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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갑을 관계’로 멍들고 있다갑과 을은 대립이 아닌 ‘상생’ 관계
강경윤 기자 | 승인 2013.05.31 11:30|(159호)

[정경뉴스=강경윤 기자] 남양유업 사태에 이어 배상면주가까지, 최근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는 단연 갑을(甲乙) 관계다. 대형유통업계의 하위 대리점에 대한 밀어내기 영업과 강제할당 등 ‘갑의 횡포’가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은 극에 달하고 있다. 특히나 힘없는 대리점주들이 갑의 횡포로 빚더미에 올라앉거나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일까지 벌어지면서 조속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번 사태에 대해 “새정부에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력 경고하고 나섰다. 갑을 관계로 멍든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남양유업 사태로 표출된 ‘갑의 횡포’
최근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갑의 횡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남영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퍼부은 녹취록이 공개되면서다. 피해자인 전 남양유업 치즈 대리점주 김모(53) 씨는 조사결과 폐기처분할 우유까지 억지로 떠안은것으로 밝혀졌다.

   
▲ 5월 9일 오전 서울 중구 LW컨벤션에서 열린 ‘남양유업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웅(왼쪽에서 여섯번째) 대표이사와 본부장급 임원들이‘욕설 영업’과 관련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진 남양유업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진화에 나섰다. 5월 9일 서울 중림동 브라운스톤에서 김웅 대표이사와 곽주영 영업 총괄본부장 등 본부장급 이상 임원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대국민 사과와 상생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김 대표는 “일련의 사태에 회사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환골탈태의 자세로 인성교육 시스템과 영업환경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해 이런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영업직원들의 밀어내기와 떡값 등 부당 행위에 대해선 잘못을 시인했다. 김 대표는 “영업 현장의 밀어내기 등 잘못된 관행을 인정한다”면서 “검찰 수사와 공정위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잘못된 관행을) 원천 차단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부 영업직원이 대리점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철저히 진상을 조사해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 대리점주들은 “진정성이 없는 대국민 쇼”라고 비난하며 집단소송을 준비키로 해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검찰수사와 공정위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던 남양유업이 검찰 조사에서는 모든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진 것이다. 게다가 남양유업 사태와 맞물려 배상면주가 대리점주인 이모(44)씨가 본사의 밀어내기를 비난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가 알려지면서 갑의 횡포에 대한 이슈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 5월 21일 민주당 '을' 지키기 경제민주화추진위원회 주최로 열린 남양유업-대리점주협의회 첫 단체교섭에서 김웅 남양유업 대표이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기업에 목매는 중소기업의 비애
갑은 군림하고 을은 비위를 맞추는 갑을 문화는 개발경제 시대를 거치면서 나온 뿌리 깊은 병폐다. 기업이 고도성장 과정에서 과실을 따 먹기 위해 대기업은 관청에 청탁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납품에 매달리는 구조가 정착됐기 때문이다.

갑을 관계가 가장 두드러지는 현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다. 갑을 관계는 계약서에 문자로 명확히 규정되지만, 을은 계약서에도 없는 사업과도 전혀 무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터넷에선 을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계약을 ‘을사(乙死)조약’이라고 부른다.

소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 C대표는 최근 대기업 직원의 결혼식에 가면서 봉투 10개를 준비해 갔다. 최근 이 대기업이 내부적으로 부조금을 5만원 이상 받지 못하도록 임직원 윤리 규정을 강화하자, 봉투 10개에 직원들의 이름을 쓰고 5만원씩을 넣은 것이다. C대표는 “부조금을 달랑 5만원만 내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부조금 쪼개기’를 했다”고 밝혔다. 수도권의 한 중견 건설업체의 D대표는 얼마 전 핀란드에서 사우나 시설을 수입해 들여왔다. 이 사우나가 설치된 곳은 거래하는 대기업 임원의 집이었다.

