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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60주년을 회고하며
정경NEWS | 승인 2013.05.09 11:40|(158호)

   
▲ 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 전공교수/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정경뉴스=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 전공교수.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올해는 정전협정과 한미동맹이 체결된 지 60주년이 된다. 정전협정과 한미동맹 체결의 기원이 된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의 체결로 마무리되었고, 동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다. 정전협정은 전쟁을 종결짓고 전쟁 이후 한반도의 분단상황을 규정짓는 법률적 토대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전쟁과 정전협정의 의의
1950년 6월 25일 UN 안보리는 북한의 공격을 “평화의 파괴행위(breach of the peace)”로 규정하며 북한에게 전쟁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북한의 침략은 멈추지 않았고, UN은 6월 27일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원조에 관한 결의’와 7월 7일 ‘유엔군사령부 설치에 관한 결의’를 채택함으로써 전쟁 참전을 선언했다.

한편 6월 28일 미 극동군사령관이었던 맥아더가 한강방어선을 시찰했고, 이후 트루먼 대통령은 그에게 ‘휘하의 지상군을 한국에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이어 7월 8일 UN 결의에 의거하여 맥아더는 유엔군 통합군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미국과 UN의 참전이 공식화되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전환점으로 한국군과 UN군에 불리했던 전세가 역전되었으며, 10월 7일 ‘38선 돌파 결의안’이 UN에서 채택되었다. 북진을 통해 북한지역 점령과 한반도 통일까지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의 전쟁 개입으로 새로운 국면에 직면했다. 즉 중국의 참전은 전쟁을 장기화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한국을 포함한 UN 참전국들은 전쟁의 방향을 새롭게 모색하게 되었다.

미국은 ‘확전, 봉합, 철수’라는 새로운 국면에 직면했는데, 전쟁을 더 이상 확전시키지 않고 외교적으로 봉합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휴전에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공산권과의 휴전회담을 추진했고, 1951년 7월 10일 UN과 공산권의 휴전회담이 개성에서 시작되었다.

주로 미국과 소련이 주도했던 휴전회담에서 ‘군사분계선 설정 문제, 휴전 감시기구 구성 및 관련사항, 정치회담, 그리고 전쟁포로 문제’ 등이 핵심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이들 중 비교적 용이한 문제로 인식되어 합의를 기대했던 전쟁포로 문제의해결은 쉽지 않았다.

회담은 전쟁포로에 대한 쟁점으로 인해 1952년 10월 8일 무기한 연기되었다. 1953년 4월부터 회담은 재개되었고, 5월부터 부상포로에 대한 교환이 진행되었다. 전쟁포로의 ‘자발적 송환’ 원칙에 공산권 측이 찬성함으로써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로 전쟁은 종결되었다.

정전협정의 실효성 문제
정전협정은 UN군 총사령관인 미육군 대장 마크 W 클라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중국 인민지원군사령관 팽덕회 3인이 서명한 회담문건을 UN 대표단 수석대표 미 육군 중장 윌리암 K 헤리슨과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 수석대표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이 1953년 7월 27일 판문점 회의장에서 만나 조인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하였다.

정전협정은 전쟁의 완전한 종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단순한 적대행위의 일시적인 중지를 의미한다. 단지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일 뿐이며 정치적으로 전쟁의 완전한 종결을 결정짓는 협정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전협정 체결 후 3개월 이내에 정치회담을 개최할 것을 규정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남북한의 정치회담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지난 60년 동안 정전협정은 개정되거나 소멸되지도 않았고, 게다가 평화협정의 형태로 전환되지 못했다.

한반도의 현 상황을 규정하고 있는 정전협정은 전체 5조63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조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제2조 정화 및 정전의 구체적 조치, 제3조 전쟁포로에 관한 조치, 제4조 쌍방 관계정부들에의 건의, 제5조 부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전협정 이후 3개월 이내에 한반도에서의 모든 외국군대의 철수 및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 등의 문제들에 대해 쌍방이 협의할 것을 담고 있다. 정전협정 중 제3조, 제4조, 제5조는 사실상 소멸된 조항이고, 제1조와 제2조만이 불안정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제1조 제1항의 “한 개의 군사분 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각 2km 후퇴함으로써 적대군대 간에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과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하여 이를 완충지대로 함으로써 적대행위의 재발을 초래할 수 있는 사건의 발생을 방지한다”와 같이 비교적 유효하게 지켜지는 조항도 있다.

그러나 제1조 제15항 “본 정전협정은 적대 중의 일체 해상 군사역량에 적용되며 이러한 해상 군사 역량은 비무장지대와 상대방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한국 육지에 인접한 해면을 존중하며 항구에 대하여 어떠한 종류의 봉쇄도 하지 못한다”와 같이 모호하고 실효성이 제기되는 조항도 있다.

실제로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에 대해 북한은 동의하지 않고 있으며, 주기적으로 도발을 감행하고 있기 때
문에 서해는 한반도의 최대 분쟁지역으로 전환되었다.

평화체제 전환의 선결조건
가장 큰 문제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북한의 협정 위반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2006년, 2009년, 2013년 3차례 북한의 핵실험과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더 제기되었다. 이처럼 북한의 무력도발 및 최근 정전협정 ‘전면 부인’ 발언까지 제기되면서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불가피한 시점이다.

궁극적으로 정전협정에 기반하고 있는 한반도의 정전체제가 지향해야 할 것은 평화체제로의 전환일 것이다. 평화협정을 위해 ‘남북 신뢰회복, 교류협력 확대, 경제공동체 형성, 군축’ 등이 선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과 개발 등 비핵화를 선언하고 6자회담으로 복귀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이런 관점에서 중요하게 간주된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고 북한이 실질적인 이행단계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이른바 ‘남북 공동번영, 평화체제 구축, 평화통일’을 달성하는 것은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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