대로 국정운영의 공동책임자로서 정치를 했어야 한다. 시스템을 누가 어떤 자세로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와 그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인해야만 한다.

 

시행령으로 입법정신을 훼손하는 사례가 많다고들 한다. 심지어는 행정 독재라는 용어까지 나돌고 있고, 국정이 정권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있다. 이것들이 모두 비정상이다. 비정상을 정상화로 개혁한다면 이 또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국회법 개정도 마찬가지였다. 국회법 개정 등 당청 간, 국회와 청와대 간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장도 다르고, 내용상의 실체적 진실도 다르다.

먼저 협상대표인 원내대표를 보면 그가 독단으로 결정했다고 믿을 사람이 있겠는가? 과연 소통 없이 혼자 협상할 수 있는가? 위헌성이 보이는 조항을 협상할 때 단독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 원내대표는 모든 협상에서 창구 역할을 하고,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이지 로버트나 복사기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에는 막강한 상대방이 있기 마련이므로 주고받거나 양보 없이 협상이 되지를 않는다. 국회법은 “아예 협상대상이 아니었다”라는 것은 개혁입법 처리를 전제로 위헌이 아닌 선에서 검토했을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청와대는 이러한 국회법 협상과정을 몰랐다고 할 수 있는가? 표면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 말고, 아마도 말 못할 사정이 있겠지만 숨길 이유가 없다. 원내대표와 청와대가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 또 국회가 위헌법률을 만들었다는 것인데, 위헌이라는 주장도 있고, ‘위헌이 아니다’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현법재판소에 권한쟁의를 하면 풀릴 문제다.

현직 대통령이 책임질 문제만은 아니다.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하여 충분히 검토한 후 국회의장이 “요구를 요청”으로 수정해 정부에 이송했는데, 대통령이 거부권(재의 요구)을 행사해 국회의장은 15일 내에 재의에 붙여야 한다(헌법 제53조). 여기에서 안 붙일 수도 있다는 논리가 있는데, 그 또한 위헌이다. 재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회는 재의에 붙이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써 확정된다. 그래서 국회법 개정에 찬성했던 2백 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을 난감하게 만든 것이다. 찬성을 번복하여 자기모순에 빠진 셈이다.

 

내분과 대권욕에 사로잡힌 제1야당 때문에 여당의 지지율이 그나마 유지되는 형국이다. 정신을 차려야 할 여당과 청와대는 국정위기를 앞에 놓고도 소통정치를 하겠다던 국민과의 약속까지 어겨 가면서 당정청 회의를 하지는 않고 마치 밀고 당기는 소위 밀당, 힘겨루기처럼 비춰지고 있다. 정말 한심하다. 대화 거절이 너무나 출혈이 컸다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청와대 비서실장은 수석들을 컨트롤 못할 뿐 아니라 대화창구 역할도 못한다. 집권 3년도 절반을 넘기고 있어 분위기 쇄신을 통해 국력을 모아가는 노력이 너무나 시급하다.

부부싸움도 집안 살림이나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하지 않는가? 당청 간 불협화음은 정권의 성패와도 관련이 깊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내년 총선은 박근혜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집권3년차 성적표)도 되겠지만 잠용들의 등단무대가 될 것인바, 그때 가서는 한 목소리 내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문제를 과정으로 볼 수도 없고, 내용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헌재에 권한쟁의가 됐든 뭐든 청구를 통해 이 국면을 넘겼어야 한다.

경제 살리기와 부정부패 척결은 언제 할 것이며, 통일대박은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는 방안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부나 청와대 인사개편도 해야 할 텐데? 또 광복 70주년에 즈음하여 국론을 하나로 묶어 내는 일은 언제 할 것인가?

요즈음 여당 내에서조차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볼멘소리가 나온다. 그러니 소통의 창구인 당정청 협의체는 국무총리가 건의를 해서라도 반드시 가동돼야 한다. 그래야 각자의 주장은 있으되, 처리에서는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박근혜 정권에 대하여 ‘온갖 일을 다 챙긴다는 만기친람(萬機親覽)’과 ‘항상 반 박자 느리다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고들 한다. 민주정치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국민들이 무관심으로 인해 등을 돌릴 때다. 국민들은 더 이상은 곤란하다는 상태다. 제발 국민이 걱정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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