D대표는 “그 임원이 최근 이사를 한 뒤 술자리에서 부인이 ‘사우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면서 “이 정도 말귀도 못 알아들으면이 바닥에서 사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갑을 문화는 우리의 성공지향적인 수직적 문화가 만든 대표적 병폐”라면서 “대기업이나 공무원이 우리 사회가 수직적 문화에서 수평적 문화로 바뀌어가는 시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사고의 틀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사회에 잠재된 불평등한 갑을 관계의 현주소다.

6월 임시국회서 ‘남양유업법’ 입법 다짐
박근혜 대통령은 대형 유통업체들의 밀어내기 관행에 대해 “새 정부에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이에 공정위·국세청·검찰·경찰 등 법집행 기관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또 최근 지도부를 재구성한 여야 정치권 모두가 6월 임시국회에서 갑의 횡포를 규제하기 위해 입법을 다짐하고 있다.

우선 여야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담은 ‘남양유업법’을 추진한다. 이들 법안이 통과되면 밀어내기, 떡값 요구 등 갑의 횡포를 부린 본사에 최대 3배의 손해배상을 물릴 수 있고, 피해 대리점주들은 집단소송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 경제민주화국민본부 등 시민단체가 5월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리점주 죽음 추모 및 남양유업 사태 등 '슈퍼갑' 횡포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과 입법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5월 14일 대리점에 불공정 행위를 강요하는 본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 대리점주에게 직접 배상액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을통해 피해 대리점주 한 명이 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차후 모든 대리점주가 판결의 효력을받을 수 있도록 하는 ‘옵트 아웃(opt-out)’ 방식의 집단소송제 도입도 검토 중이다. 이 의원은 “남양유업 사례처럼 본사가 유통기한 이 임박한 식품이나 비인기 제품을 강매해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는 것 외에 직접적인 피해보상을받기 어렵고 소송을 벌이려 해도 대형 로펌을 선임한 본사와 경쟁하기 힘들다”며 “이러한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면 배상액이 천문학적으로 커져 전문 법률가들이 적극 뛰어들 수 있고, 소송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대리점주들도 법적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법안에는 공정위의 시정조치를 기다리지 않고 개인이 법원에 공정거래법 위반행위를 금지해 달라고 직접 요청하는 ‘사인의 금지 청구제도’와 본사의 내부 고발을 가능케 하는 내부고발자 보호 및 강화 방안도 담길 예정이다. 민주당 관계자도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프랜차이즈법이나 기존의 공정거래법으로는 대리점이나 특약점에 적용 하는 데 한계가 있어 새 법안이 필요하다”며 “6월 임시국회에서 프랜차이즈법과 함께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갑이 죽는다고 을이 살진 않는다
하지만 갑의 부당한 횡포를 시정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남양유업법의 일부인 징벌적 손해배상은 갑에게 가혹하다며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요즘 경제민주화 때문에 속속 도입되고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논란이 늘 있어왔다.

10배 손해배상이니 매출액의 3% 과징금이니 하는 것들은 기업으로서 감당하기 버거운 형벌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과징금, 벌금 문제는 4월 국회에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 때도 불거져나온 바있다. 본사와 대리점 간의 계약을 시시콜콜 간섭하고 규제하는 것도 사적 자치의 원칙에 어긋난다.
   
▲ 5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남양유업 본사 앞에서 열린 '남양유업 사태에 대한 대리점협의회입장발표 및 각계 공동기자회견'에서 대리점 피해자협의회 회원들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남양유업법이 갑에게는 너무 가혹한 법이라는 주장이다. 갑과 을이 기본적으로 대립 관계가 아닌 상생 관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갑이 죽는다고 을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을도 힘들어진다. 실제로 5월 20일 남양유업 불매운동으로 급감한 매출 회복을 위해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남양유업 현직 점주 1000여 명이 참여한 남양유업대리점협의회 김병열 총무는 “남양유업 불매운동으로 1500여대리점 매출이 30~40% 곤두박질쳤다. 특히 450여 방문판매 담당자들은 고객이 절반으로 줄어들어 생계유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밝혔다.

남양유업이 망하면 대리점들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갑과 을이 상생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앞으로 남양유업 사태로 불거진 갑의 횡포에 대한 정부의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ggangky@mjknews.com

강경윤 기자  ggangky@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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