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에서 맴돌지 말고 正道를 찾아라


▲ 1월 12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생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모습.

통치스타일보다는 국민에 대한 태도였다

신년 기자회견은 대통령이 국민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완결판이었다. 국민 80% 정도가 인사쇄신을 바라고 있었는데, “비리가 없고, 관계가 없고, 사심이 없다”라고 했으니 국민에 대한 항명으로 비춰진 까닭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가 여당의 지지율보다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객관적 사실도 부정했고, 조작이라고 규정했으며, 대면보고 늘린다면서 보고서만 신뢰하고, 조건 없는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면서 단서를 붙였다. 또 항명을 항명이 아니라고 했으며, 예전의 대통령기록물을 찌라시라고 했다. 원칙을 주장하면서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는 느낌을 주었다. 어떻든 기자회견이 부정적 이미지를 생중계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체감지수가 너무 싸늘했다. 국정운영에 동력을 잃을까 걱정이며, 보수언론에서조차 민심에 역행하는 마이웨이 행동으로 국민피로감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했다. 야당에서는 실세를 확인해 주었고,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불통인지를 모르고 또 불통이 얼마나 아픈 말인지를 모른다고 했다.
구정 민심이 중요하다는 것은 전 국민이 다 아는 문제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하여 대통합을 위한 제스처가 나와야 하고, 인사 트라우마에서 벗어난 조치들이 있어야 한다. 지지율이 빠지는 것은 지금의 스타일로는 안 되니 바꿔 달라는 요구이므로 그 눈높이를 조정되고 국민을 보고 국정을 운영한다면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당지지율보다 크게 낮아지는 현상이 오래 간다면 불꽃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이 모든 것들은 보수정권을 탄생시킨 보수정당에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당과 청와대를 공동운명체 또는 동반자관계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8월이면 중간 반환점을 돌게 된다. 지금까지 국정성과나 당청관계를 보면, 원론적인 문제로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땅히 가야할 길, 바른길[正道]를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청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다

청와대는 문건유출사건과 항명사건에서 벗어나 집권 3년을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연이은 부처별 업무보고의 순으로 스마트하게 출발하려는 다짐이 있었다. 여당에서는 ‘당청 = 공동운명체 = 동반자관계’라면서 김무성 대표의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뒷받침하고, 2월 임시국회부터 차근 차근 국정운영의 주역으로서 역할을 결심했다. 그런데 예견된 일들이지만 두 가지 사건이 터져 정초에 정국이 우울하고 화가 났다. 하나는 신년기자회견 직후 여론조사에서 마지노선을 밑도는 35%가 나왔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반영된 여론조사에서 이렇게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은 역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든든하게 받쳐 주던 TK지역과 50~60대 연령층에서까지 이탈했고, 관망 자세였던 보수층이 돌아서자 곤두박질을 치면서 지지율이 확 빠지고 말았다. 친박 일부에서도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것은 특보단 구성이 처방이 아니라는 뜻이고, 여론형성의 중심층인 40대 넥타이부대들이 13월의 세금폭탄과 담배값 인상, 그리고 기자회견을 듣고 등을 돌린 것이다. 보수방송에서조차 그 추세가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서 25%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공공개혁을 밀고 나가야 할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동력에 치명상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생중계를 하는 바람에 표정도 봤고, 말씨도 생생하게 들었기에 그 상처가 오래 갈 것 같다. 지금까지 나온 것만 보더라도 운영 시스템과 인적관리를 보면 ‘정도(正道)로 가고 있지 않다’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신년기자회견 직후 여론조사에서 낮은 지지율을 보인 가운데 앞으로 청와대의 행보가 귀추된다.
또 하나는 김무성 여당대표를 청와대 행정관이 설왕설래한 사건이 터졌다. 사실관계를 떠나 황당무계하고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여론이 안 좋은 것도 모두가 청와대발 사건들 때문이었다. 중간에서 덮어버린 것도 문제이거니와 충성 경쟁에서 온 것인지, 아니면 파워 행세를 하기 위한 수단이었는지 모르나 열심히 일을 하다가 나온 실수들이 아니기 때문에 우선 저질스럽게 보인다. 통 큰 정치하겠다는 정치인답게 처신했으니 망정이지, 어떻든 정초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인사청문회도 있고, 공무원연금 개혁도 있고, 야당과 합의한 청문회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경제살리기에 당청이 동참해야 할 시점에 여간 볼썽 사나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에서는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민생현장으로 분위기를 바꾸어 노련한 정치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문제를 정치생태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정치도 생물이다. 당청관계도 동반자관계, 공동운명체인 만큼 생물처럼 공생관계를 한다. 공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리공생(相利共生)이다. 서로에게 해를 주지 않고,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관계를 말한다. 즉 집권당에서는 상리공생을 원할 것이다. 또 하나는 편리공생(偏利共生)인데, 한쪽에는 아무런 이득을 보지 못하지만 손해는 보지 않고 다른 한쪽은 이득을 보는 공생관계를 말한다. 예를 들어 빨판상어와 상어, 따개비와 고래, 몸 속의 대장균과 같은 관계다. 그 혜택이 결국 이득으로 돌아갈 것이므로 청와대에서는 후자를 원할지도 모른다. 당연하다. 성과의 몫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 때로는 상리공생을, 때로는 편리공생으로 나뉠 것이다. 그러나 정치가 생물과 다른 점은 이익과 손해라는 이분법적 계산으로 합리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멸이라는 암벽이 앞에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당청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다. 이제라도 낙인효과는 버리고 기대한 만큼 상대방도 그 기대에 보답한다는 피그마리온(pygmalion) 효과를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

