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9월 5~6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통해 선진국과 신흥국을 엮는 ‘가교의 리더십’을 발휘, 다자외교 무대에서도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는 평가다. 또 쯔엉 떤 상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이뤄진 베트남 국빈방문에서는 우리와 밀접한 동남아지역 국가를 상대로 한 본격적인 ‘세일즈 외교’를 선보였다. 박 대통령은 베트남 방문에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나 원전 등 인프라 사업 협력 약속을 통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졌다. <편집자주>

▲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회원국 및 국제기구·초청국 대표들이 9월 6일 오후(현지시각) 러시아 콘스탄틴 궁전 앞에서 단체 기념촬영에 앞서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공공누리 제공)

지난 9월 4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5∼6일 열린 G20 정상회의를 포함해 3박4일간의 일정을 숨 가쁘게 소화했다. 특히 한반도 주변 4강 중 세 번째인 이번 러시아 방문은 박 대통령의 첫 다자외교 시험대였다. 그간 두 차례 해외 방문이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외교행보였다면 여러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이번 러시아 방문을 통해 본격적으로 국제 외교무대에 등장한 자리다.

이번 순방이 다자외교 형식으로 이뤄진 만큼 여러 나라 정상들과 별도로 접촉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박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 첫날인 5일 첫 일정으로 엔리코 레타 이탈리아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것을 시작으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4개국 정상과 잇달아 정상회담을 가졌다.

특히 같은 여성 지도자인 메르켈 총리와는 지난 13년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오다 이번에 처음으로 양측이 모두 국가 최고지도자의 위치에 올라 이뤄진 만남이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독일의 반성 노력과 비교하면서,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일본의 태도를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또 의장국 역할을 맡은 푸틴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협력방안에 대해 논의하면서 올해 안에 있을 푸틴 대통령의 방한을 통해 결실을 맺기로 약속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는 별도의 만남 없이 5일 공식 업무만찬 전 리셉션장에서 잠시 조우해 인사를 나눈 정도의 접촉만 이뤄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이틀간의 회의 기간 동안 모두 29명의 정상 및 국제기구 수장들과 대화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두 차례 박 대통령에게 먼저 찾아와 대화를 나눴다. 또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는 잠시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등 출구전략과 관련,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놓여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감안한 적절한 해법을 제시해 반영시키는 등 일종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향후 출구전략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응한 통화당국 간 협력 강화 등 추가공조 필요성을 적극 제기한 결과 ‘출구전략이 세계경제의 성장과 금융안정에 기여할 수 있도록 파급 영향을 관리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는 합의를 도출한 것은 의미가 크다.

지역금융안전망(RFA)의 역할 강화에 대한 합의도 박 대통령이 기여한 부분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내 지분이 많았던 선진국은 IMF 중심의 국제금융체제를 유지하려던 반면 신흥국은 RFA 논의에 적극적이었다. 박 대통령은 RFA 역할 강화에 소극적이었던 선진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IMF와 RFA 또는 RFA 간에 경험 및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대화채널 등의 협력체 구축을 촉구해 공감을 이끌어냈으며 재무장관들이 진전사항을 이행·점검토록 요청해 선언문에 반영됐다.

이와 함께 ‘보호무역조치 동결’은 박 대통령이 주장한대로 2016년까지 연장키로 합의됐고 회원국의 관심과 지지를 요청했던 녹색기후기금(GCF)도 원활한 운영에 필요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약속하는 문구가 정상선언문에 들어갔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G20이 신흥국과 선진국 간 정책공조 장으로서의 기능을 모든 회원국들이 인정하고 이것이 앞으로 5년 이상은 계속돼야 한다는 점에 회원국들이 공감을 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면서 “G20가 앞으로 해나갈 과제에 대해 박 대통령이 상당한 리더십을 발휘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9월 5일(현지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스탄틴 궁전에서 열린 G20 정상 워킹 세션에서 회의에 임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포용적 성장’ 화두로 G20 방향성 제시
의장국인 러시아의 요청으로 맡은 ‘선도발언(Lead speech)’을 통해 일자리 창출을 통한 ‘포용적 성장’ 등 향후 G20이 지속적으로 다뤄야 할 의제를 제시, 주목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G20에서 처음으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라는 화두를 본격적으로 던진 것은 고용 이슈와 관련한 G20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의장국 러시아의 요청에 따른 제2세션(일자리 창출과 투자) ‘선도발언(Leadspeech)’에서 “일자리 창출을 통한 포용적 성장이 없이는 G20 공통의 목표인 ‘강하고, 지속가능하며, 균형있는 성장’도 어렵다”며 “일자리 창출을 통한 포용적 성장을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시스템을 토대로 한 창조경제 구현 등과 같은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포용적 성장이란 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그 성과도 국민 모두가 골고루 누리도록 해 조화로운 성장을 이룬다는 개념이다. 이는 지금까지의 성장이 경제발전 기여도가 높은 기업가 등 일부 계층에게만 집중된 ‘배척의 성장’이었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박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포용적 성장이란 화두를 던진 것은 불균형 성장이 젊은 층의 실업 문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 G20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즉, ‘확장 재정 또는 통화량 증대→투자 확대→고용 증가’의 거시경제적 접근법이나 직업교육, 일자리 알선 등을 통한 노동공급 정책에도 불구하고 고실업 문제가 여전한 것은 성장의 과실이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기업의 이윤으로 집중되는 구조적(불균형 성장) 문제 탓이라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포용적 성장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경제민주화)’와 ‘창조경제’를 소개했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 누구나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공정한 경쟁시스템의 토양에 창의적 아이디어와 산업 간 융·복합으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창조경제가 뿌리내린다면 높은 실업률과 불균형 성장을 해소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9월 9일 오전(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호치민 전 국가주석의 묘소를 방문, 헌화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사돈의 나라’ 베트남에서 ‘세일즈 외교’…양국 우애 과시
러시아 방문 뒤 7일부터 4박5일간 곧바로 이어진 베트남 국빈방문에서 박 대통령은 ‘세일즈 외교’를 공언한 대로 양국 경제협력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한 외교행보에 나섰다. 이번 방문에는 중소·중견기업인 40명과 대기업 18명, 경제단체·협회 12명, 금융기관 5명 등 79명으로 꾸려진 경제사절단도 동행했다. 지난 6월 중국 방문 당시 경제사절단 인원인 72명보다 큰 규모다.

