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한 분이 또 별세했다. 故황선순 할머니가 숨을 거둔지 5일 만이다.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황 할머니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남동생과 살다 17살 때 공장에 취직시켜주겠다는 거짓말에 속아 따라나섰다가 부산과 일본을 거쳐 남태평양의 작은 섬 나우루에 있는 위안소로 끌려갔다. 이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3년간 일본군 위안부로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故박위남 할머니도 16세 무렵이던 1938년경 만주의 군수공장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위안소로 끌려간 뒤 1945년까지 7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이처럼 평생을 정신적·신체적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다 지병까지 얻었던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의 사과 한마디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이제 53명(국내 48명, 해외 5명)으로 줄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평균 연령은 88.3세로 대부분 초고령이다. 현재 병상에서 치료 중인 피해자 할머니들을 고려한다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시간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올해 초 별세한 故박위남 할머니의 추모 영정이 놓여져 있다. 올해 초에만 벌써 위안부 할머니 두 분이 돌아가셨다.(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20여 년이 넘도록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집회를 열고 있지만 아직 일본 정부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우)

97세 생일에 “일본 사죄 꼭 받고 싶다”는 피해자 할머니

“내 죽기 전에 일본의 사죄를 꼭 받고 싶어, 사죄받으면 그나마 편히 눈 감을 것 같고. 그러면 훨훨 날아갈 것 같아” 최근 97번째 생일을 맞은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가 한 말이다. 김 할머니는 현재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53명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고령인 할머니 중 한 분이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김복득 할머니는 22살 되던 해인 1939년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부산으로 간 뒤, 중국의 일본군 부대로 끌려갔다. 이후 할머니는 대련에서 3년, 필리핀에서 4년 동안 ‘후미코’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의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김 할머니는 한국에 돌아온 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여성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평생을 노력해 왔고, 평생 모은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다. 지난해 말에는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도 받았다. 이에 김복득 할머니의 일대기를 담아 경남도교육청은 자료집 <나를 잊지 마세요>를 펴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김 할머니의 건강상태가 심상치 않다. 병원에서 노환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김 할머니는 온전한 정신을 차리고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데, 고령과 노환으로 인해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루빨리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과를 해야 마땅한 아베 정권은 오히려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정부는 무작정 손을 놓고 일본의 사과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정부, 위안부 할머니 ‘외상 후 스트레스(PTSD)’조사키로

정부가 올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트라우마)’ 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한 것도 위안부 문제 해결이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더 늦기 전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피해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것”이라며 “그동안 민간에서 몇 번의 시도가 있었지만 정부 차원에서 직접 조사와 연구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충격적인 사고를 경험한 뒤 반복적으로 사고를 떠올리거나 꿈을 꾸며 심한 고통을 겪는 증상으로 만성적인 우울증이나 불안 증상 및 인지 장애까지도 보일 수 있는 병이다.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심각성이 연구 결과로 밝혀지면 일본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증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의 한 관계자는 “국제적으로 전시(戰時)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는 실증적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2013년 정부가 실시한 위안부 할머니들 대상 심리 조사에서는 71.8%가 “과거 위안부 사건으로 스트레스와 심리적 고통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또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건강 상태 조사의 한 항목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조사를 했을 때 관련 항목 응답자 12명 모두에게서 심한 스트레스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피해자 할머니들에게서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호흡이 가빠지는 신체적 반응이 일어나고, 사건에 대해 기억하지 않으려 하면서 관련 질문에 대답을 회피하려는 경향까지 보이는 등 심각한 증상이 나타났다.

여성가족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심층적 의료조사와 함께 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올해 하반기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상반기에는 다른 위안부 피해 국가들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공동 등재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올 5월에는 관련 국제 학술 심포지엄도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정부는 오는 12월까지 ‘위안부 백서’를 발간하기로 했다.

