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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우리에게 반면교사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 승인 2015.06.01 19:31|(183호)
   
▲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한국의 산업성장사 자료를 들추다 보면 사업 기회를 잡았던 사업가들이 앞서가는 일본으로부터 많은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음을 알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정책이나 제도 또한 일본이 걸어간 길로부터 정말 많은 것들을 반면교사(反面敎師)했음 알 수 있다. 현재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는 한국은 일본을 보고 성장했듯이 일본의 하강 국면으로부터도 귀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일본이 어려움을 겪는 문제들로부터 우리는 예외가 될 수 있다고 당차게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어떤 공동체가 겪는 문제는 비슷비슷한 경로를 걸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비슷한 사회 및 정책 구조를 가진 경우는 더더욱 유사한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3월 27일 일본의 TV아사이 저녁 뉴스 프로그램에는 대형 방송사고가 터졌다. 생방송 도중에 멀쩡한 방송 해설자가 “나는 아베가 아니다(I am not Abe)"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보였기 때문이다. 피켓을 든 사람은 고가 시게아키(古賀茂明, 60)로서 여러 가지 면에서 공명심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 그는 명문 도쿄대법대를 졸업하고 일본 통상산업성과 경제산업성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개혁이 앞장섰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된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그의 걱정이 어디 일본만의 문제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재정과 규제 분야에서의 낙후성
그는 “아베노믹스로 경기가 좋아졌다고 하지만 사실 일본은 매우 위험한 상태다. 나랏빚은 국내총생산(GDP)의 2배가 넘고 잠재성장률은 1% 밑으로 떨어졌다. 저출산 고령화는 가속도가 붙고 있다. 규제와 재정 분야에서 근본적인 개혁이 시급한데, 기득권을 지키려는 관료와 정치인들은 저항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고발해야 할 언론들이 정권의 눈치만 보고 있다.”
여러분은 그의 걱정이 일본만의 걱정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정치권은 수백억 원, 수천억 원, 수조 원짜리 지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 데 별로 주저함이 없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지출 프로그램은 세입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만들어 놓으면 그것에 맞는 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이다. 어디 그뿐인가? 교육, 국방, 연구개발, 농어촌 등 어느 분야를 보더라도 이런 저런 명목으로 지출되는 보조금이나 지원금의 낭비는 심각한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그러나 한 번 만들어진 보조금이나 지원금 제도는 이를 폐지하거나 변경하는 데 무척 어렵다. 특정 제도를 둘러싸고 두텁게 만들어진 기득권층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고도 성장기에 만들어진 각종 보조금 제도를 둘러싸고 나랏돈을 나누어 먹는 세력들이 한 치도 양보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데 있다. 재정과 규제분야에서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지만 이를 실행시키는 일이 무척 힘들다. 그나마 우리 사회는 대통령 중심제이기 때문에 지도자의 문제 인식 정도에 따라 개혁의 가능성이 높은 편이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다. 일본은 내각제라는 정치 구조 하에서는 근본적인 개혁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에서의 안일함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없다. 일본은 이미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로 인하여 세입과 세출 구조 사이의 격차, 이른바 ‘악어입 재정’과 같은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추세를 뒤집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은 어떤가? 일본보다 상황이 좀 나은 편이지만 일본이 가는 길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도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일본에서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은 우리의 앞날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가르쳐준다. 최근 일본 재무성은 국공립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직원 4만 명을 감축함으로써 사회보장비 증가를 4조 엔으로 억제하는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결국 세입이 줄어들면 사람을 내보낼 수밖에 없다. 앞으로 이런 개혁조치들이 어떻게 추진될 지는 두고봐야 하겠지만 재무성 자문기관인 재정제도심의회가 이같은 세출 억제 방안을 마련한 이유는 명확하다. 사회보장비의 증가액을 감축하지 않고서는 재정 위기를 극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 관료제도 타파의 필요성
고도성장기에 작동했던 시스템들이 지금은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이런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로 고가 시게아키 씨는 관료제도를 든다. “지금까지는 시험 성적이 좋은 도쿄대 출신 관료들이 선진국 사례를 보고 정답을 찾으면 됐다. 하지만 새로운 발상과 생각이 필요한 요즈음 같은 창조경제 시대에는 그런 관료들이야말로 개혁을 막는 당사자이다.”
우리 사회가 외환위기를 경험할 당시 공무원 숫자는 90만 명가량되었지만 최근에는 100만 명까지 늘어났다. 그렇게 늘어난 관료들의 평생을 국민들이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작은 정부’라는 슬로건은 사라져 버린지가 오래되었다. 관료제도는 자기 증식을 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비대한 관료제도는 필연적으로 거대한 규제를 낳게 마련이다. 그리고 관료를 부양하기 위해 더 높은 세금과 준조세 부담이 불가피하게 된다.
옛날에는 노력하면 한 사회의 문제점을 적절히 해결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가졌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경험이 쌓여 가면서 어떤 사회라도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교훈을 배우기가 힘들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게 된다. 앞서 가는 나라가 엄청난 비용을 치루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흔히 “우리는 달라”라는 이야기를 위기가 닥칠 때까지 반복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누구든지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시각을 갖고 살아야 하지만 늘 앞선 나라로부터 한 수 배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대다수 공동체는 비슷비슷한 경로를 걸어가는데 제도의 특성이나 인구 구조의 특성 등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면 일본은 여전히 우리에게 교사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후발주자의 장점이란 것이 무엇인가? 앞선 자들로부터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올라갈 때는 비슷한 경로를 선택하더라도 내려갈 때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하는 현명함을 발휘하는 일이 꼭 필요한데, 우리가 그런 현명함을 발휘할지 두고 볼 일이다.
<외부 필진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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