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첫 여성 대통령 박근혜 시대가 시작된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사회양극화 심화, 북한·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동북아 주변국가의 권력교체기 속에서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난제를 안고 있으면서 동시에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꿈꾸는 많은 국민들의 각별한 기대를 받고 있다. <정경뉴스>는 정치·외교·통일, 경제·복지, 교육·사회·여성·문화 등 분야별로 차기 정부가 가장 시급히 착수해야 할 과제들을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해봤다.

▲ 향후 5년,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꿔나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2월 25일이 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이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손에 쥐어진다. 민생, 대통합, 경제민주화 등 주어진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은 결국‘약속’이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약속을 그리 썩 잘 지킨 이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특히 민생과 통합은 65년 헌정사에서 모든 지도자들의‘공통된 약속(共約)’이었지만,둘 중 하나는 꼭 공약(空約)으로 끝났다. 민생고를 해결한 지도자는 통합을 간과했고,통합에 매달렸던 지도자는 민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박 당선인은 스스로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고 자부해왔다. 대선에서는 민생과 통합을 모두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군인도,능수능란한 정치인도, 화려한 경력의 사업가 출신도 아니지만, 국민들이 박 당선인에게 5년의 미래를 맡긴 건 다름 아닌‘약속은 지킨다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회고를 보면 가장 힘이 강할때가 정권 초반, 그것도 인수위원회 시절이라고 한다. 당선인과 당선인 주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국민에 대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킬것이란 국민의 강한 믿음이 당선인과 취임 초 대통령의 강력한 힘의 원천이라는 뜻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강력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힘이 약해지는 것은 취임 초 한 약속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기대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저소득층과 소외층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만들기는 어렵다. 무려 48%의 국민이 ‘박근혜는 안 된다’에 표를 던졌던 게 지난 대선결과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재벌들을 국민들이 납득할 정도로 법과 원칙에 따르도록 하는 게 경제민주화의 골자다. 박 당선인이 국회의원과 정당인으로서 지난 15년간 해왔던 그 어떤 약속보다 어려운 약속들이다.
박 당선인은 질박하고 어눌하지만 강하고 굳세다. 논어에서 인(仁)과 가깝다고 언급된‘강·의·목·눌(剛毅木訥)’의 품성이다.
하지만 민생도, 통합도 소통 없이는 이루기 어렵다는 게 지난 지도자들이 남긴 교훈이다. ‘대중이 미워해도 반드시 살피고, 대중이 좋아해도 반드시 살펴라(衆惡之必察焉, 衆好之必察焉)’란 공자의 가르침 역시 5년간의 장정에 나선 박당선인의 수첩에 담길 만해 보인다.
박 당선인의 손에 쥐어진 대한민국의 미래, 그 과제들을 분야별로 분석해보자.

정치·외교·통일

전문가들은‘박근혜 정부’의 가장 시급한 정치분야 과제로 야당과의 상생과 협력을 꼽는다.
한국 정치가 오랜 기간 진영논리에 갇혀 여야간 이념적 거리가 커지는 바람에 고착화된 여야 갈등, 즉 싸우는 정치의 구태에서 벗어나려면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여기고 끊임없이 설득하는 소통의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생산적인 정치를 만들려면 국민이 절박하게 느끼는 문제를 국회가 해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여야 관계가 원활해야 한다”면서“여야만이 아니라 청와대와 야당의 관계가 소통이 되고, 의견이 교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박 당선인이 대선 후보 시절 공약한‘국가지도자 연석회의’가 필수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대통령이 되기 전,당선인 자격으로 연석회의를 만들어 설득과 조정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면서“여야의 정치쇄신안 가운데 공통되는 부분을 빨리 실천하자고 제안하며 국가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국민대통합을 시작하는 길이다. 탕평 인사만으로 국민대통합을 가져올 수는 없다”고 제안했다.
이내영 교수도“48%의 야당 지지자를 협력대상으로 하려면 그쪽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국정 파트너로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며 연석회의가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다”면서“연석회의는 국정운영의 방향뿐만 아니라 인사에 있어서도 야당이나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채널이 돼야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지도자 연석회의뿐만 아니라 대선후보시절 약속한 정치쇄신안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김 교수는“지금 와서 정치개혁은 국회가 할일이라고 하면 애초부터 국민에게 잘못된 사인을 보낸 것”이라며 박 당선인이 앞장서서 주도적으로 정치쇄신안 실현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해서 건너뛰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면서“자신의 공약을 지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외교 분야에서는 동아시아에서 가파르게 부상하는 중국, 관계가 악화 일로로 치달은 일본,최상의 관계로 발전 중인 미국 등 주변 3강 사이에서 국익을 지켜내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과제로 꼽혔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중국의 부상은 우리에게 성장할 수 있는 활로가 될 수 있는 반면, 지정학적인 부분에서 갈등이 있을 수도있다”면서“가까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현 내각의 우경화 때문에 악화된 일본과 의 관계를 복원시키고 협력적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미국과 동맹관계가 최상으로 발전돼 있는데 이를 어떤 식으로 강화 또는 유지할지, 미-중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어떤입장을 취해 국익을 지켜나갈지 등이 중요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의‘제1 과제’로 천안함 사태 이후 5·24 조치로 경색된 남북대화채널을 복원하는 것을 들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인한 위기 해결이‘발등에 떨어진 불’이지만 차기 정부가 북한의 우주개발 성과를 인정하면서 군사적 목적으로 전환되지 않도록 하는 방식을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에 제시한다면 오히려 북한발 위기를 선순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박 당선인이 대화 복원 이전에 5·24조치 해제라든지 금강산 관광 재개를 통해 대화를 복원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여진다”면서“대화 복원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박 당선인이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것도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경제·복지

