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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마피아, 천인공노할 범죄자다
최재영 | 승인 2013.06.28 16:13|(160호)

   
▲ 최재영 본지 대표이사 발행인
부드러운 인품으로 소문난 정홍원 국무총리가 최근 귀가 번쩍 뜨이는 ‘과격 발언’을 했다. 정 총리는 국가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해서 원전 비리와 관련해 "원전의 안전과 직결된 주요 부품의 시험 성적을 위조해 납품한 것은 천인공노할 중대한 범죄"라고 질타했다.

아마 회의에 참석한 인사들 대부분도 정 총리의 이런 발언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천인공노할 중대한 범죄, 얼마나 죄질이 나쁘고 충격적인 비리였기에 인품 좋은 정 총리가 이런 발언까지 했을까. 물론 박근혜 대통령도 ‘충격’이라 고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번 원전 비리는 오래전부터 누적된 비리가 이제야 드러난 것”이라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다.

원전 마피아,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원전 비리의 핵심 고리를 이른바‘원전 마피아’가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됐다. 원전에 관한 정책부터 원전 건설과 운영, 감시와 검증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이들이 틀어쥐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정점에는 원전 관련 관료집단이 똬리를 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특정 대학과 특정 지역의 인사들이 성골이니 진골이니 하면서 끼리 끼리 뭉쳤을 것이다.
 
단순한 비리나 부패구조를 넘어서 국민 안전과 직결된 원전사업에 불량 부품이 거래되고, 시험성적서가 위조되고 심지어 중대한 결함을 알고서도 서로 쉬쉬하면서 돈을 주고받았던 그들의 행태는 정말 천인공노할 짓이다. 어떻게 이처럼 중대한 국책사업에 비리구조가 지금까지 온존해왔는지 놀라울 정도이다. 정말 과거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 와중에도 원전 운영을 맡은 한국수력원자력은 비리 임직원들에게 퇴직금 잔치를 벌여왔다는 사실이다. 사측 자료에 따르면 납품업체에서 돈이나 향응을 받아 지난해 해임된 한수원 직원 32명에게 퇴직금 21억4천만원이 지급됐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돈과 향응이 넘쳐났으면 32명이나 해임된 것일까. 그리고 이쯤 되면 한수원이 이들을 ‘징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려’한 것에 다름 아니다.

국민 안전에 치명적인 파열구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거액의 퇴직금이라니, 한수원이 오히려비리를 부추겼던 것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그래서 공기업에도 파면제도를 빨리 제도화해야 한다.

이들에게 퇴직금이 아니라 감옥살이를 시키지 않는다면 공기업 곳곳마다 각종 마피아들이 독버섯처럼 득실댈 것이다. 원전 마피아가 그 실상을 보여준 셈이다.

공기업 사장이나 감사 자리는 언제부턴가 정치권의 논공행상으로 낙하산 부대가 장악하기 일쑤였다. 정권에 줄을 댄 무능한 사장이 낙하산 타고 내려가면 공기업 노조는 처음엔 결사적으로 반대하다가 결국 임금인상, 복지확대 등으로 노사가 타협하는 방식으로 그 많은 세월을 보낸 것이다.

그런 공기업에무슨 공공영역이 있으며, 공적 서비스란 말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해마다 실적이나 공적과 관계없이 공기업 사장의 월급이 오르고 덩달아 임직원들의 월급까지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공기업의 엄청난 부채를 국민이 떠맡고 있는 지경까지 왔다.

이런 와중에 내부 비리는 ‘마피아’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한마디로 공공영역의 붕괴요, 국민에 대한 배신이나 다를 바 없다. 이번에 드러난원전 비리는 그 일단에 불과하다. 가장 위험하고, 그래서 가장 치밀하고 정확해야 할 원전사업에 마피아들이 비리를 저지를 정도였다면 다른 곳은 어떨까. 생각할수록 부끄러울 따름이다.

또 피해자는 국민인가?
이 무더운 여름날, 국민은 에어컨 하나 제대로 켜기조차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일부 원전은 가동이 중단되고 정부는 매일 절전을 호소하고 있다. 경제상황도 어려운지라 기업 측에 일방적으로 절전을 호소하기도 쉽지 않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또 국민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전기료 인상 얘기까지 들린다. 정말 더운 날에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언제까지 일부 죄질이 나쁜 공직자들의 비리 때문에 다수의 선량한 국민이 피해를 입어야 하는지 그저 답답한 심정이다.

한 자료를 보니까 불량 케이블 납품으로 부품회사가 벌어들인 돈은 6000만원이지만, 원전 가동중지와 대체전력 생산으로 인해 국민이 부담해야 할 세금은 3조원이나 된다고 한다. 정말 국민 노릇 하기 자존심 상하고 괴로울 뿐이다. 정부도 더 이상은 안되겠다 싶어서 대책을 내놓았다.

먼저 원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전 관련 공기업 출신 퇴직자가 유관기관에 재취업하는 것을 제한하고 퇴직자를 활용한 입찰 참여에도 제약을 두겠다고 한다. 사실 이런 제도 개선은 벌써 수없이 나왔던 얘기다. 이제까지 모른 체하다가 이번에 다시 꺼낸 카드에 불과하다.

그래서 진정성이 약해 보인다. 최근 10년간 한수원 퇴직자 가운데 30%가 원전 관련 업체에 재취업했다는 자료가 나왔다. 그렇다면 정부는 지금까지 뭘 했다는 말인가. 스스로 마피아를 키워내고 거대한 부패구조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이제 와서 국민의 비판 여론에 마지 못해 내놓은 면피성 대책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람 문제이다. 이번 원전 비리에 연루된 인사들은 정말 일벌백계해야 한다. 파면이 어렵다면 파면에 준하는 수준의 징계 없이는 이번에도 말뿐인 대책에 그
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들을 비호한 정책 당국자들, 그들과 한통속이 돼서 전문가로서의 양심마저 팔아먹은 관변 학자들도 과감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도의적인 책임이나 묻고 몇몇 핵심 인사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식이라면 원전 마피아는 어느 땐가 통제불
능의 괴물이 되고 말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더 짚어보자. 원전사업은 그 사업영역 밖에서는 좀처럼 내부 비리를 알기 어렵다. 따라서 내부고발과 자진신고 제도를 강화해서 내부 감시를 실효성 있게 해야 한다.

정부가 지난달 7일 발표한 <원전비리 재발방지 대책>에서 ‘원자력 안전 옴부즈만 제도’를 운용하겠다고 밝힌 것은 긍정적이다. 여기에 외부 인사를 대폭 영입해서 내부의 긴장감을 높이고 특정 인맥이 주요 요직을 독점하는 것도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 이번 기회에 원전 비리의 질긴 부패고리를 끊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원전으로 거듭나야 한다.

한수원 측의 뼈저린 자구책과 검찰의 철저한 수사, 그리고 정부의 단호한 징계조치가 서로 맞물려야 한다. 천인공노할 범죄자들, 그 끝이 무엇인지를이제 국민에게 생생하게 보여줘야 한다.

poeco@chol.com

최재영  poeco@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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