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는 동영상을 통해 자신의 출연장면은 맨 뒤로 넣어 자기 목소리는 최대한 자제하고 청년, 주부, 노동자, 장애인, 동성애자들을 계속 등장시켜 미국을 평범한 국민들이 꿈을 이뤄나갈 수 있는 나라로 만들겠다고 비전을 제시했다.

그녀는 평범한 중산층들이 살 것 같은 주택가를 배경으로 서서 “미국인들은 그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상황은 아직도 어렵고 상류층에만 유리한 실정이다”라고 언급했다. 이어 “미국인들은 챔피언을 필요로 하고 내가 그 챔피언이 되고 싶다”고 하며 “챔피언이 되어 국민들이 더 나은 삶을 살고, 앞서 나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이 비디오에서 힐러리는 국민 할머니처럼 중산층에 더욱 친근한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했는데, 8년 전 대선 출마 선언 비디오에서 소파에 앉아 자신의 연설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던 것과는 확연한 대조를 보였다.

힐러리는 출마선언과 동시에 아이오와 주와 뉴 햄프셔 주 등을 방문하며 유세활동을 시작했다. 이 지역들이 대선판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경합주(스윙 스테이트)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가 오바마에게 완패를 당했던 곳이기도 한 아이오와 주는 대선이 치러지는 해마다 당원대회(코커스)를 개최해온 지역이고, 이로 인해 대선 초반의 표심을 읽을 수 있는 풍향계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최근 힐러리 전 장관이 메일계정 두 개를 사용하기 번거로웠다는 이유로 개인 이메일 계정으로 일부 중요한 국무보고를 받은 것으로 파문이 붉어진 이후 유권자들의 신뢰도나 호감도가 하락했다. 퀴니피악 대학이 실시한 아이오와 주에 거주하는 주민들 대상 설문조사에서 “만일 지금 대선이 치러진다면 클린턴 전 장관과 랜드 폴(공화, 켄터키) 상원의원 중 누구를 선택하겠는가?”라는 질문에 클린턴 전 장관을 선택한 비율이 42%로 폴 의원의 43%에 1% 정도 못미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또한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접전지역이었던 콜로라도 주에서도 클린턴 전 장관의 선호도는 3% 앞선 랜드 폴 의원뿐만 아니라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이나 스캇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같은 다른 공화당 인물들에게도 각각 1%씩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힐러리의 이들 지역에서의 발빠른 행보는 유권자들과 직접 만나 대세론을 굳히고 반드시 대권을 달성하겠다는 의미로 보여진다.

 

