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의 향기 속에 가을 정취를 만끽하다

9월은 ‘독서의 달’, 10월은 ‘문화의 달’이다. 가을을 흔히 ‘독서의 계절’이라고 부르니까 9월을 독서의 달로 정한 것은 당연한 이치겠지만, 10월이 문화의 달이 된 것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독자가 많을 법하다.

정부는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의 제정과 공포가 이뤄진 것을 계기로 그해부터 매년 10월 20일을 ‘문화의 날’로 지정해 기념해 왔다. 문화의 날이 들어 있는 10월도 자연히 문화의 달이 되었다. 이후 “더 많은 국민이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문화의 날이 가급적 공휴일이면 좋겠다”라는 여론을 수용해 2006년부터는 10월 셋째 주 토요일(2014년 10월 18일)을 문화의 날로 삼고 있다. 그리고 올해 10월은 1972년부터 시작해 43번째 맞은 문화의 달이다.

유난히 가슴 아픈 사건과 사고가 많았던 봄, 여름을 차례로 지나 어느덧 가을이 제법 깊었다. 이제 석 달만 보내면 해가 바뀐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채우고, 넘친 부분이 있으면 왜 그랬는지 따져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수준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문화의 달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는 문화예술 행사 속에서 가을 정취를 흠뻑 느껴보는 건 어떨까.


▲ 전국이 화창한 날씨를 보인 주말을 맞아 과천 서울대공원을 찾은 행락객들이 북적이고 있다.

길 위에서 여유와 낭만을 되찾다

문화의 달 10월은 ‘관광주간’으로 시작한다. 9월 25일 출발한 가을 관광주간이 10월 5일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침 개천절(3일)과 주말(4, 5일)이 이어진 황금연휴가 끼어 있다.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부쩍 높고 파래진 가을 하늘을 마음껏 느껴 보자.

가을 관광주간은 지난 5월의 봄 관광주간에 비해 할인 참여 업체 숫자가 1,671개에서 3,700여 개로 두 배 이상 늘었고, 할인 폭도 훨씬 더 커졌다. 코레일은 관광주간 기간에 주중 상·하행 열차 11편을 20%, 관광열차를 30% 각각 깎아준다. SK에너지는 관광지 인근 주유소 70개소에서 주유비를 2,000원 할인한다.

한화리조트·부산롯데호텔·부산파크하얏트·거제삼성호텔 등 180여 곳의 호텔과 리조트는 숙박비의 10∼50%, 전국 16개 베니키아 체인 호텔은 5∼40%, 100여 개의 굿스테이 가맹 모텔은 20%를 각각 깎아준다.

지역 추천 맛집 547개소와 남한산성 백숙 거리·포항 과메기물회 거리·강릉 초당두부 거리 등 음식테마거리 음식점 160개소와 농가 맛집을 모두 더한 전국 1,607곳도 할인 행사에 동참한다. 지역별로 시티투어 요금도 최고 절반까지 깎아주고, 수원화성 등 주요 관광지와 박물관은 무료로 개방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전국 17개 시도의 지역별 대표 프로그램도 선정했다. 천주교 성지순례(충북), 백제문화제(충남), 중문골프장 달빛걷기(제주), 우포늪 바로알기(경남), 태화강 생태탐방(울산), 약령시 한방문화축제(대구) 등 풍성한 프로그램이 관광객의 발길을 기다린다. 자세한 업체별 할인율과 할인 쿠폰, 지역별 대표 프로그램과 주요 여행 코스 등 정보는 관광주간 홈페이지(fall.visitkorea.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2010년 서울세계무용축제 프레스 리허설이 진행되었다.

글자를 넘어선 한국문화의 정수, 한글

올가을 문화계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 ‘한글’이다. 먼저 10월 9일 제568돌 한글날에 맞춰 국립한글박물관(관장 문영호)이 문을 연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옆에 들어서는 한글박물관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전시장 면적이 4,200㎡(약 1,270평)에 이른다. 한글이 없던 시대의 문자부터 한글의 미래까지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세계 검색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한 검색 포털사이트 구글과 손을 잡았다. 구글은 한국 어린이는 물론 외국인들이 짧은 시간 동안 한글을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박물관 측에 기부했다. 이 프로그램은 한글의 기본 원리를 온라인으로 쉽게 배울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지난 2013년 10월, 한글박물관 건립 현장을 찾은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600년 전 모든 백성에게 한글을 알리고 싶어한 세종대왕의 꿈을 이제 구글이 이어받아 전 세계인이 한글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세종학당재단(이사장 송향근)은 한글날을 전후해 7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서울에서 ‘한국어·한국문화 체험 한마당’ 행사를 연다. 세계 54개국 130곳의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 중 우수 학습자 124명을 초청해 한글의 아름다움과 한국문화의 멋을 나눈다. 참가자들은 한국 가요, K팝 댄스, 국악, 태권도 중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접할 기회를 갖는다. 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한국민속촌, 수원화성 등 한국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숨쉬는 장소를 방문하게 된다.


