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월세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첫 달과 마지막 달 월세에 해당하는 소액 보증금을 내고 1년 계약으로 매달 월세를 선불로 내는 방식인데, 월세를 제 때 못 내면 벌금을 물거나 집 수리비를 공제한 비용을 돌려받고 바로 나가야한다. 굳이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반전세’에 해당하는 이러한 렌트가 가장 보편적인 미국에서는 렌트 시장에 수요가 몰리면서 임대료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어 이른바 ‘렌트 푸어’가 급증하고 있다. ‘렌트 푸어(rent poor)’란, 비싼 월세를 내느라 내 집 구매나 미래를 위한 저축은커녕 식비나 의복 같은 기본적인 생활비도 제대로 충당 못해 가난에 허덕이는 것을 말한다. 저임금이나 중간임금 노동자들의 인금인상률이 물가상승률에 못 미치고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주택구매자금 대출에 규제가 걸리면서 내 집을 사고자하는 미국인들의 꿈은 점점 요원해지고 있다.

20대 후반의 애니 애클레스 부부는 메릴랜드 주 베데스다의 한 아파트에서 월세를 살고 있다. 집주인들은 매년 정부가 정한 월세인상 한도를 꽉 채운만큼 월세를 올리고 있다. “학자금 대출 이자와 같은 수준의 월세를 매달 내고 있고 주차비도 만만치 않아 집을 사기 위한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한다.

미국의 주택시장거래상황은 나아지고 있다. 미국 주택연구소에 따르면, 30세 이하 95%가 자기 집을 원한다고 답했을 정도로 젊은 층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려는 추세가 늘고 있다. 하지만 대학졸업장을 따고나면 괜찮은 월급의 직장을 구하기는 쉽지 않고, 모기지 대출금과 맞먹는 대학교 학비 대출금 상환부담으로 인해 선뜻 주택을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미국 인구통계에는 총 1억 2,295만 가구(3억 1,322만 명)가 등록되어 있다. 이 중 35%인 4,343만 가구(1억 456만 명)가 월세를 내며 살아가고 있고, 65%인 7,952만 가구(2억 866만 명)가 자기 집을 보유하고 있다. 주택보급률이 110%를 넘고 있고 대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곳곳에 놀고 있는 빈 땅이 넘쳐나지만,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높은 임대료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워싱턴에서 보모일을 하는 54세의 히스패닉계 이민자인 바이올레타 토레스 부인은 거실이 딸린 침실 하나 있는 집(원 베드룸이라고 함)에 월 828불씩을 월세로 내며 살고 있는데, 아는 사람을 거실 바닥에 매트를 깔아놓고 잠만 자게 해 주면서 월 400불씩 받으며 임대료 부담을 덜고 있다. 하지만 집주인이 월세를 261불씩 올리려고 하자 그녀가 거주하고 있는 다세대 주택 내의 다른 엘살바도르 이민 이웃들처럼 “난 돈이 없어요”라고 하면서 이를 간단히 무시해 버렸다. 집주인은 한밤중에 화재경보를 울리는 방법으로 세입자들을 쫓아내려 하지만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토레스는 월 1,000불 정도를 벌면서 두 명의 아기를 키우고 당뇨병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인슐린 비용 200불과 간병사에게 100불을 보내야 한다. 그러고 나면 토레스 부인의 수중에 남는 돈은 200~250불밖에 안 된다.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면서 머무르기에는 힘들고 이 집을 떠나기에는 갖고 있는 돈으로 마땅히 구할 수 있는 집이 없는 상황인 것이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주택건설 붐의 폭락 역시 구매가능한 아파트 공급을 조달하지 못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집을 구매하기보다는 렌트하려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지나치게 높은 신용도를 요구하는 은행대출도 집을 구매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도드-프랭크 금융개혁 법안(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의 영향으로 2014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적격 모기지 대출법(QMR, Qualified Mortgage Regulations)’에 의해 모기지 대출 발급기준이 강화된 것이 그 주요한 이유인데, 잘못은 금융기관들이 해놓고 서민들이 어려움을 떠안은 격이 되었다. 여기에 미국 연방정부의 주택보조금도 해가 갈수록 감소해, 렌트 푸어가 늘어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연방주택기금 규모는 절반 수준으로 급격히 감소한 가운데, 임대 보조금을 받는 가구 수는 전체의 27.4%에서 23.8%로 줄어들었다.

