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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통해 선교에 힘쓰던 교회-강계정신의 근원?유관지 박사의 '무너진 제단을 찾아서'(7) 강계읍교회

 강계는 강계 미인과 강계포수가 유명한 곳이다.

강계는 산이 깊어 호랑이를 비롯한 맹수가 많아서 강계포수가 유명해진 것이다.

1866년에 병인양요가 일어났을 때 나라에서는 강계포수 500명을 소집했는데 이들은 프랑스 군대를 격퇴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강계의 계례지병원은 케네디 대통령의 선조들이 세웠다

 강계는 원래 불교가 강하고 또 천도교도 강한 곳이었다.

1899년에 김윤붕(金潤鵬)이라는 강계 사람이 평양에 갔다가 전도를 받고 교인이 되어서 돌아왔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평양에서 선교사와 전도인들이 강계에 왔고, 1900년 10월에 강계읍교회가 세워졌다.

처음에는 김관홍(金寬弘)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고 그 다음에 동문 안에 집을 사서 예배당 건물로 사용했는데 1910년에 교회가 크게 부흥하자 남장대(南章坮) 앞에 대지를 마련하여 교회당을 지었다.

그래서 강계읍교회를 남장대교회라고도 하는데 장로교 주소록에는 이 이름이 올라와 있다.

 설립 초기부터 날로 부흥하던 강계읍교회는 1910년에 숭실학교 설립자인 베어드(W.M. Baird: 裵緯良) 선교사의 부흥회를 계기로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고, 명신(明新)학교‧ 광신(光新)여학교‧ 영실(英實)중학교 등 교육기관을 세워 교육을 통한 선교에 힘썼다.

 강계에는 선교사가 세운 계례지(桂禮知; Kennedy)병원이라는 의료선교기관이 있었는데 ‘계례지’는 ‘케네디’를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미국의 36대 대통령을 지낸 케네디의 선조들이 병원설립에 필요한 비용을 기부했기 때문에 병원 이름이 이렇게 된 것이다.

 이 지방의 3․1 운동은 이 교회의 종소리를 신호로 시작되었다

 3․1 운동 때 강계에서는 4월 8일에 만세시위가 일어났는데 바로 이 계례지병원 지하실에서 독립선언서 2천부를 찍었고. 강계읍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해서 만세를 부르기 시작했다. 일본 당국은 만세운동을 진압하면서 무자비한 박해를 가했는데 강계읍 교회의 종을 여섯 달 동안 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강계에는 미 북장로교의 선교부가 있었는데 강계선교부를 세우는데 앞장 선 분은 불레어(H.E. Blair: 邦緯良) 선교사이다.

이 분은 동생 방혜법(邦惠法) 선교사와 함께 형제가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했다.

강계읍교회의 중요인물이었던 차학연(車學淵) 장로가 교회가 너무 선교사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에 불만을 품고 1910년에 일부 교인들과 함께 강계읍교회에서 나와 조선회중기독교(朝鮮會衆基督敎)를 세우는 일이 있었다.

조선회중기독교는 1915년에 일본조합기독교에 통합되었다.

강계읍교회는 김진근(金振瑾) 목사, 김대건 목사, 함석용(咸錫鎔) 목사, 김련(金煉)목사 등이 담임했고, 캠벨(A. Campbel: 甘富悅) 선교사가 1917년부터 강계읍교회를 중심으로 세워진 양실학교(養實學校) 교장을 역임하며 많은 수고를 했다.

강계읍교회의 옛 주소는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동부동이었다.

이곳은 지금은 자강도 강계시 동부동이 되어 있다.

북한은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자강도(慈江道)를 신설하고 강계를 도청소재지로 삼았다.

자강도라는 이름은 자성군에서 ‘자’를, 강계에서 ‘강’을 따서 만든 것이다

   
 

요즘 북한은 ‘강계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이 큰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행군 때 자강도가 그것을 극복하는데 모범을 보였다고 하여 도청소재지인 강계의 이름을 따서 ‘강계정신’이 생겼는데, 이 말은 경제선동의 대표적 구호로 쓰이고 있다.

강계읍교회는 산서노회(山西老會)에 속해 있었다.

산서노회는 강계읍교회에서 조직되었고, 강계읍교회는 이 노회의 중심교회였다.

유관지  yookj4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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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인광 2017-11-15 04:08:11

    위에 남장대교회 "김련" 목사님 손자입니다,,,
    김련목사님은, 목사 뿐아니라, 신흥무관학교 1기 특기생으로 , 6,25 당시 실종 군목입니다,,, 목사이기보다, 나라를위해 독립운동으로 일제시대때, 전과 3범이며, 평양도를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였으며, 대한민국 유공자입니다,,
    http://www.koreatimes.com/article/699405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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