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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연재 ⑧ - 학문에 근거한 富者 되는 비결〈이것을 알면 부자 된다〉
이정암(한국도선풍수명리학회 회장) | 승인 2015.01.14 15:39|(178호)

   
▲ 이정암 (한국도선풍수명리학회 회장)
나 경찰서장 될 수 있소?

내가 경찰청 수사 부서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때마침 점심시간이 남아 옆방에서 차 한잔 한다는 생각으로 평소에 가깝게 지내던 수사부서 계장 전 경감 방에 들렀다. 전 경감은 어디선가 전화를 받고 나더니 내가 들어갔는데도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의자에 앉아만 있기에 왜 그렇게 넋 빠진 사람처럼 앉아만 있는지 되묻게 되었다.

“전 형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안색이 좋지 않은 걸 보니 뭔가 심각한 모양인데…”
“이 형, 금년에 80이 되신 어머니께서 위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시골에는 300여 평 되는 조그마한 밭 한 필지가 있어 그곳에 부모님을 모시려 했는데 현재 그 밭을 경작하고 있는 삼촌이 강력하게 반대를 하니 어쩌면 좋겠소”

전 계장은 집안 사정을 소상히 내게 털어놓았다.

“그 밭이 길지인지 흉지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 부모님 묘소로 사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그럼 이 형은 길지인지 흉지인지 보면 알 수 있나요”

전 경감은 갑자기 표정이 달라지더니 내게 관심을 보인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선대의 영향으로 풍수공부를 좀 해왔기에 밭이나 임야가 길지인지 흉지인지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지요.”

내가 길지인지 흉지인지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다고 하자 전 경감은 내 말에 관심을 갖고 더욱 적극적으로 서두른다.

“이 형! 다음 일요일 새벽에 내가 특급 새마을호 차표를 준비할 테니 나와 함께 내 고향 논산으로 좀 갑시다.”
“다음 주 일요일에 논산을 간다구요”
“한시가 급해요. 어머님께서 임종을 오늘내일하고 계시는데, 집안에서는 아버님과 가족들은 절대 화장은 못 한다고 하시니 마땅한 장지가 없어 삼촌이 농사짓고 있는 복숭아밭을 예상하고 부탁드렸더니 삼촌이 그것마저 막무가내로 거부하고 있어요. 만약 그 밭이 길지라면 무리수를 두더라도 그곳을 장지로 정할 수밖에 없고, 만약 흉지라면 급히 다른 곳에 물색할 수밖에 없게 되었지 뭡니까”

전 경감은 우선 삼촌이 농사짓고 있는 복숭아밭만이라도 나와 같이 가서 보고 오면 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 한번 내려 가봅시다.”

나는 딱한 그의 처지에 일요일 아침에 내려갔다가 오후에 올라올 생각으로 쉽게 약속하고 말았다. 드디어 일요일 새벽 새마을호 첫차를 타고 충남 논산을 향했다. 아침부터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였는데 논산역에 내리니 전 경감의 시골에 사는 동생이 택시를 대절하여 미리 마중 나와 있었다.

“인사해라. 나와 옆 사무실에 친하게 지내는 이 반장이시다.”
“안녕하세요. 먼 길에 일찍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비가 오는 데 마중 나오셨군요.”

시골에 농사를 짓고 산다는 첫째 동생은 무척 순박한 충청도 토박이로 보였다. 택시로 약 30여 분 달리다가 약 30여 호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입구에서 차가 멈추었는데, 이곳은 전씨가 어릴 적부터 태어나 살았고 7남매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내게 하였다. 전 계장은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이었는지 마을을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다시 차에 올라 문제의 복숭아밭에 도착하게 되었다. 밤송이만 한 복숭아가 조롱조롱 열린 그 밭은 마을 뒷산 밑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토질이 음습하고 주변에도 습지가 있어 장지로는 부적격한 흉지였다.

“전 형, 이 밭은 장지로 쓸 수 없는 흉한 땅이요.”

차에서 내려 밭 한 바퀴를 돌아보다 말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그냥 돌아가자고 하였다.

“그래요? 그럼 낭패인 걸 어쩌지….”

