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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핀 딜레마’로 흔들리는 브레튼우즈 체제…그 이후는?
한상춘 | 승인 2014.08.01 16:00|(173호)

 

 오바마 정부가 집권 2기를 맞아 남아 있는 현안 가운데 대외정책에서 금융위기 극복으로 흔들렸던 달러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를 회복하는 일이 최대 난제로 꼽히고 있다. 금융위기 직후 중국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준비통화인 특별인출권(SDR)을 ‘수퍼 통화’로 도입하자는 제안에 따라 세계기축통화 논쟁이 거세진 적이 있었다.

 그 후 잠잠하던 이 논쟁이 2011년 9월 이후 선진국, 신흥국 가릴 것 없이 양적완화 정책에 속속 동참하면서 환율전쟁으로까지 가세돼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돼 왔다. 최근 들어서는 일본에 이어 ‘트리핀 딜레마’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던 중국이 무역수지 악화와 미국 국채매입 축소로 브레튼우즈 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런 우려대로 제2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될 경우 아직까지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는 확실한 제2의 중심통화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부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브레튼우즈 체제하의 미국 달러화처럼 확실한 중심통화가 구축돼야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크다.

 향후 제2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될 경우 기축통화 속성상 과도기 단계에서 ‘중심통화 혼돈(chaos of key currency)’ 시대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최근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글로벌 환율전쟁과 중심통화 혼돈시대에 예상되는 불안정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국제통화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도 차가 있기는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국제통화질서는 달러화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지속돼 왔다. 브레튼우즈 체제란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창립 이후 미국의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에서는 미국의 달러화만이 금과 일정한 교환비율을 유지하고 각국의 통화는 기축통화와의 기준 환율을 설정·유지함으로써 환율을 안정시키고 국제무역을 증진시켰다.

 제2 브레튼우즈 체제란, 1971년 닉슨의 금태환 정지선언 이후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를 골간으로 미국과 아시아 국가 간의 묵시적인 합의하에 유지해 온 환율제를 의미한다. 미국이 자국의희생을 바탕으로 이 체제를 유지해 온 것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을 도모하고 공산주의의 세력 확산을 방지하고자 했던 숨은 의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국제금융 역사에서 제2 브레튼우즈 체제는 이런 미국의 의도를 충분히 달성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일부에서 제2 브레튼우즈 체제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폐허가 된 유럽의 부흥과 공산주의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미국이 지원했던 ‘마셜 플랜(Marshall plan)’의 또 다른 형태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그 후 제2 브레튼우즈 체제에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 초이다. 아시아 통화에 대한 의도적인 달러화 약세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위험수준에 달했다. 당시 레이건 정부는 여러 방안을 동원했으나 결국은 선진국 간의 미 달러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플라자 합의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제2 브레튼우즈 체제가 균열조짐에서 벗어나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데에는 1995년 4월 달러화 가치를 부양하기 위한 역(逆)플라자 합의와 아시아 외환위기도 큰 역할을 했다. 역플라자 합의에 따라 미 달러화 가치가 부양되는 과정에서 외환위기로 아시아 통화가치가 환투기로 폭락하면서 ‘강한 달러-약한 아시아 통화’ 간의 구도가 재현됐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미국의 경상적자가 다시 불거지면서 1980년대 초 상황이 재연됐다. 특히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쌓인 쌍둥이 적자로 달러화 가치가 하락할 경우 더 이상 기축통화 역할을 당하지 못하지 않느냐는 시각도 제기돼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달러 가치는 이번 위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통화에 대해 약세를 보여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화 중심의 제2 브레튼우즈 체제가 흔들리는 것은 크게 보면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무엇보다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누적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점으로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금융위기 후유증에 따른 ‘낙인효과(stigma effect)’라 볼 수 있다.

 미국 이외 다른 국가들의 탈(脫)달러화 조짐도 원인이다. 세계경제 중심권이 이동됨에 따라 현 국제통화제도가 안고 있었던 문제점들이 갈수록 가시화되고 있다. 즉, △중심통화의 유동성과 신뢰성 간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 △중심통화국의 과도한 특권 △글로벌 불균형 조정메커니즘 부재 △과다 외환보유에 따른 부담 등의 문제가 노출되면서 탈(脫)달러화 조짐이 빨라지는 추세다.

 미국이 처한 여건과 최근 보이는 입장을 감안하면 달러 약세는 오바마 정부 남은 기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달러 약세가 진행될수록 미국이외의 국가에서는 달러캐리자금의 유입으로 이들 국가의 가치는 절상되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미국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달러 약세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할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들이 의지와 관계없이 절상되는 자국통화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외형상으로 달러 약세를 수용하는 일본은 엔화 가치가 80엔 밑으로 떨어져 ‘엔고 불황’이 현실화되자 잇따른 자산매입정책으로 맞대응하는 쪽으로 통화와 외환정책이 바뀌고 있다.

 중국도 위안화 절상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오다가, 올해 2월 이후 수출이 부진하자 미국의 위안화 평가절상 요구에 위안화 절하로 맞대응하는 자세로 전환됐다. 정도 차는 있지만 한국 등 다른 국가들도 자국통화 가치가 절상되는 것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지는 못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글로벌 불균형과 환율전쟁을 줄이기 위해 논의돼 왔던 안정책들이 다시 거론되고 있으나 뚜렷한 진전은 없는 상태이다. 2010년 이후 적자만 규제하던 종전과 달리 흑자에 대해서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본질상 흑자국들의 반발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달러화 중심의 현 국제통화제도는 갈수록 근본적인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어 새로운 중심통화 논의를 촉진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제통화 제도는 1976년 킹스턴 회담 이후 시장의 자연스러운 힘에 의해 형성된 것으로서 국가 간의 조약이나 국제협약이 뒷받침되지 않아 ‘없는 시스템(non-system) 혹은 젤리형 시스템(jelly system)’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그 결과 킹스턴 회담 이후 달러화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는 이전보다 느슨하고 불안한 형태로 지금까지 유지돼 왔다.

 현재 국제통화 제도는 실질적으로 시스템이 아니므로(non-system) 중심통화의 신뢰성이 크게 저하되더라도 이를 조정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 미국은 경기활성화 등을 위해서라도 대외불균형을 시정하려고 하지만 경상수지 흑자국은 이를 조정할 유인이 별로 없어 글로벌 환율전쟁이 수시로 발생했다.

 이 때문에 국제통화 제도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대부분 학자들은 최소한 불균형 조정을 강제할 수 있는 ‘국가 간 조약(예를 들어 1980년대 중반 플라자 협정)’이 있어야 한다는 시각이다.
 

한상춘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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