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십중팔구 이길 수 있는 병이다.


▲ 박재갑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

"여러분은 가정에서 누군가 한 명은 암으로 죽어야 한다면 누가 죽어야 하겠습니까?” 암 관련 강연을 할 때 마다 내가 서두에 흔히 하는 질문이다. 질문에 답한다고 해서 그 누군가가 당장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닌데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하는 사람은 그동안 단 한 명도 없었다. 한참 동안 복잡현 표정으로 고민하다가 망설이듯 하는 대답은 한결같이 “제가 죽어야지요”라는 것이다. 소중한 가족 가운데 누군가를 잃을 수 없으니 그나마 자신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하는 대답일 테지만 암 때문에 나 또는 내 가족이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2010년 10월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사망원인 통계결과에 의하면 전체 사망자의 약 28%, 즉 우리나라 국민 4명 가운데 1명 이상은 암 때문에 사망하고 있다. 4인 가족이라면 가족 가운데 적어도 1명은 암으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암 발생률은 매년 평균 3.3%씩 증가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얼마든지 예방할 수도 있는 암, 조기발견만 하면 완치도 가능한 암으로 사망하는 국민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 나라에서 사망 빈도가 가장 높은 6대 암은 폐암, 위암, 간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경부암이다. 남녀 통틀어 사망률 1위를 기록한 폐암은 담배만 피우지 않아도 80~90% 예방할 수 있고, 간암은 B형 간염백신만 접종해도 70%이상 예방할 수 있다. 나머지 위암과 대장암, 유방암, 자궁경부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95% 이상 완치할 수 있는 암이다.

담배만 피우지 않고 사회적으로 권고되는 예방접종과 정기검진만 소홀히 하지 않아도 아예 발생하지 않거나 완치도 가능한 암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잃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지는 셈이다. 폐암을 제외한 5대 암은 건강보험 가입자 가운데 소득수준 하위 50%의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에서 무료검진을 실시하고 있고, 상위 50%의 국민도 10%의 본인 부담금만 내면 검진을 받을 수 있으므로 돈이 없어 암 검진을 하지 못하는 시대도 아니다.

흔히 암을 공포의 질병이라고 하지만 나는 암을 공포의 질병으로 만든 원인은 암에 대한 무지라고 생각한다. 알고 보면 암만큼 대처하기 쉬운 병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금연과 백신접종, 정기검진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건강상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리고 이 상식만 잘 지켜도 흡연 관련 암으로 사망할 확률 30%, 바이러스로 인한 암 때문에 사망할 확률 20%는 줄일 수 있고 정기검진으로 암을 조기에 발견하면 암 사망률을 20~30%는 낮출 수 있다. 상식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암으로 죽을 확률을 70% 이상 줄일 수 있다. 또 예방이 불가능하거나 조기진단이 어려운 암도 반 이상은 치료가 가능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암 치료 기술은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결국 암은 죽을병이 아니라 십중팔구 극복이 가능한 병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쉬운 길을 두고 담배를 피워 치사율 높은 폐암 등에 걸릴 위함을 자초하고 정기검진을 귀찮아하다가 심각한 지경이 되어서야 병원을 찾는 환자가 여전히 많다. 암 사망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기본적인 건강상식을 지키지 않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다.

암은 현대의학으로 완벽하게 극복할 수 없는 난치병임은 분명하지만 걸리기 전에 예방도 가능하고 암으로 진행되기 전에 차단할 수도 있는 병이다. 부디 예방할 수 있는 암, 완치할 수 있는 암 때문에 고통당하고 사망에까지 이르는 국민이 더는 없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몸의 이상을 느낀 후에는 이미 중증 암 환자

아예 암 걱정 없이 살아갈 수는 없을까? 안타깝게도 암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암 예방 상식으로 암 발생 위험을 낮출 수는 있어도 100% 예방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암 걱정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정기검진밖에 없다. 몸 속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지 않은지 끊임없이 감시하고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면 최대한 빨리 발견해 치료하는 것 만이 암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길이다.

걸어야 산다! 운동화 신고 빨리, 자주 걸어라

중요성은 누구나 절감하지만 ‘바빠서’, ‘귀찮아서’ 좀처럼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운동. 그러나 운동에 대한 인식만 바꾸면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도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운동을 할 수 있다. 오늘부터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출근길에 나서보자. 발걸음은 절로 경쾌해지고 피곤하기만 했던 출근길이 기분 좋은 운동시간으로 바뀔 것이다. 운동화 신고 출근하는 하루하루가 쌓일수록 암에 걸릴 위험은 저만큼 멀어진다.

난치의 암은 있어도 불치의 암은 없다.

불운하게도 나 또는 내 가족이 암에 걸린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암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질병이지만 암 선고가 곧 사망 선고이던 시대는 지났다. 암을 잘 극복하려면 암 선고를 받았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암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환자의 투병의지에 따라 완치도 가능하고 만성 질환처럼 평생 관리하며 살아갈 수도 있는 병이 바로 암이다.

박재갑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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