박 대통령은 이번 베트남 방문에서 8일 양국 전통의상인 한복·아오자이 패션쇼와 한·베트남 경제협력 만찬 간담회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9일에는 호치민 주석 묘소 헌화, 쯔엉 떤 상 베트남 국가주석과 정상회담 및 국빈만찬, 베트남 최고 지도부 인사들과의 오찬 및 접견 등의 일정을 진행했다. 또 10일에는 하노이에서 호치민(옛 사이공)시로 이동해 당서기 및 시장이 주최한 오찬에 참석하고 현지 진출기업(한세베트남) 시찰 및 동포간담회 등을 잇달아 가졌다.

상 주석과 가진 이번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양국의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증진을 위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공동성명을 통해 양측은 내년 중에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을 가속화하기로 했다.

두 정상은 한·베트남 FTA를 지렛대로 삼아 2020년까지 무역액 700억 달러 달성을 위해 공동 노력키로 합의했다. 특히 우리측은 베트남 상품의 한국수출 확대 필요성에 공감하고 보다 균형된 무역확대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적극 모색키로 했다. 또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베트남 원자력발전 개발사업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것을 비롯해 화력발전소 건설사업, 석유비축사업 등 에너지 인프라사업에 대한 한국 기업의 참여를 위해 협력키로 했다.

양국 간 무역역조 개선을 위해서도 노력하는 한편,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한 취약지역 개발사업인 ‘베트남 행복프로그램’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이번 방문은 베트남의 극진한 우대 속에 문화적으로도 긴밀한 양국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됐다. 상 주석은 9일 정상회담에서 우리나라를 ‘진정한 친구의 나라’, ‘사돈의 나라’라고 표현하면서 친근감을 표했다. 약 5만 명의 다문화가정 주부가 국제결혼을 통해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점을 들어 친근감을 표현한 부분이다. 상 주석은 “다문화가정 출신의 2세나 3세가 한국 국회나 정계에도 진출해 훌륭한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희망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우리와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있는 베트남을 방문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며 “베트남 국민들께 우리 국민들의 따뜻한 인사를 전한다”는 말과 함께 ‘고맙습니다’라는 뜻의 베트남어인 “깜언”이라고 인사하기도 했다.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월남전에 참전했던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박 대통령의 행보도 보였다.

▲ 박근혜 대통령과 쯔엉 떤 상 베트남 국가주석이 9월 9일 오후 주석궁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제공)

박 대통령은 9일 호치민 전 국가주석의 묘소를 참배하고 헌화했다. 호치민 묘소 방문은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베트남과의 악연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통령은 1964년 베트남전 파병을 결정했으며 추가파병까지 포함해 8년간 31만여 명을 참전시켰다. 이번 베트남 방문에서 과거사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은 박 대통령은 대신에 베트남전 당시 주석이었던 호치민 묘소 참배를 통해 선친과 베트남 간의 악연을 정리하려 한 것으로 해석됐다.

현오석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G20 정상회의 참석 성과와 관련해 “G20은 앞으로도 세계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프리미어 포럼’”이라며 “한국에 관련된 이슈에 대해 국제사회의 공조를 정확히 정착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자평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베트남은 2009년 수립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서의 중요성이 있다”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외교의 거점이라는 차원에서 대아세안 외교를 본격 시작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안병용 기자  byahn@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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