‘박근혜 정부’가 맞닥뜨릴 경제 여건은 한마디로 엄혹하다. 대내적으로는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 문제가 내수를 짓누르고 대외적으로는 세계 경제가 부진의 늪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다.
‘대한민국호(號)’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어느때보다 위기관리의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월 7일 오전 서울 삼청동 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대내외적으로 경제에 충격을 가할‘폭탄’들이 널려 있기에 현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적어도 내년까지는 비상경제 체제를 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박근혜 정부가 국정을 순탄하게 운영하려면 경제 분야에서 위기관리 리더십이 선행돼야 한다”면서“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이나 영국의 대처 총리 등 성공한 경제지도자들처럼 경제정책에서 국민 공감을 이끌어내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하는 감성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내적으로는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 문제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1천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에는 하우스푸어 문제를 비롯해 다중채무자, 학자금 대출자, 저신용자 등 각종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단칼 해결을 추구하기보다는 부동산시장과 금융시장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대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조복현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박 당선인의 ‘국민행복기금’공약은 가계빚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금융채무불이행자를 지원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더 큰 틀에서 부동산 거래를 적정 수준으로 정상화하면서 가계부채 총량을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정교한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외적으로는 수출 전선을 어떻게 지켜낼지가 관건이다. 박 당선인은 최근“수출과 내수가 복지공약을 뒷받침하는 이른바‘박근혜 예산’을 새해 예산안에 반영했지만, 기초연금 도입·4대 중증질환 치료비 지원·고교 무상교육 등 앞으로 실현해야 할 공약들 역시 하나같이 수조원대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특히 복지 재정은 한번 도입하면 줄이기 어려워 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쉽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과감한‘복지공약 선별작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복지공약 실행의 완급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을 지낸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박 당선인의 복지공약을 모두 실현하는 것은 한마디로 불가능하다”면서“인수위원회 기간을 포함해 앞으로 6개월간 폭넓은 국민 여론을 수렴해 복지공약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5개년 실행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복지체계에 대한 고통스러운 구조개혁도 뒤따라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조원동 한국조세연구원장은“현재 100조원의 복지예산 중에서도 중복되거나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다”면서“복지정책도 다른 정부사업처럼 타당성을 따져서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사회·여성·문화

교육 분야에서는 지난해 가장 큰 이슈였던‘학교폭력’문제의 해법 마련이 우선 과제로 꼽혔다.
학교폭력은 피해 학생에게 말할 수 없이 큰 상처일 뿐 아니라 가해 학생에 대해서도 적절한 대처가 이뤄지지 않으면 어른이 돼서도 반사회적 행동을 할 수 있어 사회가 치르는 비용이 더 커지기때문이다.
한유경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는“학교폭력문제는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상관없이 계속 관심을 둬야 성과가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교육 양극화가 심화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주요 과제가 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교사는“특목고·자사 고등고교 서열화 문제를 해결하고 대학입시경쟁 완화를 위한 중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저학년부터 학습을 따라가지 못해 공부를 포기하는 아이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 부문에서는 박 당선인이 내건‘국민대통합’을 이루려면 노동 현안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선거 직후 노동자들의 잇단 자살문제를 지적하며“이른 시일안에 소외된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책이 나오지않으면 사회통합이 불가능하다”며 사회보험, 비정규직 문제 등에 관심을 촉구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당선인이 통합만 외칠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배제되고 내몰리고 쫓겨난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껄끄럽더라도 먼저 해결해야 한다”며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 용산참사 사태 등에 관심을 둘 것을 촉구했다.
교육·주거·의료·통신비 부담 등 민생 문제와 관련해 박 당선인이 폭넓은 사람들을 만나 가감 없이 이야기를 듣고, 비정규직·중소상인·청년실업 문제를 대표하는 이들과 간담회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안진걸 경제민주화국민본부 사무국장은“박당선인이 민생 관련 핵심 사안에 대해 정부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여러 비영리단체(NG0) 관계자 등도 만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여러 비정규직 노조 대표자들을 만나고, 마포 합정동 홈플러스 대책위원회와 간담회를 하고, 노량진고시촌을 방문해 공무원시험준비생과 간담회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박 당선인에게 남은 과제들은 많다. 그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 곧 대한민국의 미래가 된다.

여성 부문에서는 사회적으로 남녀의 기계적인 평등이 아닌 실질적인 평등이 실현될 수 있도록 사회구조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생물학적 여성 몇 명이 어떤 자리에 들어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생물학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남녀가 동등하게 자기 권리와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례로‘여성고용할당제’의 도입을 들며, “당분간만이라도 공적인 조직에서라도 여성고용 할당비율을 30% 이상 해야 한다”면서“자질 있는 3040세대 인재들이 성장해야 다시 그밑의 후배가 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 부문에서는 전체 예산의 2%를 문화예산으로 활용키로 한 박 당선인 공약과 관련, 취약한 기초예술 예산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는 주문이 있었다.
한국예술경영연구소 이용관 소장은“순수예술이 콘텐츠로서 문화산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므로 음악·연극·무용·미술 등 산업화되기 어려운 부문의 지원을 더 늘려 달라”고 당부했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한류(韓流)’에 대해서는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을 피하고 재정 지원보다 공정한 룰 마련 등 시장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홍익 한국문화정책학회 회장은“예술은 계획의 산물이 아니므로 정부가 인위적으로 한류에 개입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있다”면서“정부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재정투입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병용 기자  byahn@mj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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