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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조․중 접경지역의 오늘한국어깨동무사역원, 1주일간의 탐방 연재①

지난 여름 한국어깨동무사역원(대표 윤은성 목사)은 중국 심양에서부터 조․중․러 접경지역인 훈춘까지 1주일간 분단 현장 및 고구려 역사문화유적지를 탐방하는 중국역사탐방을 실시했다. 생생한 전달을 위해서 사진 위주로 현장 스케치를 싣는다. -편집자 주

첫째날(심양에서 단동)

심양공항. 공식적으로는 종교적 개방이 이루어졌다고는 해도 중국은 아직 타 지역 종교인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우리가 이곳에서 만날 현지인들과 교회를 위해서라도 호칭이나 특정단어 사용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만큼 이곳은 여전히 긴장해야 하는 곳이다.

   
▲ 심양공항 도착 직후. ⓒ한국어깨동무사역원

심양. 심양의 서탑지역은 코리아타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한글 간판이 자주 눈에 띈다. 조선족이 많이 모여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심양의 서탑지역은 코리아타운을 방불할 정도로 한글 간판, 조선족들이 많이 거주한다. ⓒ한국어깨동무사역원

단동. 심양에서 250km 정도 떨어져 있고, 차로는 4~5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하는 단동. 단둥으로도 불리는 이곳의 옛 이름은 안둥. 중국의 동쪽을 관리하는 요새라는 뜻이다. 그로 인해 1894년 청일전쟁 당시 일본에 점령됐고, 1907년 개항 후 1910년부터는 일본의 대륙진출 교두보로 활용됐다.

   
▲ 많은 관광객들이 압록강철교를 찾고 있다. ⓒ한국어깨동무사역원

 

   
▲ 중조 우의교라고 불리는 압록강철교. ⓒ한국어깨동무사역원

단동의 대표 관광지(?) 압록강단교에 들어서면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재 단동에서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통하는 유일한 다리이다. 1911년 일본이 세운 다리가 1950년 한국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됐다. 다리가 끊어졌다 해서 압록강 ‘단교’라고 불리고 있는데, 그 바로 옆에는 중조우의교(中朝友谊桥)라고 불리는 철교가 있다. 이곳을 통해 긴 트럭의 행렬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중국과 북한의 교류가 얼마나 활발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 신의주에서 단동을 향해 압록강철교를 건너고 있는 트럭들. 북-중 교역의 80%가 신의주-단동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한국어깨동무사역원

압록강철교를 넘어 보이는 신의주의 모습은 매해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다. 가동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알 수 없는 관람차가 서있고 올해는 마치 워터슬라이드를 연상케 하는 구조물이 역시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고요하게 서 있었다. 현지 가이드는 “너무나도 화려한 단동의 모습에 비교되지 않으려고 뭐라도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을 하기도 했다.

압록강철교 입구 가운데 서있는 팽덕회(彭德懷)를 중심으로 강건너 신의주를 가리키는 군인들의 상이 보인다. 팽덕회가 밟고 서있는 붉은 판에는 ‘FOR PEACE’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길건너 보이는 북한의 모습. 좌우편으로 놀이기구(관람차와 워터슬라이드)가 눈에 띈다.

   
▲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 사령관이었던 팽덕회(彭德懷)를 중심으로 강건너 신의주를 가리키고 있는 군인들 동상. ⓒ한국어깨동무사역원

 

   
▲ 일제 때 건설돼 한국전쟁 때 소실된 압록강대교는 현재 교각만 남아 있다. ⓒ한국어깨동무사역원
   
▲ 압록강철교에서 바라본 신의주. 워터슬라이드 모양의 새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한국어깨동무사역원

단동에서 이뤄지는 북-중 교역은 2008년 20억 달러에서 2011년 63억 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북-중 교역의 80%가 단동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또한 북한을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이 2008년 10만명에서 2011년 15만명으로 늘었다. 북한의 경제 개방은 신의주를 통해서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 많기에 신의주 맞은편 도시 단동에 더욱 눈길이 갔다.(계속)

*정지원/ 한국어깨동무사역원 미디어 담당

정지원  mogid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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