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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백지은씨가 북한에서 경험한 절망과 희망8. 13~20.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생 23명과 함께 방북한 백지은씨 인터뷰

지난 13일 부터 20일까지 미국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학생들 23명과 폴 허로우 매사추세츠주 의회 하원의원을 포함한 방문단이 북한을 1주일간 방문했다. 이번 방북을 기획총괄한 백지은(26)씨를 구글행아웃(구글메신저)을 통해 만났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고향이 북한인 것을 알고 난후 북한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백씨는 하버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부시절부터 북한인권동아리 H-rink를 설립해 활동을 해왔다. 구글에서 2년간 일하다가 외교를 통한 공정분배에 관심이 많던 그녀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

케네디스쿨 학생들은 여름방학이면 세계 여러 나라를 직접 방문해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등을 리서치한다. 케네디스쿨이 북한 방문을 시작한 건 지난 2011년. 북한의 정치, 경제, 역사를 공부하던 동아리 친구들 중 일본 국적 친구가 처음 북한답사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다. 그후로 3년간 케네디스쿨 학생들은 20여명씩 팀을 꾸려 꾸준히 북한을 방문해왔다.

   
▲ 평양의 길거리에서 더위를 피해 쉬고 있는 북한주민들.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백지은

백씨에게는 이번 방북이 처음이다. 학부 때부터 북한인권 운동을 했고 구글에서도 직원들에게 북한 실상을 꾸준히 알려왔던 백씨에게 북한은 꼭 한번 밟아보고 싶은 땅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백씨의 비자를 거절했다. 백씨가 평소에 블로그를 통해 쓴 북한인권 관련 글들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던 북한이 갑자기 지난 9일 그녀에게 입국을 허용했다. 아직도 백씨는 왜 자신에게 북한이 입국을 허용했는지 내막을 모르고 있다.

“사실 순안공항에서부터 많이 긴장했어요. 입국수속도 오래 걸렸고 속으로 많이 긴장했어요. 7일간 북한을 여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금수산기념궁전이었어요.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하고 나오는 북한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만약에 할아버지가 계속 북한에 남아 계셨더라면 나도 북한에서 태어나 저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을 모르고 거짓 신을 섬기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구요."

   
▲ 금수산기념궁전 앞에서 북한 어린이들과 함께 했다. ⓒ백지은

북한의 평양, 개성, 판문점, 원산, 함흥을 돌아보면서 백씨는 ‘마치 꿈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탈북자 친구들로부터 말로만 듣던 곳을 직접 경험해 보니 충격이 컸던 것이다. 그리고 미국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말하는 북한과는 달리 실제 북한은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도 했다.

"지금까지 내가 듣고 알고 있던 북한과 실제 북한은 많이 다른 것 같았어요. 일주일간 수많은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가이드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들은 외부세계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는 눈치였어요. ‘하버드대학교는 빨간 벽돌이예요?’ ‘지은 동지는 몇 개 나라를 여행하셨어요?’ ‘여행했던 나라 중에 어느 나라가 제일 좋았어요?’ ‘미국에는 조선 사람들이 많이 살아요?’ 등 수많은 질문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 휴일 모란봉공원 풍경. 북한 주민들과 외국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백지은
   
▲ 인민대학습당에서 전자도서를 검색하고 있는 북한 주민. ⓒ백지은

북한 땅을 직접 밟으며 북한이 바뀔 거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도 했다.

“‘그 땅이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북한땅에 있는 일주일 내내 들었어요. 지금도 그렇게 기도하고 있어요. 내가 만난 탈북자들 99%가 하나님을 만나서 그들의 삶이 바뀐 것을 보았기 때문에 북한 땅도 하나님을 만나면 바뀔 것 같다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어요. 미국 사람이건 조선 사람이건 사람은 사람이니까요. 우리는 자꾸 만나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야 해요.”

백씨는 북한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또 가고 싶다고 밝히면서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일과 북한과의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활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백씨와의 인터뷰 전문.

Q. 이번 방북 목적은 뭔가?
2010년부터 케네디스쿨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북한 방문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케네디스쿨에 북한 문제에 대해 공부하는 대학원생 동아리가 있다. 이 학생들은 북한의 정치, 경제, 역사에 대해서 공부한다. 그 친구들 중에 일본계 미국인 친구가 처음 케네디스쿨 북한 방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시작하게 되었다. 케네디스쿨 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세계의 많은 나라를 방문한다. 그중에 어떤 팀은 남한에 가는 팀도 있고, 중국, 일본,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팀들도 있다. 이번에 북한을 방문한 팀도 그러한 팀들 중 한 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에게 이번 북한 방문은 처음이다. 이번에 방문한 24명의 케네디스쿨 학생들 모두가 첫 방문이었다. 안내해주는 북한의 여성 가이드 말에 의하면 해마다 6만 명의 관광객이 북한을 방문한다고 한다. 내가 봤을 때 관광객들 중 유럽인들이 가장 많았다.


Q. 방북 도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사실 제일 처음엔 긴장했다. 일단 순안공항에서 많이 긴장했다. 왜 이렇게 입국 수속이 오래 걸리는지 속으로 많이 긴장되기도 했다. 숙소는 평양의 중심지에 있는 양각도호텔에 묵었다. 처음 북한을 방문했는데 북한 사람들과 엄청 많은 말을 했다. 엘리베이터에서도 말을 하고 일주일 동안 한국말로 애교섞인 말투로 여러 가지 말을 많이 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말끝마다 북한 사람들은 우리는 한 민족이고 북한의 여러 가지 악순환은 통일이 되어야 해결이 된다고 강조한 부분들이다. 우리 일행은 평양, 원산, 개성, 판문점, 함흥을 돌아보았는데 북한의 수도인 평양보다 지방인 원산이나 함흥에 내려갈수록 일반 주민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어서 의미가 깊었다.

