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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신력의 몰락
박상병 | 승인 2014.08.01 11:41|(173호)


 명색이 반듯한 정부인 데도 어쩌면 이럴 수가 있는지 답답하다 못해 분통이 터진다. 국무총리가 두 명이나 중도 탈락하고 여기에 더해서 부총리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해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회있을 때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역설하고 ‘국가혁신’을 강조하지만 이 또한 공감이 없다. 박 대통령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도, 그것이 실행되리라고 믿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말뿐이다. 이제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반 정도인 데도 벌써부터 국정위기의 전조가 나타나고, 레임덕의 초기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닥칠 국민의 고통소리가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그들이 적폐였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변사체가 발견됐다. 6월 12일 발견된 시신이 지난달 21일 유병언으로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그 때까지도 검찰은 유병언의 꼬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6개월짜리 체포영장을 재발급 받은 것도 이때였다. 이미 40일 전에 검찰 수사관들이 압수수색을 했던 그 별장 인근에서 변사체가 발견됐음에도 검찰이나 경찰 어느 쪽도 기본적인 신원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그동안 유령을 찾은 것인지, 아니면 엉뚱한 사람이 꼬리를 잡고 있었던 것인지 검찰과 경찰의 요란했던 유병언 추적 과정이 우습다 못해 민망하고 부끄럽다.

 우리는 유병언 죽음을 통해 검찰과 경찰의 민낯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이 몇 차례나 조속한 검거를 지시하고 각 방송사마다 생생하게 추적과 도피 과정을 보도하고 있었으며 국민의 관심도 하루빨리 검거되기를 얼마나 기대했던가.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전혀 딴판이었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 공권력의 무능과 무기력의 밑바닥을 그대로 보여줬다. 거의 1만 명에 가까운 공권력이 동원돼 유병언을 찾아 헤멨다. 경찰은 검문검색을 철저히 하고 있으며 도피 경로를 따라 샅샅이 수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두 허언이 되고 말았다. 검경이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던 순천 송치재 인근의 별장에서 불과 2.5㎞ 떨어진 야산에서 유병언 시신이 발견됐으며, 발견 당시 그가 누구인지 검찰이나 경찰 모두 별 관심이 없었다. 명품 옷에 명품 신발, 금니가 10개나 있었지만 관심 밖이었다. 단순 노숙자의 변사체로 봤다는 것이다. 또한 유병언이 들고 있던 가방에는 세모 계열사 제품인 스쿠알렌이 있었고 그 가방에는 ‘꿈같은 사랑’이라는 유병언의 저서 제목이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당시 그가 누군지 제대로 된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시신 수습의 기본도 지키지 않았다. 일부 유골과 머리카락이 현장에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단순 변사자로 처리됐던 시체가 유병언이었다는 보고를 뒤늦게 받은 뒤에서야 경찰도 깜짝 놀랐다며 "초동 수사가 미흡했다"고 머리를 숙였다. 백번 양보해서 단순 변사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뿐이 아니다. 검찰과 경찰의 해묵은 갈등과 반목은 유병언 추적과정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결정적인 체포 기회를 수차례나 놓친 것은 검찰과 경찰의 정보공유 실패가 결정적이었다. 유병언이 금수원을 빠져나가 전남 순천까지 갈 때도 경찰은 이렇다 할 정보를 얻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주먹구구식의 검문검색에 다름 아니었다. 심지어 송치재 인근의 별장에서 돈이 발견됐는지, 별장을 언제 급습하는지 경찰은 알 리가 없었다. 당연히 경찰의 협조도 구하지 않았다. 물론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유병언의 유전자 감식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유류품에서 무엇이 나왔는지도 검찰은 몰랐다. 변사체가 유병언이라는 국과수의 통보가 있고 나서야 검찰도 인지를 했다면 다른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말만 검경합동이지 공권력끼리도 불통이요 불신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공신력이 있겠는가.

온갖 억측과 각종 설이 난무하는 사회

 유병언의 죽음은 공신력이 무너진 사회에서 여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검찰과 경찰이 브리핑을 해도 여론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공적인 브리핑이 그대로 사실로 자리를 잡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의혹을 더 양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수사당국의 발표가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경찰이 변사체와 관련해 처음에는 신발이 나란히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현장 사진을 보면 그게 아니었다. 그리고 구체적인 확인도 없이 경찰은 처음부터 자살 쪽으로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자살보다는 타살됐다는 의혹을 더 강하게 제기했다. 경찰의 발표가 오히려 더 큰 의혹을 양산한 셈이다. 구체적인 확인도 없이 경찰이 왜 미리 단정하는 듯한 결론을 낸 것일까. 경찰 스스로 의혹을 자초한 셈이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배 안에서는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방송을 했다. 배 안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방송대로 따랐던 아이들은 모두 바닷물 속에 가라앉아 버렸다. 되돌아보니 그런 공신력을 믿지 않았어야 했다. 이쯤되면 세월호 같은 배를 두 번 다시 탈 이유가 없다. 이미 세월호의 공신력은 몰락한 것이다. 동시에 세월호 같은 배도 운항을 중단하는 것이 옳다. 더 큰 참사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 주변의 공신력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고 따를까.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김기춘 비서실장의 사과, 검찰과 경찰의 발표 등이 갖는 공적 영역은 국가와 사회를 유지하는 신뢰의 기초가 된다. 그런 기초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면 공신력은 이미 땅에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하면 어느 국민이 그 말을 따를까. 아마 너도나도 모두 일어나서 뛰어 내려야 한다는 말로 들을 것이다.

 무작정 정부를 비판하고 검찰과 경찰의 수고마저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인사참사를 거치면서도 청와대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세월호 참사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아니 초기의 여러 다짐들에 대한 배신감마저 밀려든다. 유병언 죽음을 통해 사정당국의 공신력은 한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 곳곳에서 온갖 억측과 각종 설과 시나리오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을지 그것이 신기하고 궁금할 따름이다. 공신력의 밑바닥을 보는 느낌은 절망보다 분노가 더 커 보인다.

박상병  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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