단기성과보다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대선 때 경제민주화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당을 떠났고, 성장 위주의 경제팀이 전면에 나섰다. 국가를 개조하겠다면서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겠다고 선언했다. 국가개조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많지만 기틀을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는 점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는 것으로 보이는데, 다원화되어 있는 우리의 현실을 볼 때 어느 한쪽에 손을 들어 줄 수는 없다. 그러나 국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경제안정의 기틀을 마련하는 쪽도 신경써야 한다. 현재 정부는 새고 있는 세금을 찾아내기보다는 세금폭탄이 먼저이고, 막혔거나 병목현상을 뚫어주는 역할보다는 장기계획에 몰두하며, 경제성장을 위한 양극화 문제 해결에는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는 점은 너무 아쉽다. 즉 국민을 설득시킬 메뉴선정에서 개념설정이 잘못된 것이다. 여당대표가 일본경제를 뒤따르고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했듯, 경제는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나 담배값부터 13월의 세금도둑까지 정부로부터 배신당했다면서 화가 난 넥타이부대들, 창조경제를 주창하면서 기업 간 상생 분위기가 후퇴되는 등 엇박자가 보인다.
박 정권에서 말하는 기틀이란,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위한 기틀, 경제민주화를 위한 기틀, 양극화 해결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기틀을 마련할 힘이 동력인데, 이 동력이란 조직과 사람이다. 조직이 분열되고 사람의 마음이 갈라지면 힘을 쓸 수 없는 것이다. 기업이나 정부나 마찬가지다.
인력관리에서 동기유발이 매우 중요하다. 그 동기유발이란, 사람의 마음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사로잡는 것이다. 여기에 편 가르기가 있다면 동기유발이 되겠는가? 오히려 불량품이나 사고가 나게 마련이다. 오죽했으면 하인리히 법칙에서 잠재성 재해가 있겠는가?
따라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친박 대 비박’의 틀을 과감히 바꾸어 줘야 한다. 국민여론을 반영해 대표를 선출하지 않던가? 편 가르기가 존재하는 한 어렵다. 생각과 가치관의 차이를 수용하여 폭넓은 토론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만약 제 식구 챙기기 등 구조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패거리 정치로 전락하게 된다. 혁신 위에서 빠른 시일 내에 재탄생의 심정으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들은 올 한 해 당대표와 대통령이 몇 번 만나느냐를 지켜볼 것이다. 횟수뿐 아니라 내용이 더욱 중요하다. 국민들은 공무원연금과 같은 쟁점정책을 놓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자 한다. 집권자들이 가장 무서워해야 할 말이 있다면 아마도 잃어버린 10년, 역사 후퇴라는 말일 것이다.

