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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토(故土)에서 떠오르는 단상사진으로 보는 조중 접경지역의 오늘②

우리가 동북3성 지역을 방문한 시기, 이미 비가 많이 왔고 또 오고 오는 중이었다. 집안으로 가는 길 또한 여의치 않았다. 결국 단동에서 집안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무너진 돌에 막혀 고구려 유적지 방문을 포기해야만 했다. 우리보다 앞서 그 여정을 걸었던 팀의 얘기와 지난해 갔던 집안을 기준으로 오늘의 얘기를 풀어본다.

집안(集安) 고구려 유적지
집안은 고구려 제2대 유리왕 때인 서기 3년부터 209년 산상왕이 환도성으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206년 동안 고구려의 수도였다. 대표적인 유적지가 그 이름도 유명한 광개토대왕비다. 1990년대에 이곳을 방문한 목사님으로부터 듣기로는 당시엔 논밭 한가운데 서 있었던, 관리가 전혀 되지 않던 비석이 이제는 큰 유리관 안에서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 중국 집안현 벌판에 우뚝 서 있는 광개토대왕릉비. ⓒ한국어깨동무사역원

중국은 ‘고구려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를 반박하려는 한국의 시도를 경계하고 있다. 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유적지다 보니 전반적으로 경계가 심했다. 하지만 알려져 있기로는 정부가 업체에 하청을 주어 관리하는 시스템이기에 묘하게 실컷 경계하다 식사시간이 되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허술함을 보여주는 이중성을 느낄 수도 있었다.

광개토대왕릉비, 그리고 역사 조작
비석은 약 1400여년 동안 묻혀 있다가 일본군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고 알려져있다. 이것을 7년 동안 자신들만 연구하다가 1889년에서야 발견, 공표를 했다. 한 재일교포 출신의 일본 대학교수로부터 비문 왜곡, 조작설이 나오기 시작했고 당연하겠지만 일본은 이를 전면 부인했다.

   
▲ 광개토대왕릉은 현재 중국 정부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한 상태다. ⓒ한국어깨동무사역원

이제는 중국이 2000년대 들어서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통해서 역사왜곡에 참여했다. 이미 2004년 고구려 유적을 중국의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목록에 넣었다. 목적은 통일한국 시대를 겨냥한 영토분쟁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뜻이고,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인정받고 있는 조선족의 이탈 방지의 뜻도 담겨 있다. 연구라는 이름이지만 정부의 지원하에 국익을 위한 봉사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런 일환으로 이미 중국 역사교과서 표지에 고구려 벽화를 집어넣는 행태까지 보여주어 보고 있어서, 우리들에겐 불편한 주제일 수밖에 없다.

정지원  mogi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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