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하게 홀로코스트 추모관 찾아 무릎 꿇은 아베 총리
▲ 2015년 1월 중동 순방길에 오른 아베 일본 총리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부인 아키에 여사가 지난 총선 승리 이후 가진 첫 중동 순방길에서 ‘평화 전도사’를 자처하며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제 2차 세계 대전 유대인 대학살) 추모관을 찾았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 특정 민족을 차별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 잔혹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또, “차별과 전쟁이 없는 세계,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을 실현해야 한다”며 방명록에는 ‘이런 비극이 절대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썼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서 그런 아베 총리의 행보를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다. 그의 지금까지의 행적과 발언을 살펴보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차이가 난다.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며 스스로 ‘평화 전도사’임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그 누구도 아베 총리의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정작 동아시아에서 과거사 논란을 일으키고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사죄에는 인색하면서도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방문해서는 “이러한 고통의 역사를 후손에게 전하려는 유대인들의 노력에 깊은 존경을 표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아베 총리에게는 ‘자기기인(自欺欺人)’이라는 말이 매우 잘 어울릴 법하다. ‘자기기인’이란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속이려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이번 중동 순방길에 오르면서 아베 총리 부부가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찾을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먼 길을 마다하고 상당수의 중국인 기자들이 아베 총리를 취재하기 위해 모여들었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2012년 총리 직에 취임한 뒤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A급 전범들이 잠들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고, 2014년에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고노 담화’까지도 사실상 부정했다. 이런 가운데 제 2차 세계 대전 때 이스라엘의 학살당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장소를 찾는다는 것은 그동안 역사 문제로 주변국들과 잦은 마찰을 일으켰던 일본이 새해를 맞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도록 했다. 그들이 기대했던 것은 아마도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에 대한 반성과 진심어린 사과의 발언이었을 테지만, 역시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심지어 아베 총리는 1,100여 명의 폴란드계 유대인을 구한 나치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에 빗대 ‘일본판 쉰들러’로 불리는 일본 외교관 ‘스기하라 지우네’를 언급하며 “일본의 선조 중 유대인 난민을 도운 시민이 있었다. 우리가 따라할 용기다”라는 말로 일본이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오히려 인권 보호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강조했다. ‘스기하라 지우네’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리투아니아 주재 영사 대리로 부임해 있다가 유대인 6,000여 명에게 일본행 비자를 발급해 이들의 미국 망명을 도왔던 인물이다. 독일의 동맹국이었던 일본 정부에서는 비자 발급을 금지했으나 유대인을 동정했던 스기하라가 자신의 재량으로 비자를 발급해 도운 일이었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1969년 스기하라의 공을 기리는 뜻으로 훈장을 수여했다. 아베 총리는 홀로코스트 추모관 공원에 스기하라 이름으로 심어진 나무를 찾아 참배했다.
정작 아시아 평화에는 무관심한 일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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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방위백서 사건으로 한국에서 시민들이 ‘독도야욕 분쇄 항의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 ||
존스홉킨스 대 국제관계 대학원의 한 연구원은 국내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얼마 전 일어난 프랑스 주간지 테러 사건에 빗대어 “일본이 미국의 역사교과서 출판사들에게 사진을 삭제하라는 등의 압력을 가하는 행위는 이슬람 성전을 주장하는 자들이 파리의 풍자 주간지의 만평 게제에 반발하는 것과 유사하다”며 이는 “언론 자유에 대한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은 얼마 전 미국 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맥그로힐 출판사에 위안부가 ‘일왕의 선물’이라고 묘사한 부분과 난징대학살 때 중국인을 참수하는 사진을 삭제하라고 압력을 가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일본의 극우단체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실사 작업을 벌여 일본 정부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근 일본은 대한민국의 영토임이 명백한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명기한 한글 요약본 방위백서를 만들어 주변국에 전달하는 등, 그 도발의 수위를 점점 더 높여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스스로 ‘평화 전도사’라고 칭하며 홀로코스트 추모관에 방문한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의 인식이 달라질 것인가. 일본이 과연 ‘평화’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조차 의문이다.
스스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는 행동 멈춰야…
해외에 ‘영구 해외 군사기지’를 만들겠다는 일본 정부의 움직임도 아베 총리의 추모관 방문과 상반된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소말리아 해적 퇴치를 위해 아프리카 동부 지부티에 설치한 일본군 자위대 임시 기지를 사실상 ‘영구 해외 군사기지’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일본 정부는, 방위성을 통해 올해 자위대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서라도 2016년도 예산안에 지부티 기지를 확장하는 예산을 편성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2011년도에 일본은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발생하는 일본인 인질 사태와 재해 시 자위대 파견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지부티 국제공항에 인접한 12헥타르 부지를 임차해, 사령부 등 주둔지를 꾸렸다. 현재 초계기 2대와 자위대원 180여 명이 주둔하고 있는 상태다. 본래 ‘해적 대처법’으로 만들어진 지부티 기지는 자위대 임무가 종료되면 폐쇄 조치될 임시 기지였다. 2009년 219건에 달했던 소말리아 앞바다의 해적활동은 현재 10건 안팎으로 줄었는데,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일본 정부가 부랴부랴 영구 기지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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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 총리의 중동 순방 중, IS는 일본인 2명을 인질로 잡고 2억 달러를 내라며 살해 협박을 했다. (출처=유투브 영상 캡처) | ||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나머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긴급 기자회견을 연 아베 총리는 “일본 정부의 2억 달러 지원은 피난민에게 식량과 의료를 제공하기 위한 인도적 지원”이라고 주장하며, “인명에 대한 협박은 용납할 수 없는 테러행위인만큼 즉시 석방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테러에 굴복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앞으로도 비군사 분야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어떤 결정이더라도 국제사회의 평가와 자국민의 여론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아베 총리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부당한 요구에 응할 수는 없지만 인명을 중시하겠다”고 했지만, 그 시각에 치안이 악화된 시리아에서 일본의 외교관은 이미 탈출한 상태였다며 비판을 쏟아내는 언론 기사가 많았다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진정성 보이려면, 위안부 할머니 앞에 먼저 무릎 꿇어야…
▲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집회에서 길원옥 할머니가 주한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과 나란히 앉아 있다.
아베 총리의 말처럼 ‘인명은 소중’하고 ‘평화와 인권은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전쟁범죄자를 영웅시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는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있다. 또, “일본의 침략이라는 것은 정의되지 않았다”며 과거사를 부정한다. 이런 가운데 아무리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찾아 무릎을 꿇는다 한들, 무슨 진정성이 있겠는가. 위선일 뿐이다.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학살한 것을 사과하며 독일이 그러했듯, 일제가 아시아인을 상대로 저지른 잘못을 일본은 사과하는 것이 옳다. 그들에게 먼저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것이 아베 총리가 말했던 ‘세계 평화와 인권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공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박진혁 기자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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