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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명창들의 예술과 사랑-4> 북머리 10년, 산중 10년, 주유천하 10년
김철호 전MBC 해설위원/전 구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 승인 2013.02.12 13:43|(155호)

   
▲ 김철호 전 MBC 해설위원/ 전 국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제비 몰러 나간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명창 박동진(朴東鎭1916~2003)이 출연했던 광고카피다. 박동진은 이 광고 하나로 명창반열을 넘어 한때 광고계의 떠오르는 별이었다. 아이들까지 그의 광고카피를 흉내낼 정도였다. 박동진은 걸걸한 수리성에 좌충우돌 입담으로 소리판을 너덧 시간씩 달구곤 했다.

“야, 이 쌔려죽일 놈아, 북 잘 쳐!”

걸핏 하면 북 치는 고수에다 대고 육두문자를 날리곤 했다. 좌중을 웃기기 위한 연기였다. 그가 고수를 닦달할라 치면 관중은 배꼽을 잡았고 욕설을 듣는 고수도 웃었다. 소리판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때론 고수가 모욕감을 못 이겨 북채가 날아가기도 했지만….

“토막소리나 몇마디 하는 게 그게 문화재여? 인간문화재라면 서너 시간씩 마당소리를 할 줄 알아야제.”
그는 이땅에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완창 판소리’를 되찾아온 장본인이다. 박동진이 고수들을 떡 주무르듯 하고 완창을 고집한 데는 그만큼 소리공력이 컸기 때문이다.

소위 득음(得音)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그를 이 시대‘마지막 소리광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공주 출신의 박동진이 득음에 이른 비화는 드라마틱하다. 소리에 정진하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목이 뻣뻣해지고 고음이 터지질 않아 크게 당황했다.

소리꾼의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몇 달을 고심한 끝에 산속 토굴로 찾아든다. 목을 되찾기 전엔 다시 세상에 나오지 않으리라 작심하고 생쌀을 씹으며 하루에 열여덟 시간씩 소리에 매달렸다.

그러나 목청은 더 쉬어가고 몸은 물에 빠진 시체처럼 부어올랐다. 그때 그의 부친이 토굴을 찾았고 죽어가는 아들을 위해 똥물 한 통을 가져다주었다.

“삭은 똥물 한 통을 다 마시고 나니 거짓말처럼 부기가 빠지고 망가진 목이 되돌아오더라고. 거 참 신통한 일이여!”

목을 되찾은 박동진은 소리마당에 완창 신드롬을 불러온다. 소리길에 들어서 좋은 스승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좋은 스승을 만나도 내 소리를 찾아내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소리광대길은 30년 고행길이라 했다.

‘북머리 10년, 산중에서 10년, 주유천하 10년!’

스승이 북과 북채를 잡고 10년을 가르쳐 스승 소리를 전수받아야 한다. 옛 광대들은 소리교본이 따로 없었다. 스승이 하루 한 대목씩 구술로 불러주면 그것을 외워서 익혀야 했다. 스승의 소리를 그대로만 답습하면 앵무새일 뿐이다.

깊은 산 폭포수 아래나 암자, 토굴에서 바깥세상과 인연을 끊고 10년을 독공해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참으로 혹독한 고행 길이었다.

그렇게 20년 익힌 소리는 다시 방방곡곡을 누비며 관객 앞에서 선보여야 한다. 주유천하(周遊天下)10년!
시골 장날 다리 밑이나 포장마당에서, 때론 극장무대에서 관객을 웃기고 울려야 한다. 사람소리뿐 아니라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천둥소리, 귀신소리까지 삼라만상의 소리를 목으로 질러내야 한다.

조선 말 판소리 이론가 신재효는 <광대가>에서 광대가 갖춰야할 덕목으로 네 가지를 들었다.

“광대라 하는 것이 제일은 인물치레, 둘째는 사설치레,셋째는 득음이요, 넷째는 너름새라...”

광대의 첫째 덕목으로 친인물치레는 예나 지금이나 ‘얼짱’이 최고라는 뜻이다. 덧붙여 사설의 우아한 표현과 전달력(사설치레), 음악적 기교와 청중을 사로잡는 연기(너름새)까지 요구했다.

소리광대가 상스러운 신분이 아니라 학문과 견줄 만한 예술임을 신재효는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그 중에도 득음은 수많은 광대들에게 좌절과 영예를 안겨준 지난한 길이었다.

득음의 경지에 이르러 왕족이나 세도가의 눈에 들면 벼슬에까지 오른 광대가 수두룩하다. 좌절하면 또랑광대나 기생으로 전락해 술판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득음의 경지를 넘어 삼천리 방방곡곡에 명성을 날려‘나라대표 광대’가 된 국창(國唱)들도 많다. 전기 8명창, 후기 8명창, 근세 5명창이 그들이다.‘전기8명창’은 영조~철종 때 활동한 광대들로 권삼득, 송흥록, 염계달, 모흥갑, 고수관, 신만엽, 방만춘,주덕기 등이다.

철종~고종 초기에 활동한‘후기8명창’은 박유전,박만순, 김세종, 이날치, 정춘풍, 정창업, 장자백, 김창록 등 이며,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전후에 활약한 ‘근세 5명창’은 송만갑, 이동백, 김창환, 김창룡, 정정렬 등이다. 모두 소리광대의 인기가 절정기인 시대에 활동한 가객들이다.

   
▲ 사진은 영화 '서편제'의 오정해.

영화 <서편제>는 명창 광대의 길을 처절하게 그리고 있다. 영화 속 유봉(김명곤 분)은 딸 송화(오정해 분)를 명창으로 키우기 위해 송화의 두 눈을 멀게 한다.

남자를 알 만한 나이가 된 송화가 이성에 눈을 떠 소리를 망칠까봐 약물을 먹여 눈을 멀게 한 것이다. 한눈팔지 말고 오직 소리만 익혀 명창 광대가 되라는 비장함이다.

‘우리 몸이 100냥이면 눈이 90냥’이라 했는데...'
“송화야, 이 애비가 네 눈을 그렇게 했다. 애비를 용서하거라.”
“아버지, 진 벌써 알고 있었구만요. 진 아버지를 원망하지 안 혀라우!”송화는 육신의 눈을 바쳐 광대의 눈을 뜬다.

김철호 전MBC 해설위원/전 구립국악원 운영자문위원  news@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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