   
▲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학생들이 북한쪽 판문점을 방문해 경비병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백지은
   
▲ 원산 바닷가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는 북한 주민들. ⓒ백지은

나에게 인상 깊었던 장소는 금수산기념궁전이었다. 처음에 그곳을 들어갈 때 장엄함을 느꼈다.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도 나고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나는 미국이라는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서 할아버지 때부터 믿던 하나님을 믿고 지금 이렇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데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오로지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람을 믿고 살아야 하는 북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도 미국이 아닌, 남한이 아닌, 북한에서 태어났으면 저 사람들처럼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은 멈출 수 없이 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금수산기념궁전에서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하염없이 울고 있는 나에게 북한의 여행가이드는 왜 그렇게 우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 눈물의 의미를 북한 가이드에게 그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생 처음 거짓말을 했다. 남자 친구와 헤어진 것이 슬퍼서 우는 거라고. 전쟁기념관에서 미국에서 온 우리들에게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이 저지른 만행을 보여주는 사진 자료들을 대할 때 많이 힘들었다. 미군에서 10년을 넘게 군인생활을 했던 동료가 있었다. 북한의 일방적인 미군 비하 발언이 매우 힘들었지만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많이 참았다.

Q. 함께 방북한 사람들과 가장 많이 얘기한 건 뭔가?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함께 북한을 방문했던 동료들은 금수산기념궁전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지구상에 어떻게 금수산기념궁전과 같은 곳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원산 바닷가를 걸을 때 긴장도 덜하고 시골이니까 가이드들의 눈치도 덜 받고 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Q. 개인적으로 이번 북한 방문이 갖는 의미라고 한다면?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깨는 시간이었다. 북한에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가이드가 아닌 일반인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바닷가에서, 모란봉공원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미국에 대해, 그리고 외부세계에 대해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보스턴의 하버드대학교는 정말 빨간 벽돌인지, 여행은 어떤 나라들을 다녀봤는지 등등의 질문들을 하는 것을 보았다. “지은 동지는 몇 개 나라를 돌아보았고 어느 나라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까?” 등의 질문들을 많이 받았다. 얼굴보고 이야기하면 누가 볼 것 같아서 서로 먼 산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 백지은씨가 판문점 북측에서 찍은 사진. ⓒ백지은

나도 그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당신은 어느 나라에 가고 싶은지?’ ‘가고 싶은 나라가 있으면 왜 가지 않는지?’ 그들의 대답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똑같았다. 통일이 안되기 때문에 자기들이 여행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통일이 되기 전에도 여행을 갈 수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들은 허락을 받을 수 없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외부세계에서 말하는 북한과 북한 내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북한은 실제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 사람도 사람이고 인간이라는 것을 느꼈다. 실제로 이번 여행에서 함께 동행했던 북한 안내원 중 한 남성이 나를 좋아하는 눈치였다. 북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들은 한민족이라는 것을 재차 강조하면서 통일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통일이 되어야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이야기했다. 북한 사람들의 통일의 진정성에 대해서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미국에서는 국무부에서 외교를 하는 사람들도 북한 사람들을 많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무시를 하면 자존심이 강한 북한 사람들이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다. 미국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백인 아저씨가 어깨에 힘주고 북한에 가서 이것 잘못했고, 이것 잘못했다고 이야기하면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와 상관없으니 이 땅에서 나가라고 할 것이다.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역사를 알아야 하고 지역관계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한반도 문제는 어렵다.

Q. 이번 방북 경험을 통해 향후 북미관계에 훈수를 둔다면?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 중간에는 남한이 끼어 있다. 북한과 남한의 중간에는 중국이 끼어 있다.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가 있다. 만약에 이러한 관계들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북미관계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북한과 미국은 서로를 싫어하는 관계이다. 서로에 대해 신뢰가 없다. 내가 북한 편을 드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북한이 왜 주체사상을 선택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중국과 러시아의 대국 가운데서 살아남으려니 주체사상을 통해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길을 가려고 한 것 같다. 북한이 경제 개방을 하면 정치 개방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향후 2년 내지 3년 동안 북한의 경제가 개방을 하고 나면 미국과의 정치외교적인 관계도 서서히 발전할 것 같다.

Q. 끝으로 개인적인 소회를 다시 한번 정리해 달라.
그 땅이 하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북한 땅에 있는 일주일 내내 있었고 지금도 그렇게 기도하고 있다. 내가 만난 탈북자들 99%가 하나님을 만나서 그들의 삶이 바뀐 것을 보았다. 그래서 북한땅도 하나님을 만나면 바뀔 것 같다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다. 또한 사람은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든 좋아할 수 있고, 웃을 수 있다. 미국 사람이든 조선 사람이든 사람은 사람이다. 그리고 내가 느낀 것 하나는 정치가 어떻게 사람을 악하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정치는 어떻게 다른 사람을 짐승으로 만들 수 있는지도 깊게 느끼게 되었다. 정치에 큰 힘이 있는데 잘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박요셉/ 2004년 탈북, 건국대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강의 활동 외에 창업 준비를 하고 있다.

박요셉  genesis45v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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