전 경감은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였고 동생 또한 같은 표정이었다. 하는 수 없이 타고 왔던 차로 되돌아서 약 10분쯤 읍내로 나오고 있을 때 어느 고구마밭 한쪽에 길지로 보이는 곳이 있어 갑자기 차를 멈추게 하였다.

“비도 그쳤으니 잠시 차에서 내려 바람 좀 쐬고 갑시다. 그런데 전 형, 저기 보이는 고구마밭 말이요.”

전 경감과 그의 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 언덕 위에 있는 붉은 빛 나는 고구마밭이요”
“그래요. 지기가 뭉쳐 있는 것 같으니 한번 가봅시다.”

비가 온 뒤라 진흙길이 미끄러웠지만 논길을 따라 그 밭에 들어가서 가만히 앉아 보니 무척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비록 대 길지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장후에 별 탈 없을 땅이 분명했다. 밭 언덕에 있는 산맥을 풍수학에서는 ‘돈룡’이라 부른다. 돈룡이라도 청룡과 백호를 갖추고 국세가 길격이면 장지로는 훌륭하다.

“이 밭을 먼저 매입하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가족묘지로는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산기슭을 개간하여 고구마를 심은 곳이라 임야와 다름이 없었고 고구마밭이기에 그다지 비싸지도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형님, 저 밭은 이 동네 사는 김 씨의 밭입니다. 논밭을 팔고 도시로 나간다고 언제부터 말해왔으니 아마도 쉽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마을 내력을 잘 아는 동생이 자신 있게 말하였다.

“그럼 동생이 책임지고 꼭 매입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형님.”

일행은 다시 읍내로 나와서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두 형제의 표정이 매우 밝았다.

그 후 3일이 지났다.

“이 형, 시골 동생이 그 밭을 아주 싸게 샀는데 쌀 5가마 값이니 거저지요, 거저.”

전 경감은 동생의 전화연락을 받고 기쁜 나머지 곧장 내 방에 찾아와서 내게 반가운 소식을 알렸다.

“복이 있군요. 약 300평 정도 되는 땅이니 전 형을 비롯하여 가족묘지로 사용한다면 묘지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입니다.”
“아버님 연세가 올해 83세인데 돌아가시면 어머니 옆에 두 내외를 나란히 함께 모시게 되었으니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집안에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예? 저도 경찰서장 할 수 있어요”

그가 갑자기 자신도 경찰서장이 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럼요, 될 수 있고말고요.”

전 경감은 무척 성실한 사람이었다. 7남매 중 유일하게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장남이며 순경에서 출발하여 40대 후반에 경감이 되었으니 총경까지 승진하기는 연령상 쉽지는 않겠지만 그는 모시는 상사로부터 항상 신임을 받고 있는 성실한 직원이므로 고속승진을 한다면 총경이 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의 가정에는 이혼 직전에 있는 동생과 오래도록 질병으로 고생하는 또 다른 동생이 있었다.

“이 형, 터를 정하는 그날 집에 돌아오니까 수원에 계시는 누나가 어머님이 입원하신 병원으로 찾아오셨는데 누나의 꿈에 갑자기 시골 김 씨 밭에서 불기둥이 하늘로 치솟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고 조바심이 되어 서울에 올라왔다면서 혹시 김 씨의 고구마밭 그 장소에 어머니를 모실 것 아니냐고 되묻기에 깜짝 놀랐는데 어떻게 보지도 않는 그 장소를 누나가 꿈에서 확인하였는지 믿어지지가 않아요.”
“아마도 누나와 텔레파시가 서로 통했나 봅니다.”

나는 형제 간에 텔레파시가 서로 통하고 있어 누나가 어머니를 장사 지내게 될 정확한 지점을 꿈으로 확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3일쯤 지났을 때였다.

“이 형, 어머님께서 운명하셨습니다. 죄송하지만 내일 동생과 같이 장지로 한번 더 가주셨으면 합니다.”

슬픔에 싸인 그의 전화 목소리는 몹시 떨렸다.

“전 형, 걱정 마시오, 내 정성껏 도와 드리리다.”

