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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중심에서 만난 국정원과 민주당
정경NEWS | 승인 2013.10.09 10:00|(162호)



   

▲ 박상병
시사평론가

스포츠 경기도 마찬가지이다. 상대가 실력이 있어야 재미도 있고 관중들의 이목을 끈다. 아무리 명문 스포츠 팀이라 하더라도 상대의 실력이 수준 이하라면 그 게임은 하나마나이다. 재미는커녕 오히려 짜증만 나고 망신만 당하고 말 것이다.

이와는 차원이 다르고 대결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정치, 특히 정당정치(선거정치)는 곧잘 스포츠에 비교되곤 한다. 일정한 규칙이 있고 상대가 있으면 또 국민여론을 놓고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정국을 보면 여야가 싸우는 수준이 말 그대로 수준 이하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19대 국회도 거의 ‘막장’ 수준이다. 한국 정치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우리정치를 ‘막장’이라고 부르는 것은 절대 금기요, ‘제 얼굴에 침 뱉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불과 한 세대 만에 우리 국민이 일궈낸 민주주의의 성과가 크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우리처럼 민주주의적 발전을 이뤄낸 나라가 없다. 그럼에도 주저 없이 ‘막장’ 얘기를 하는 것은 지금 여야가 벌이는 정치의 수준은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요, 역사를 거꾸로 뒤집으려는 무지와 오만, 증오의 난장판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치가 아니라 삼류 패거리 싸움판이라 비판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부끄럽고 참담할 따름이다.
 

국정원, 정치의 중심에 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북한 변수를 제외한다면 내치와 관련해서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첫째가 인사 문제를 둘러싼 난맥상이요, 둘째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둘러싼 NLL(북방한계선) 포기 논란과 이른바 ‘사초 실종’ 문제였다. 셋째로는 최근의 국정원 정치 개입을 둘러싼 국기문란 의혹 사건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6개월 동안 여야는 이 문제를 놓고 사실상 정면 대결을 펼쳐왔다. 그런데 묘한 것은 NLL 포기 논란을 비롯한 사초 실종 문제와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 사건 모두 국정원이 개입돼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여야의 정치공방 또는 ‘막장 정치’의 한복판에는 국정원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비극의 근원이다. 만약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 조직적으로 개입을 했고, NLL 회의록을 불법적으로 새누리당에 흘려 대선에 유리하도록 일부 왜곡된 내용을 유포토록 했으며 대선이 끝나자 이 사실이 들통 날까봐 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발언(국정원과 새누리당이 짠 시나리오였다는 내용)을 꼬투리로 NLL 논란을 부추겼다면 이는 엄청난 사건이다.
 
박근혜 정부 5년을 제대로 담보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범죄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관련 의혹을 완강히 거부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지난 대선 승리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 또한 만약이다. 법과 규정에 따라 국정원 직원들 개인이 알아서 합법적인 댓글을 달았을 뿐인데 야당이 ‘대선 불복’을 위해 정치공세를 벌이는 것이며,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는 발언을 했고 그것이 들통 날까봐 당시의 회의록을 없애버렸다면 이는 더 큰 문제다.

정말 그렇다면 말 그대로 영토주권 포기이며, 친노세력의 종말을 고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결정타를 입는 쪽은 정치생명의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이다. 게다가 국정원이 그 논란의 중심부에 있기 때문에 결정타를 입는 쪽은 ‘국기문란’이라는 대역죄를 면할 수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여야가 사활을 걸고 싸울 때는 결론이 명쾌하게 나지 않는 법이다. 특히 밀리는 쪽에서 국면 전환을 위해 끊임없이 물타기를 시도할뿐더러 여론을 두 쪽으로 갈라내기 위해 온갖 음모와 거친 말들을 쏟아내기 때문이다.

그러면 상대편인들 구경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같이 공방전을 펼치며 삼류 패거리 싸움판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지금이 딱 이런 형국이다. 어느 한 쪽의 완승이나 완패가 없는, 무한 투쟁의 소모전이 그야말로 막장 수준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야당은 강해야 한다
국정원이 정쟁의 중심에 있다는 것, 그것은 새누리당에게 여간 부담스런 일이 아니다.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한 편이 돼서 국정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은 국정원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 주장을 반복적으로 강조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국민이 볼 때는 믿거나 말거나이다. 게다가 국정원이 정치의 중심에 서 있을 경우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과거 군부독재의 망령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시대의 역행과 정치의 후퇴 그리고 공작정치의 부활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 할 새누리당이 결코 반길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민주당도 그리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국정원의 노림수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여권으로부터도 무시당하는 수준이라면 국정원으로부터도 난타를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국가 정보기관과 싸우는 제1 야당, 그 끝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아 보인다.
 
정국 주도권을 빼앗긴 채 뒤따라 다니다가 막판에 잘해봐야 서 푼짜리 명분만 쥘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천막 당사에서 국정원 개혁, 남재준 국정원장 해임을 외치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단독회담을 요구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국정원을 중립화시키기는커녕 국정원을 혼내달라고 외치는 그 목소리가 마치 ‘민주주의의 비명’처럼 들리는 것이다. 제대로 된 국정원 개혁은 민주당이 강할 때 가능하다. 힘없는 야당은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오죽했으면 박 대통령도 ‘국정원 셀프 개혁’을 주문했겠는가.

건강한 권력이 견제와 균형에서 비롯되듯이 민주주의는 집권세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는 야당의 존재가 특히 중요하다. 무력화된 야당은 독재정치를 발호케 한다. 견제와 균형의 힘이 무너진 곳에서 지배권력은 괴물이 되기 마련이다.
 
야당의 존재가, 아니 강력한 야당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민주당을 편들고자 하
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건강한 권력관계를 위해서라도 지금의 민주당, 이대로는 안 된다. 지금보다 몇 배 더 강력해야 한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단독회담을 제의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국정원도 정치의 중심부까지 넘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경NEWS  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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