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집 폭행 사건의 피해 아동 학부모가 ‘아동 학대 규탄’ 집회에 참여해，발언을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아동을 학대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분노와 근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문제의 CCTV(폐쇄회로)를 본 모 든 사람의 가슴은 오래도록 먹먹했다. 하물며 매 일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21세기 대한민국의 보육 현실이 고스란 히 이 영상에 담겨 있다. 비약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가 지적하듯이 우리 보육 현실에 대 한 문제 제기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바뀌지 않았 다. 실제로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보도 된 이후로 경찰에 유사 피해를 신고하는 사례가 급 증하고 있다.

 여기저기 문제가 많은 어린이집이 물의를 빚고 속속 문을 닫고 있지만, 정작 아이를 맡길 곳이 없 는 부모들은 그저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는 현실 이다. 학부모들은 당장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 늘리 자고 주장하고, 보육업계는 교사들의 처우개선이 우선이라며 지원금부터 증액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제대로 된 보 육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탓에 애꿎은 아이들만 피 해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아동학대 문제가 크게 붉어지자 정부는 부라부 랴 사건이 발생한 어린이집을 즉시 폐쇄하겠다는 이른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와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보육교사 자격증 취득 과정을 국가 고시로 전환하겠다는 ‘자격요건 강화 카드，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전문가들과 학부모, 보육교사 모두 가 하나같이 이런 방안들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더욱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 30% 올리려면 10조 원 필요

 현재 정부의 대표적인 보육정책을 살펴보면, 문 제는 더 크게 느껴진다. 국무총리실 산하 육아정책 연구소의 지난해 조사를 보면, 국공립 어린이집에 자녀를 입소시킨 부모 10명 가운데 2명은 대기 기 간만 7개월 이상이 걸렸다는 분석이다. 일부 인기 있는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위해 2~3년씩 기다렸 다는 사례도 있다. 이런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다시 신청을 할 수 있는 어린이집을 3곳까지로 제한하 고 한 번 입소하면 다른 어린이집 대기 신청은 삭 제하는 방식으로 ‘어린이집 입소관리시스템，운영 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방안은 실질적인 대기 수요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비판이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은 국공립 어린 이집을 대폭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에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 전체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동 가운 데 국공립 어린이집 원생의 비율은 10%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국공립 어린이집 비 율을 30%까지 끌어올리려면 올해 보육예산(6조3,500억 원)의 2~3배인 10조 원 대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 약사항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재작년에 예산상 제약 때문에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 늘릴 수 없다며 민간 어린이집 가운데 평가를 통해 ‘ 공공형 어린이집’을 지정하겠다는 ‘국공립•공공 형 어린이집 확대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어차 피 민간 어린이집이라는 한계 때문에 결국 국공 립 수준으로 질이 높아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좌)잇따라 발생한 어린이집 원생 폭행 사건으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가운데,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해맑게 뛰어놀고 있다. (우) 원아 폭행 사건이 발생한 인천시 부평구의 한 어린이집이 사과  쪽지를 붙여놓고 문을 닫았다. 한 학부모가 해당 어린이집 현관에 항의성 글을 붙였다.

 CCTV 설치 의무화, 인권침해ㆍ비용문제 걸림돌

 정부가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를 하겠다 는 방안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보육교사들 을 잠재적 범죄자로 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고, CCTV도 결국 사각지대가 있으니 강제적인 감시 만으로는 문제의 본질을 해결할 수 없다는 목소리 가 높다. 어린이집 CCTV 의무화 방안은 지난 W 년간 4차례나 추진됐지만 인권침해 등을 염려하 는 보육업계와 시민사회의 반발도 번번이 무산됐 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이번 인천 어린이집 원아 폭행 사건으로 인해, 어린이집 아동폭력 근절 대책으로 ‘CCTV 설치를 전체 어린이집으로 확대 하는 방안’을 최종 포함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언론을 통해 “전수조사는 단 지 단속과 적발 차원이 아니라 제2ㅡ3의 아동학 대 사례를 미리 예방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전국 250개 경찰서에서 한 달간 4만 3,000여 곳을 모 두 들여다보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또한 전문가들이 경찰과 지자체의 한정된 인력으 로 전국 단위 어린이집 전수조사를 내실 있게 진 행할 수 있겠느냐며 우려하는 상황이고, 실제로 도 전국 어린이집 가운데 CCTV를 설치해 운영 중 인 곳은 9,081개 정도(21%)밖에 없어 CCTV가 설 치되지 않은 어린이집은 증거 수집 자체가 어려 운 실정이다.
 또, CCTV가 설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법적으 로 이를 경찰에 공개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조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은 “CCTV가 없거나 공개하지 않는 어 린이집은 그 명단을 공개하는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당장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야 하는 부모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여전히 부 실하다는 평가다.
 보육현장에서도 “범죄와 연관이 없는데 CCTV 를 열람하게 한다면 논란이 될 것”이라며 “아동학 대 문제는 처벌과 규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보육예산 부족이 심각한 상황에 서 CCTV 설치에 따른 비용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CCTV 설치비용은 어린이집 한 곳 당 한 개씩 설치할 때의 비용이 최대 176억 원 정 도가 필요하다는 추산이다.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폐ㆍ휴원으로 갈 곳 없는 학부모들만 발동동…'

