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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어슨 선교사와 김영제 목사의 수고가 깃든 교회유관지 박사의 '무너진 제단을 찾아서' (8)경성(境城)교회

경성(境城)교회

함경북도에는 경성군, 경원군(慶源郡), 경흥군(慶興郡), ‘경’자 붙은 군이 세 개가 있다. 그 가운데 경원군과 경흥군은 한반도의 동북쪽으로,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 함경북도 경성군(붉은 점) 위치. ⓒ구글맵

경성군은 남쪽으로 떨어져 청진 바로 밑에 있다. 예전에는 경성이 함경도의 중심지였다. 함경도라는 이름은 함흥에서 ‘함’을, 경성에서 ‘경’을 따라서 만든 것이다. 세종 때는 경성이 도호부였고, 고종 때는 함경북도 관찰사가 경성에 있었다. 

경성은 함경북도의 도청소재지였었다. 북한에 좋은 온천이 여럿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주을(朱乙)온천을 첫 손에 꼽는 분들이 많다. 주을 온천이 바로 경성군에 있다.

캐나다장로회의 선교로 세워지다

함경도 선교를 담당한 캐나다장로회는 1901년, 성진(城津: 현재의 김책)에 선교부를 설치했다. 캐나다장로회의 그리어슨(M.D. Grierson: 具禮先) 선교사와 럽(A.F. Robb; 鄴亞力) 선교사가 성진에서 경성으로 와서 전도했다.

신창준(申昌俊)이라는 사람이 믿었는데 이 분을 중심으로 1903년에 경성교회가 세워졌다. 처음에는 신창준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고, 그 다음에는 함일(咸一)학교, 그 다음에는 새로 믿기 시작한 박동원(朴東元)이라는 교인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경성교회의 설립자인 그리어슨 선교사를 빼놓고는 함경도와 북간도 선교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함경도 선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어슨 선교사는 1899년에 한국에 왔다. 이 분은 목사이면서 동시에 의사였고, 음악가였고 스포츠맨이었다. 

이 분은 교회들을 세우는 것은 물론,  제동(濟東)의원을 세워 의료사업에도 힘을 썼다. 함경도 지역에 서양음악과 축구․야구․정구 같은 운동을 처음으로 보급한 분이 그리어슨 선교사이다. 보신(普信)여학교를 세워 교육사업에도 힘썼고 항일민족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이 분을 통해 많은 기독교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  

   
         <전도를 하기 위해 거룻배를 타고 두만강을 건너고 있는 그리어스 선교사 내외>

 

 

 

 

 

 

 

 

 

 

 

 

 

 

역대 교역자들

경성교회는 초기에는 김정현(金定鉉)이라는 매서인이 돌보았다. 매서인은 성경과 전도문서를 보급하는 사람을 말한다. 한국교회의 초기에는 이 분들의 수고가 컸다. 그 다음에는 김영제(金永濟)․ 정기헌(鄭耆憲)․ 이응호(李應鎬)․ 라대화(羅大化)․박창영(朴昌英)‧ 김인서(金麟瑞)․ 문준희(文俊凞) 등이 교회를 이끌었다.

앞에서 그리어슨 선교사를 빼놓고 함경도 선교를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했는데, 1911년부터 경성교회를 담임했었던 김영제 목사도 마찬가지의 인물이다. 경성교회를 담임했던 교역자들 가운데 김인서 목사는 매우 독특한 자취를 남긴 분이다.

이 분은 함경남도 정평군 출신으로 항일애국운동을 열심히 하였다. 이 분은 처음에는 항일애국운동의 방편으로 교회에 출석했다고 한다. 3․1 운동에 앞장서고, 임시정부와 연락책임을 맡고, 독립군의 군자금 모금에 힘쓰고, 이런 일들 때문에 4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옥중에서 신비체험을 했고, 출옥한 후에 신학교에 입학했는데 신학생 시절부터 문서선교운동에 앞장서서 한국기독교의 역사에서 문서선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이 분은 “나는 필목(筆牧)이다.”라고 자주 말했다. “필목”은 펜을 가지고 목회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 “나는 하나님의 서기이다.”라는 말도 했다. 많은 글을 써서 「김인서 전집」도 출간되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신사참배를 강하게 반대했고, 해방 후에는 공산정권의 압제를 피해 월남했다. 이 분은 신학교는 졸업했지만 오랫동안 평신도의 신분으로 일하다가 환갑이 되던 해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3․1 운동 때 경성교회도 만세운동에 앞장 섰다가 여러 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투옥 당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 함경북도 경성군 시내 전경 ⓒ구글맵

중심지에 있었던 경성교회

경성교회의 예전 주소는 함경북도 경성군 오촌면(梧村面) 승암동(勝岩洞)이었다. 오촌면은 오동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고  승암동은 승암산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승암산은 그 모습이 봉황새를 닮아서 봉황산이라고도 한다.

이 곳은 지금은 경성군 승암노동자구가 되어 있다. 앞에서 경성군은 예전에 함경북도의 도청소재지였다고 했는데, 도청이 바로 경성교회가 있었던 오천면 승암동, 현재 승암노동자구에 있었다.

그러니까 경성교회는 예전 경성군의 중심부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부근에 평라선(平羅線) 철로의 승암역도 있었다. 지금은 경성군의 중심지가 군의 중동부지역으로 옮겨졌다.(계속)

   
                             강화DMZ기도회에서 역사의 유래를 설명하고 있는 유관지목사

*유관지 목사. Ph. D. 연세대와 호서대 대학원에서 신학을, 중앙대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극동방송 이사, 주옥감리교회, 목양감리교회 담임 역임. ‘평화통일과 북한선교’ ‘북한의 종교실태’ ‘기도가 흐르는 3천3백80리 강물’ 공저자. 현 북한교회연구원 원장.

유관지  yookj4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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