 

미국에서는 월세와 유틸리티(전기비, 가스비 등의 공공요금)를 합쳐 일반적으로 가계 소득의 30%가 넘지 않아야 구매가능한 집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목표는 임대료가 빠르게 오르면서 중산층 가구들에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비영리 싱크탱크인 ‘디맨드 인스티튜트(Demand Institute)’가 미국 내 1만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월세 세입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49%가 주거 관련 비용이 생활하기에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뉴욕 타임즈 역시 부동산 전문 웹사이트 질로(Zillow.com)와 미국 주택 임대료 자료를 공동 분석한 결과 “미국 주요 대도시 90곳에서 (유틸리티를 포함하지 않은) 평균 주택 임대료가 가계 소득의 30%를 넘었다”고 분석했다. 하버드대 주택연구센터(JCHS)에 따르면, 미국에서 주택 임대료가 소득의 30% 이상인 임대인 비율은 2000년도의 38%에서 최근엔 50% 수준으로 증가했다. 미국에서 렌트비를 내고 주택을 임대하는 사람들 중 하나는 렌트 푸어인 셈이다.

특히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주택 임대비용이 가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 1분기 34.1%에서 2013년 3분기에 47.0%까지 치솟아 임대부담이 가장 큰 도시로 꼽혔다. 한마디로 월급의 절반 가까이가 임대료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시카고에서는 가계소득 대비 임대료가 종래 평균치였던 21%에서 31%가 올랐고,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서도 가계소득 대비 주택 임대료 비중은 종래 14%에서 35%로 올랐다.

늘어나는 월세 부담은 서민들의 가계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전미저소득주택연합(NLHIC)에 따르면, 가계 소득의 절반 이상을 주택비로 쓰고 있는 저소득층 가구는 그렇지 않은 가구에 비해 식료품 지출 비용을 33% 정도 줄이고 있다. 의복비 50%, 의료비 80%를 줄이고 그 외 자동차 수리비를 줄이고 있고, 교육비, 장기적인 대비나 노후대비를 위한 저축도 거의 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소비의 감소로 전반적인 경제회복 속도도 더딜 뿐만 아니라,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기본적인 생활수준까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저임금 임대인들은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거주함으로써 종종 임대료 부담을 덜고 있지만 종종 좁은 공간 안에 지나친 인구과잉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저임금 가구들이 살 수 있는 집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생적으로 지저분하거나, 지붕이 새거나, 너무 낡은 전기시설을 갖고 있거나, 파이프가 심하게 녹슬어 있는 등 수준 미달의 집들이다. 이러한 집들에 거주하는 것은 자녀들의 성장기에 미숙한 사회적·감정적으로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올 수 있음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들이 존재하는 것은 서민층에서 집에 대한 수요는 넘치는 반면, 적정가격에 렌트할 수 있는 집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필자는 자정이 될 무렵 보스턴의 중앙 기차/버스역인 사우스 스테이션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들어가다 무수한 홈리스 분들이 긴 겨울밤을 피해 지하철에서 잘 준비들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이는 불과 몇 년 전과도 차이를 보이는 광경으로 백인, 흑인 인종에 가릴 것 없이 수많은 홈리스 분들이 집을 잃고 길에서 생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현 오바마 정부는 장기침체를 벗어나 경기가 회복세에 들어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자신의 지지층 확보나 연준의 통화정책을 위한 달콤한 립 서비스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미국의 수백만 명의 가난한 서민과 중산층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는 그렇지가 않다. 구직 포기자들을 포함한 실질 실업률은 11.4%에 달하는데, 월세는 계속해서 오르고 모든 재화나 서비스가 다 비싼데도 임금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으니 대학 학위를 가지고도 돈이 되는 일이라면 타프 타임으로 투잡이 아니라 쓰리잡을 뛰는 이들도 많다. 한국에서도 고령화·저성장 시대를 맞이해 정부가 경기활성화에만 염두를 둔 채 서민계층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저임금가구에 대한 금융보완대책을 강화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시에 구제방안 또한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