2008년 대선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지원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전날 파나마에서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회동을 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클린턴 전 장관이 훌륭한 대통령(excellent president)이 될 것이다”라며 그녀를 응원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08년 당시 경선에서 가공할 만한 후보였고, 본선에서는 위대한 (나의 ) 지지자였으며, 대선 후에는 탁월한 국무장관이었다”라고 하며 “힐러리는 나의 친구”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국무장관 재임시절 60%에 이르는 높은 지지율을 얻기도 했다. 그녀는 국민들로부터 어려운 시기에 미국이 부강한 이미지를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를 받고 있고, 한때 남편이 대통령이던 시절에는 백악관 인턴사원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스캔들 파문으로 대통령 탄핵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이를 묵묵히 내조하는 여성상을 보여주면서 위기를 잘 극복해 오히려 유권자들에게 흔들림없는 강인한 여성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민주당의 과반을 넘는 지지의원수 역시 그녀에 대한 이러한 탄탄한 신뢰감을 보여준다. 클린턴 전 장관은 출마를 선언한 12일부터 15일까지 민주당 연방 상원의원 28명과 하원의원 65명이 선거캠프에 합류해 93명의 지지의원들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단 나흘 만에 2008년 대선의 지지의원수인 99명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미 의회 전문지인 ‘더 힐(The Hill)’은 민주당 내에서도 ‘힐러리 대세론’이 입증되고 있다고 전하면서 민주당 예비선거 출마에 고심 중인 마틴 오말리 메릴랜드 주지사나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 등의 기세를 아예 초반부터 눌러버린 것으로 분석했다. 그녀의 대선출마 선언에 연예인들의 지지행렬 또한 이어졌다. 영화배우 제니퍼 로페즈와 스칼렛 요한슨, 전 미 프로농구(NBA)스타였던 매직존슨 등도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클린턴 전 장관에 대한 즉각적인 지지의사를 밝혔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를 대적할 만한 막강한 대선주자는 현재까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조심하고 경계해야할 대상은 오히려 자기 자신인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나이는 올해 68세로 2016년에 치러질 대선에서 성공하여 그 다음 해에 대통령이 된다면 70세가 되고 4년 뒤 재선에 성공해 연임을 마치면 77세가 된다. 물론 80년대에 로날드 레이건 전 대통령도 같은 나이에 시작해서 대통령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지만, 클린턴 전 장관의 나이든 이미지를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깊이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그녀의 건강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2012년 12월,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유럽순방 직후 자택에서 바이러스성 위장질환에 걸려 탈수증상으로 졸도하여 쓰러지는 바람에 뇌진탕까지 겹쳐 2주 정도 요양을 해야만 했고 이후 다시 혈전증세로 3일간 입원했다. 작년 클린턴 전 장관이 대선유력후보로 주목되기 시작하자 이를 두고 그의 건강문제를 두고 계속해서 공격해 왔다. 공화당의 선거 전략가인 칼 로브(Karl Rove)는 작년 5월 공개 토론회에서 “힐러리가 뇌 손상을 입고 있을지 모른다”고 하면서 의문을 제기하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자신의 아내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지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것을 보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그녀에 맞설만한 상대방은 현재 크게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선출마 선언 후 아이오와 주를 첫 유세지로 방문한 클린턴 전 장관은 14일 아이오와 주 동쪽의 작은 마을인 몬티첼로에 위치한 커크우드 커뮤니티 컬리지의 한 원탁회의에서 “우리는 미국선거에서 고장난 정치시스템을 고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하며 “헌법을 고쳐서라도 정체모를 선거자금의 유입을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제안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모금체계 개편을 미래를 위한 경제구축, 가족 및 공동체 강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보호 등과 함께 자신의 선거캠프가 주력할 ‘4가지 큰 싸움’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런 시도를 통해서 정치모금단체인 수퍼 팩(Super PACs)에 무제한 선거 자금 모금에 제한을 가하고 선거자금의 내용 공개범위도 확대하자는 의견이지만, 미 의회에서는 이러한 제안이 번번히 거부되어 현실적으로는 가능할지 실효성에 의문이 따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선거자금 기부가 제약받을 수 없는 자유로운 정치발언의 한 형태라고 주장하는 공화당의 반대에 늘 부딪혀왔기 때문이다. 클린턴 전 장관의 주장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른바 ‘쩐의 전쟁’으로 불리는 금권선거로 변질된 미국 선거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클린 정치’ 선언으로 분석된다. 지난 4월 12일 비디오를 통한 그녀의 출마선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중 속 정치’를 표방하면서 서민의 대변자가 되겠다는 슬로건에 부합되는 것으로서, 부유층 편에 서 있다는 이미지가 강한 공화당 후보들과 차별화 정책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 의회 전문지인 ‘더 힐(The Hill)’은 클린턴 전 장관 진영에서만 15~20억 달러의 선거 자금을 모을 것으로 관측했다. 또한 마땅한 대표주자가 없는 공화당 진영 대선주자들의 난립으로 이번 2016년 미국 대선 자금 규모는 선거 역사상 최대규모로 4년 전의 두 배에 달하는 50억 달러로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성완종 리스트로 인해 정치계에 메가톤급 파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과연 클린턴 전 장관이 자신의 말처럼 미국 대선에서 클린 정치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