正道를 찾는 길은 인적쇄신과 소통이 출발점이다

의사소통에는 비언어, 언어, 서면, 전화, 화상 등이 있고, 상향식-하향식-수평식-대각선식 의사소통이 있다. 의사소통의 장애물은 물리적 장벽, 사회심리적 장애, 어의적 장애가 있는데, 의사소통의 목적이 다양하므로 이를 잘 활용한다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의사소통의 목적은 영향력 행사(통제)와 지침을 제시하기 위해 소통하고, 감정표현은 이는 인간관계의 기본이고 감정과 그에 대한 정보 표출, 직무만족과 직무몰입에 영향을 주게 된다. 다음은 정부든 기업이든 결국 사람이 일을 하기 때문에 생산적이어야 하고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다음은 문제해결이다. 우리 사회는 면대면 사회이다. 소통은 양보의 선을 넓힐 수 있고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교환과 함께 피드백과 평가가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정치행위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의사소통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서면보고는 받지만 면대면, 구두보고는 별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데 있다. 구두 의사소통은 전달과 반응이 신속하고 메시지의 신속한 수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메시지 왜곡(자신의 방식대로 해석)이라는 단점도 있다. 그리고 문서 의사소통의 장점은 눈으로 볼 수 있으며, 확인이 가능하고, 오랫동안 저장하고 더 깊게 생각하고, 논리적이며, 명확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문서작성에 시간이 소요되고 즉각 피드백이 곤란하며, 의도대로 해석할 것인지의 보장이 어렵고, 선택적 지각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도 있다.
소통방식에는 조직을 가동하고,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도, 화상으로도 할 수 있고, 회의체를 통해서도 소통의 길은 열린다. 문제는 소통의 수준이다. 소통의 자세만 취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 기틀을 마련하는 길에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공무원연금을 포함한 공공개혁을 추진하되 관심사항에 대하여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당청 간 호흡을 맞추고 국회와도 긴밀한 협조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핫라인을 가동하고 청와대의 인사쇄신과 홍보활동, 정무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신년기자회견을 반전시킬 수 있는 나만의 소통전략을 제시하거나 강력한 추진력으로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소통문제는 성격을 바꾸거나 행동을 제한하자는 것이 아니다. 여론을 따라 다니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대화의 기회가 적고 설득력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이 언제나 전진하지 못하고 원점에서 맴돌고 있는 느낌이 든다. 불통은 다른 사람, 다른 집단에 피해를 주고, 긍정을 부정으로 둔갑시키며, 불통리더십으로 고착될 것을 염려하여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어젠다 정치(정치적 수사만 있을 뿐 정책이나 성과도 없는 정치)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우리 속담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얼굴빛(표정)만 봐도 안다’라는 말이 있고, 학문적으로도 의사소통은 환경 감시의 기능, 합의의 기능, 사회화의 기능이 있다. 정치인들은 이렇게 소통의 목적과 기능을 잘 살려내야 한다.
인적쇄신이 4월 보궐선거에서도 이어져 중간평가적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결코 돌아갈 수 없는 문제이다. 집권 3년차이고, 여론에게 발목을 잡히고 있고, 기강이 해이해졌으며, 세금폭탄처럼 거짓이 들어난 행정, 세금낭비 등이 박근혜 정부의 현주소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전 국민을 아프게 했던 외환위기. 그때도 유능하고 정보가 많은 공무원이 있었지만 경제적 파산인 외환위기를 당했고 컨트롤타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경험했었다. <외부 필진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정용택 박사 순천향대학교 외래교수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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