 아베의 ‘위안부’ 역사 왜곡에 美역사학자들도 경악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아베 정부는 사과는커녕 미국의 역사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삭제하기 위해 압력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가 크게 망신을 당했다. 미국의 저명 역사학자들이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미국 역사교과서 왜곡시도 압력에 집단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미국역사협회(AHA) 소속 역사학자 19명이 집단 서명을 하고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우기 위해 역사를 가르치고, 또 만들어가고 있다”며 “국가나 특정 이익단체가 정치적 목적 아래 출판사나 역사학자들에게 연구결과를 바꾸도록 압력을 가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아베 총리가 미국 맥그로힐 출판사의 역사교과서를 거론하며 위안부 관련 기술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데 대해 “우리는 출판사를 지지하고 ‘어떤 정부도 역사를 검열할 권리가 없다’는 허버트 지글러 하와이대 교수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이 이처럼 특정 이슈를 놓고 집단성명을 발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들은 위안부 문제가 실존했다는 것을 거론하며 “일본 정부 문헌을 통한 양심 있는 일본 대학 교수들의 신중한 연구와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은 일본국이 후원한 성노예 시스템의 본질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고 못 박았다. 이어 “일부 보수적인 정치인들이 국가 차원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법적인 논쟁을 펴고 피해 생존자들을 비방하고 있다”며 “위안부 문제를 기록으로 남기고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쓰는 많은 언론인들과 학자들을 일본의 우익 극단주의자들이 위협하며 겁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앞서 아베 총리는 “미국 맥그로힐 출판사가 펴낸 교과서에 ‘일본군이 최대 20만 명에 달하는 14~20세의 여성을 위안부로 강제 모집·징용했다’는 내용을 실어놔 깜짝 놀랐다”며 “정정해야 할 것을 국제사회에서 바로잡지 않아서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말해 국제사회의 큰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캐나다에서도 고교 교과과정에 일본군의 위안부 역사를 넣겠다고 밝혔다. 캐나다의 안젤라 가우티에 교육청장은 “유럽 중심 교과과정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역사를 충분히 반영하는 교육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제 2차 세계대전의 아시아 역사를 학생들에게 교육하도록 고교 교과과정에 포함하겠다”고 발표했다.

▲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설 명절을 앞두고 서울 마포구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 ‘평화의 우리집’에서 길원옥·깁복동 할머니를 만나 인사하고 있다.(좌)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일본 자민당 대표를 접견하며 악수하고 있다. 올해는 한·일 수교 50주년으로 정부 차원의 적극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우)

올해 한·일 수교 50주년, 늦어도 8·15까지는 정상회담 성사돼야…

올해 초에만 벌써 두 명의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고령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걱정하는 국민들의 애타는 마음이 더욱 초조해졌다. 이제 생존 피해자 할머니들은 53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는 길은 요원해 보인다. 그만큼 역사 문제로 인해 경색되고 있는 한·일 국민들 간의 정서가 더욱 멀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 국민의 ‘반일본 정서’만 커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일본 정부의 조사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에 친밀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작년보다 9.2%나 감소하며 역대 최저치인 31.5%에 그쳤다. 약 70%에 가까운 일본인이 한국에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 등 일본의 역사 왜곡 시도가 양국 국민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우리나라처럼 위안부 피해 국가인 중국도 ‘일본과의 관계가 양호한가’라는 응답 조사에서 겨우 5.3%만 양호하다는 답변이 나왔다고 한다.

결국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 분야 등 모든 국가 간 우호협력을 ‘올스톱’ 시키고 있는 아베 정권의 역사 왜곡문제부터 해결해야만 한다. ‘위안부 문제’는 한국과 중국 및 동남아시아 국가들 모두의 명예와 역사적 진실이 결부된 중요한 문제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일본 정부는 올해가 한·일 수교 50주년이라는 점을 특히 주목해야 한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한일의원연맹을 통해 아베 총리와 ‘간접적인 정상회담’을 시도했다. 서 의원이 “금년이 한·일 수교 50주년이 되기 때문에 양국이 새 출발을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전하자 아베 총리는 “군 위안부 문제는 가슴 아픈 일”이라며 “고노 담화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화답했다. 물론, 그동안 사과한다고 하고는 곧바로 전범들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행태를 보였던 아베 총리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부터 받아내야 하는 우리에게는 정상회담을 거치는 방법이 최선이다. 아베를 결국 정상회담 회의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올해 87세의 강일출 할머니는 수요 집회에서 “그 사람들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했고, 모질게 당한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속으로 내려간다”며 “이제 우리는 정부밖에 믿을 데가 없다”고 울먹였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20여 년이 넘도록 일본 대사관 앞에서 수요일마다 집회를 열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일본이다. 우리 할머니들에게는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하릴없이 우리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행히 올해는 한·일 수교 50주년이라는 명분이 있다. 이를 잘 활용해 최소한 ‘위안부 문제’만큼은 8·15 광복절 때까지 해결하겠다는 정부 차원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

박진혁 기자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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