나는 이틀간 연가를 내어 그의 동생과 함께 장지인 논산으로 내려갔다. 장례일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였고 오후 3시가 될 무렵 서울로부터 운반된 운구 행렬이 논산인 이곳 장지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장례식은 천주교식이었는데 장지를 돌아보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거들었다.

“여기에 이런 터가 아직 있었네.”
“저 산이 청룡이고 이 산은 백호일세.”
“토색이 아주 붉고 빛이 나는 걸 보니 길조일세.”

나는 아무 말 없이 하관할 광중의 깊이와 하관 시각을 3합인 길격에 맞추어 안장을 지휘하였다.

“젊은이 정말 고맙소, 내가 마지막 묻힐 이런 길지까지 잡아주시다니.”

전 경감의 부친도 만족하였는지 내 손을 덥석 잡으며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 터가 어르신 마음에 드시는지요”

나는 85세인 전 경감의 부친을 위로하며 다시 한번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저 산이 청룡이고, 이 산은 백호이니 이쪽은 내청룡 내백호가 되지요.”

노인은 어느새 내청룡 내백호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저기 흐르는 물은 길수(吉水)로서 이 무덤에 아주 유익한 기를 불어넣을 것입니다.”

무덤 앞에서 좌우로 원을 그리며 흐르는 개울물에 대해 길 방위에서 들어와 흉 방위로 빠져나간다는 소위 12포태법, 그리고 〈도선비기〉에서 명시하는 천강살까지 풍수를 묻는 사람들이 질문하는 대로 일일이 대답을 하자 아는지 모르는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정성을 다하여 오로지 적선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을 도와주었다.

장례가 끝나고 나서 이듬해 봄이 된 어느 날 전 경감이 내게 찾아왔다.

“이 형, 박사학위를 5개나 가지고 있는 고향 친구가 서울에 있는데, 그가 시골에 갔더니 서울에서 유명한 풍수를 데려다가 묘지를 잘 썼다고 소문이 나서 한번 보고 싶으니 이번 주말 시골 갈 기회에 나와 함께 내려가자고 하는데 그가 만약 어머님 묘지를 잘못 썼다고 트집 잡으면 어떻게 하지요”

갑자기 그의 엉뚱한 말에 나는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박사이거나 석사이거나 간에 내가 정성을 다해 도와준 것이고 그렇다고 전 형으로부터 어떤 대가를 받고 터를 정해준 것이 아니지 않소? 터라는 것은 일부러 흠 잡으려 들면 무엇이든 흠 잡힐 수도 있으니 그때는 전 형이 알아서 조치하면 될 것 아니오.”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사실 그는 박사학위를 5개나 취득하고 있다는 친구를 일부러 데려다 사후 감평하기로 약속해 놓고 내 뜻을 넌지시 떠보기 위한 계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가 그 어렵고 절박한 처지에 있을 때 내 나름대로 동료애를 발휘하고자 일부러 휴가를 내고 논산까지 내려가서 손수 정해준 부모 산소에 대하여 타인을 데려다 평가를 받는다는 말을 내게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들이 약속한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되어 나는 일찍 사무실에 출근하였다. 평소와 같이 사무실 문을 열자 전 경감이 나보다 먼저 내 사무실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형! 정말 고맙소.”
“뭐가요”

나는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박사라는 그 친구가 어머니 산소를 한참 돌아보면서 패철로 방위를 보더니 누가 잡은 터냐고 내게 묻기에 우리 직원이 잡았다고 하니까 정말 잘 잡은 터라면서 방위도 잘 맞고 형국이 아주 길격이라 하여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이제야 안심을 해도 되겠다는 말이다. 사실 그는 순경으로 경찰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총경이 되어 고향에서 경찰서장을 해보는 것이 그의 꿈이었으니 어머니 묘소가 만약 잘못되었다고 하였다면 그는 자기의 출세를 위해 어렵게 구한 어머니 묘소를 당장이라도 옮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후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6년 전 경정이 되었던 그가 고속으로 총경에 승진하여 꿈에도 그리던 충남 홍성경찰서 서장이 되었다. 정년을 2년여 남겨 두고 천신만고 끝에 얻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직이었다. 나는 그가 승진을 하거나 보직을 옮길 때마다 그에게 축전을 보내 축하해 주었고, 이제 그가 정년을 1년여 남겨 놓았을 초가을이 되었을 무렵 나 역시 경정으로 승진하여 서울 양천경찰서 수사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이른 아침 전 총경으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이 형, 그동안 안부 전화도 자주 못 드려 죄송스럽습니다. 그간 별고 없으시지요”
“저는 염려 덕분에 잘 있습니다만 서장님도 별고 없으시지요”

총경 승진을 한 후부터 지금까지 서로 연락이 없던 그가 갑자기 내게 전화하는 까닭이 의심스러웠다.