 사건이 발생한 어린이집을 즉시 폐쇄하겠다는 이른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는 문제가 더 크다. 보건복지부와 여당이 어린이집 아동폭행 사건 대 책으로 내놓은 궁여지책이지만 부모들은 “한 번 적발됐다고 무작정 폐쇄시키면 당장 우리 아이들 은 어디에 맡기라는 말이냐”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아동학대 문제가 불거진 후 휴원과 폐업에 돌입한 어린이집이 늘어나면서 당장 아이 맡길 곳을 찾지 못한 부모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괜찮은 어린이집을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 는 대기자만 수 백명이라는 현실에서 한 전문가는 “당국에서 어린이집 3~4개를 권역별로 묶고 유 사시에 대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제도를 만든다 면 당장 아이를 보낼 마땅한 어린이집을 찾지 못 하는 부모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 엄마들이 모인 한 인터넷 카페 동호회 회원들이 인천시청 앞 미래광장에서 최근 일어난 인천 송도 어린이집 원아 폭행 사건을 규탄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보육교사 자격요건 강화’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업계 현실 고려해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린이집 아동폭력 근절대책 추진 방안 현장 간담회를 통해 “보육교 사의 실습 교육을 대폭 강화하고 필요하면 자격증 취득을 현재의 학점 이수 방식이 아닌 국가고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막상 현장에서 보면 보육교사 일은 너무 힘들 다. 이에 비해 보육교사 자격증은 따기가 너무 쉽 다는 지적이 많다. 대리시험으로도 간단히 취득 할 수 있어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흘러나온다. 실 제로 한 조선족 동포는 대행업체에서 과제를 대 신 해 준 덕분에 손쉽게 자격증을 땄다며 자랑스 럽게 인터넷 동호회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처 럼 너무 쉽게 취득하는 보육교사 자격증 제도가 결국 보육의 질 저하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오 는 이유다.
 그러나 자격증을 쉽게 따느냐 아니냐의 문제보 다는 교사의 인성문제라는 비판과 이미 보육교사 자격증 소지자가 넘쳐나는 현실을 외면한 대책이라는 반론도 많다. 현재 보육교사 1~3급 자격증 소지자는 12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현업 종사자 들보다도 4배 정도가 더 많은 숫자다. 더불어 보 육교사의 인성 교육이 단 몇 시간의 교육으로 채 워질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조금 더 사회적 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 우리도 미국의 사례처럼 보육교사들이 아이들에게 폭력 이나 폭언을 했을 경우 거의 종신형에 가까운 처 벌을 받도록 하고,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긴 경우 무조건 담당 교사와 원장•부원장이 책임을 지도 록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주장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보육문제,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우리의 보육현실은 분명 총체적으로 부실하다 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저출산이 심각하니 아이 를 많이 낳으라면서도, 당장 맘 편히 아이를 맡길 보육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부모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대책으로 나온 방안들도 딜레마에 빠져버린 듯 하다. 교사와 부모는 감시하고 불신하는 갑을의 관계가 아니라 협력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 가 돼야 한다. 정부도 당장의 비난 여론을 의식 해 눈앞에 보이는 대책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또, 좋은 어린이집에는 충분한 인센티브가 주어 져야한다. 사명감이 투철한 양질의 보육교사 양 성이 중요하고, 교사들의 처우 개선은 물론 어린 이집 원장과 보육교사 간의 갑을관계 관행도 개 선이 필요하다.
 예전처럼 쉬쉬한다고 덮어질 일도 아니지만, 그동안 우리 아이만 안 좋은 어린이집에 안 보 내면 된다고 생각하던 것이 결국 문제를 키운 감 이 없지 않다. 이번 어린이집 폭행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보육환경 전체를 다시 한 번 돌아보 며 근본적 인 대책을 세울 좋은 기 회로 삼아야만 한다.

박진혁 기자  wisehyuk@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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