▲ 2009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개막작인 야이르 바르디 이스라엘 수잔 델랄센터 감독 제작, 바락 마샬 안무의 <몽거> 프레스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다.

세계 공연예술의 최신 경향과 만나다

서울에서는 9월 말에 개막한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와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가 나란히 10월 19일까지 펼쳐지면서 다양한 장르의 공연에 목이 마른 팬들의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먼저 서울 대학로 등지에서 열리는 SPAF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수준 높은 정통 연극과 무용으로 관객들을 만난다.

7개국 19개 공연단체의 엄선된 25개 작품을 공연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SIDance는 세계 각국에서 온 62개 팀이 예술의전당, 강동아트센터, 서강대 메리홀 등을 무대 삼아 총 59개의 공연을 선보인다.

프랑스의 마기 마랭과 필립 장티 등 현대무용을 주도하는 안무가들이 무대에 올라 가을 녘을 아름다운 몸짓으로 수놓는다. 아프리카 가나와 모잠비크, 남미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무용수들이 약 5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며 국내 무용수들과 공동으로 창작한 작품을 선보이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10월 7일 개막하는 서울아트마켓은 공연예술 유통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좋은 기회가 될 전망이다. 세계 공연예술 유통의 최신 경향을 파악할 수 있음은 물론 주목할만한 국내 우수 공연들의 쇼케이스 무대도 만날 수 있어 기대를 모은다. SPAF와 SIDance, 그리고 서울아트마켓에 관한 구체적 정보는 공식 홈페이지(www.culture.go.kr/k-artfestival)에서 확인할 수 있다.


▲ 2009년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개막작인 야이르 바르디 이스라엘 수잔 델랄센터 감독 제작, 바락 마샬 안무의 <몽거> 프레스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대표’영화제와 비엔날레 속으로

1996년 이후 한국의 10월은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올해로 19회째를 맞는 BIFF가 2일 개막해 11일까지 10일 동안 부산시내 주요 7개 극장 33개 상영관에서 펼쳐진다. 세계 79개국에서 총 314편의 작품이 초청돼 관객과 만난다. 이 가운데 전 세계 최초 상영작만 134편에 이른다.

세계적인 영화 거장들의 신작이나 화제작을 모아놓은 갈라 프리젠테이션 섹션은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작품 <화장>을 비롯해 허안화 감독의 <황금시대>, 장이머우 감독의 <5일의 마중>, 그리고 조지아 출신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대통령〉을 차례로 소개한다.

영화제의 꽃에 해당하는 스타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최근 김태용 감독과 결혼한 중화권 톱 여배우 탕웨이와 일본이 낳은 세계적 배우 와타나베 켄이 나란히 BIFF를 찾는다. 특히 와타나베 켄은 한국 여배우 문소리와 함께 개막식 사회자로 나선다.

이밖에 배우 안성기, 황치우셩, 아사노 타다노부, 테레사 팔머, 장첸과 감독 천커신, 이시이 유야, 유키사다 이사오, 베르트랑 보넬로 등이 레드카펫을 뜨겁게 달군다.

10월의 부산에 BIFF가 있다면 광주에 가서는 비엔날레를 봐야 한다. ‘터전을 붙태우라’라는 정열적 주제를 내건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11월 9일까지 이어지면서 국내외 미술 애호가들의 시각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최고의 화제작은 제레미 델러의 ‘불타는 건물에서 탈출하는 문어’다. 가로 29.2m, 세로 15.8m 규모의 대작이다. 광주의 역사와 현재를 고려해 선택한 문어의 이미지는 식민권력의 장악력을 상징한다.

엘 우티모 그리토의 ‘미장센’도 6,606㎡(약 2,000평) 크기를 자랑한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5개 전시실을 마치 화재가 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붉은색 벽지로 장식했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제시카 모건은 2002년부터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며 동서양의 조화와 다양성, 융화 등 다양한 메시지를 세계 미술계에 던진 인물이다.

미술 전문가들이 권하는 전시 관람 포인트는 ‘불’과 ‘집’이다. 터전(집)을 불태우는 행위는 박제화된 관습과 규범, 체제에 대한 저항을 뜻한다. 또 새로운 집의 구축을 위한 능동적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주최 측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의 승화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하니 기대를 걸고 찾아도 좋을 듯하다.


▲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김태훈 세계일보 문화부 기자 mjk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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