“이 형! 어젯밤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연세가 95세이시고 어머님 산소 옆에다 함께 모시기로 했지만 이 형이 한 번 더 도와주셔야겠습니다.”

그의 태도는 한마디로 뻔뻔스러웠다.

“10년 전 이미 아버님의 가묘를 만들어 놓지 않았습니까? 가묘를 해둔 그대로 모시면 될 것인데 공무에 바쁜 저가 일부러 논산까지 가야 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나는 극구 사양하였다. 그를 위해 끝까지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이제는 내게 없었다.

“안 됩니다. 최종적으로 이 형이 확인해야 되니 내일 아침 동생이 이 형을 찾아갈 것입니다.”
“그러지 마시고 다섯 개의 박사학위를 가졌다는 그 친구에게 부탁하던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사람 많이 있으니 그들을 찾아 새로 이장하던지 가묘를 새로 고치시든지 전 형 생각대로 하시고 더 이상 내게 부탁 마시오.”

나는 매정하게 먼저 전화를 끊었다.

이튿날 아침 사무실에 출근하자 그의 동생 전 씨가 미리 찾아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일이시오? 전 형과 전화하였는데요”

나는 그의 동생을 쌀쌀하게 냉대하였다.

“과장님, 저의 아버님이 어젯밤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님 산소를 잘 모신 덕택에 우리 7남매가 모두 잘 되었습니다. 형도 총경이 되어 고향인 홍성경찰서에서 서장을 하고 있고 그때 질병을 앓던 동생도 건강이 회복되었으며 결혼 5년 동안 자식이 없어 이혼하려던 셋째 동생도 재결합하여 아들 하나 낳아 잘살고 있으니 이 모두가 어머님 산소를 잘 선택해 준 과장님의 덕택이라면서 집안에서는 어떻게든 이 과장님을 한번 더 모셔오라고 하니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는 내게 애원하였다.

“집안일이 잘 풀렸다니 반갑군요. 그렇지만 이 자리는 워낙 바쁜 곳이라서 자리를 비울 수가 없네요.”

나는 하루쯤은 연가를 낼 수도 있었지만 바쁜 업무를 핑계 삼아 거절하였다.

“과장님 너무하십니다. 아버님이 어제 막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그리 박절하게 대하십니까”

그는 눈물을 흘리며 내게 애원하였다. 눈물에 약한 것이 인간이라 하였던가!

“정 그러시면 서장님께 휴가 신청을 해서 장례식 당일 날 한번 내려가지요.”

나는 그의 눈물을 보자 내 마음이 동하여 그만 승낙을 하고 말았다.

“과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럼 모레 아침 특급열차 왕복표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는 흐느껴 울던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내게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고는 내방을 빠져나갔다. 이틀 후 장지에 도착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현직 경찰서장의 부친상을 당해서 그런지 아니면 7형제 각자의 사회적 지위에서 연유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모친상을 당했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문상객들이 장지에 모여들었다.

“이 형,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전 서장은 내게 정중히 사과하였다.

“처음 시작을 제가 했으니 마무리도 제가 해드려야지요.”

나는 미리 설치한 가묘의 흙을 걷어내고 10년 전 처음 마련할 때의 위치에서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모친의 묘소 왼쪽에다 부친의 유해를 안장하였다.

10년 만에 새로 만난 형제들은 모두가 성공하여 잘살고 있었고 홍성경찰서 서장인 전 씨도 어머니가 돌아갔을 때와는 달리 활력이 넘쳐보였다.

이정암(한국도선풍수명리학회 회장)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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