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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유감
박상병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본지 편집이사 | 승인 2015.01.12 12:24|(178호)

헌법재판소(헌재)가 지난 달 19일, 통합진보당(통진당)의 해산을 결정했다. 동시에 통진당 소속 지역구 및 비례대표 의원 5명의 의원직도 모두 박탈했다. 중앙선관위도 비례대표 지방의원 6명에 대해 의원직을 박탈했다. 헌재의 해산 결정으로 통진당은 정당등록이 말소되고 자산은 국고로 환수된다. 통합진보당이라는 정당 자체가 우리 헌정사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헌재가 특정 정당에 대해 해산 결정을 내린 것은 헌재 출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뒤질세라 검찰도 이정희 전 대표를 비롯해 통진당 주요 인사들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자칫 공안당국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통진당 주요 당원들까지 국가보안법 앞에 노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통진당이 거의 초토화가 되는 분위기다. 당분간 공안정국은 지속될 것이고 그 바람에 ‘정윤회 문건 파동’은 사실상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씁쓰레한 뒷맛이 진하게 남는다.

헌재는 법리로 말해야…

헌법재판소는 헌법 수호의 마지막 보루다. 엄정한 법률적 기반 위에서 불편부당함 없이 공정하게 헌법체제를 수호해야 할 상징적인 헌법기관이다. 그러나 헌재의 이번 통진당 해산 결정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헌재의 공정성에 공감했을까 묻고 싶은 심정이다. 통진당을 지지하느냐, 아니냐의 정파적 접근은 그만두더라도 색깔론에 매몰돼 있으면 법치든 뭐든 진실에 눈멀기 마련이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에 대한 법적 근거가 과연 정당한가, 헌재가 과잉 해석한 오류는 없는가’에 대해 묻고 싶다. 따라서 헌재의 결정이 심각할 정도로 편향됐거나 또는 정치적 결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먼저 헌재는 헌법재판소법 제2조에서 (1)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 여부 심판, (2) 탄핵의 심판, (3) 정당의 해산심판, (4) 국가기관 상호 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및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의 권한쟁의에 관한 심판, (5) 헌법소원에 관한 심판 등 이렇게 5개 항을 관장하고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통진당 해산심판 청구는 세 번째 적시한 내용 그대로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직을 유지시킬 것인가, 아니면 박탈할 것인가 하는 ‘국회의원 자격심사’는 헌재가 관장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자격심사는 어디서 하는 걸까. 헌법 제64조 제2항에 “국회는 의원의 자격을 심사하며, 의원을 징계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이어 제3항에서는 국회의원을 제명할 때 국회의원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렇듯 국회의원의 자격심사는 국회의 몫이다. 그럼에도 헌재가 관련 법에도 없는, 아니 헌법규정까지 어기면서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대한 자격심사도 너무 앞섰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192조 제4항에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또는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이 소속정당의 합당·해산 또는 제명 외의 사유로 당적을 이탈·변경하거나 2 이상의 당적을 가지고 있는 때에는 국회법 제136조(퇴직) 또는 지방자치법 제78조(의원의 퇴직)의 규정에 불구하고 퇴직된다”고 적시돼 있다. 간략히 말하면 정당이 합당하거나 해산하더라도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퇴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라는 원칙을 재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헌재와 중앙선관위는 바로 이 조항을 근거로 비례대표 의원의 직을 박탈하였다. 도대체 이 조항을 어떻게 해석해야만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논리는 참으로 기묘하다. 공직선거법 제192조 제4항에 적시한 정당의 해산은 ‘자발적’ 해산일 경우를 말하는 것이고, ‘강제적’ 해산일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법규 어디를 봐도 정당해산을 자발적 또는 강제적 해산으로 구분한 내용이 없다. 그럼에도 헌재와 중앙선관위는 국회의원직이 달려있는 문제까지 유추와 해석을 근거로 그 직을 박탈한 셈이다. 이쯤되면 과잉해석이요,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닐까.

1987년 체제의 비극

헌재의 결정은 불복의 수단이 없는 사법적인 최종판단이다. 그래서 헌재의 이번 통진당 해산심판 결정은 단순히 특정 정당의 해산 문제를 넘어서 ‘1987년 체제’의 깊이와 넓이를 읽을 수 있는 시대적 좌표를 보여준다는 의미가 컸다. 1987년 민주화로 개정된 현행 헌법은 사회적 약자의 헌법적 권리를 구제하고 소수 정당의 지위를 확고히 해서 정당정치의 자유로운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헌법재판소를 설치토록 한 것이다. 헌재를 ‘인권과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헌재의 탄생은 이런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이렇게 탄생한 헌재가 그로부터 30여년 만에 통진당 해산심판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맡게 된 셈이다.

그러나 헌재는 진보당 해산 결정에 이어 소속정당의 의원직까지 박탈하는 엄청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헌재 결정은 1987년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민주주의적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민주주의 수준이나 그 이념적 좌표, 그리고 정치의식의 사회적 성숙도는 거의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그렇지 않다면 1987년 체제의 상징격인 헌재가 이런 식으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5공화국 정권이라면 능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군사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정당을 탄압했던 5공의 역사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의 박근혜 정부에서 굳이 정당해산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국민의 손으로 얼마든지 정치권에서 퇴출시킬 수 있었을 뿐더러 또 그렇게 될 것으로 봤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크게 남는다.

통진당을 지지하느냐는 어리석은 질문은 그만 두도록 하자. 헌재의 결정을 법리적으로, 그리고 민주주의적 발전론 차원에서 짚어보는 것이 어찌 통진당 지지 여부와 관계가 있겠는가. 통진당이 아니라 ‘보수당’이라도 법리와 정치적 해석은 예외가 될 수 없다. 1987년 체제의 성과가 헌재에 있듯이 이제는 그 비극도 헌재가 담보하고 있다. 빨리 개헌문제가 공론화가 돼야 한다. 시대에 맞는 헌법의 옷을 입히지 못하면 1987년 체제는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일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1987년 체제의 비극을 빨리 끝내야 한다.

박상병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본지 편집이사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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