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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 사건, 그것은 한 편의 법정드라마였다변호인, 신부, 목사, 탈북자, 조선족, 그리고 법정이 만든...

22일 오전 11시 30분 서울중앙지법 502호 법정. “공소사실 전반에 있어 거의 유일한 증거가 여동생 진술인데 진술거부권이나 변호인 접견권을 공지하지 않은 것은 증거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고….” 이범균 재판장의 긴 설명에 이어 유우성 피고인에 대해 “국가보안법 무죄, 여권법 등 일부 유죄,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선고가 떨어지는 순간 장경욱 변호사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렀고,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검사석은 조용했다. 아무도 나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 22일 오후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유우성씨가 호주 친구인 마커스 벨과 감격의 포옹을 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수년간 천주교 내 탈북자 모임인 영한우리를 지도해온 김권순 신부는 “하느님께 우성이를 내보내달라고 그렇게 기도했는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법원 판결은 증거사실로 봤을 때는 당연한 결과지만 그동안 ‘탈북자 간첩사건’이 대부분 비합리적인 판결이 많았기에 재판정에 들어서는 변호사들이나 방청객도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였다.

2주 전 열린 탈북 여간첩 이모씨의 경우도 병원으로부터 정신장애 진단을 받았음에도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유죄를 그대로 인정해버렸던 것이다. 그 사건을 맡았던 장 변호사를 비롯한 몇몇 변호사들은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이러니 앞으로 국가보안법 사건은 무죄가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었다. 심지어 “앞으로 다시는 공안사건을 안맡겠다”고 공언하는 변호사도 있었다. 이 같은 법원 분위기를 감안했을 때 유씨 사건도 유죄가 날 거라고 봤던 것이다. 변호사들은 이날 상심한 마음을 낮술로 달랬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인단의 김용민 변호사는 이번 판결과 관련 “법리적 관점에서는 무죄를 확신했는데 국가보안법 사건이 우리 사회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다 보니 불안한 마음이 없진 않았다”며 “판사들이 증거에 입각해 원칙대로 판결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은 탈북자 국가보안법(국보법) 사건에서도 획을 긋는 역사적인 판결로 기록될 것 같다. 그동안 탈북자 국보법 사건을 전담하다시피 해왔던 민변에서 1심 무죄를 받기는 사실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피고 탈북자가 혐의를 시인하거나 1심에서 패소한 뒤에 민변에 사건을 의뢰해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우성씨 사건의 경우는 피고 유씨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자신의 혐의를 강하게 부인해왔다.

변호인들의 증거수집 노력 또한 이번 무죄 판결에 결정적이었다. 변호인들은 반대 증거 수집을 위해 서너 차례 중국엘 다녀오거나 거의 매일 서울구치소로 유씨를 접견했다. 유씨는 출소 뒤 거의 매일 자신을 접견온 양승봉 변호사에 대해 “교도관들이 ‘SK나 CJ 회장 접견도 1주일에 2~3번 오는데 어떻게 매일 접견을 올 수 있냐’며 감탄해 했었다”고 전했다. 덕분에 유씨는 구치소에서 유명세를 탔다. 유씨가 머물던 0.8평 독방도 유명인들이 거쳐갔던 곳이다.

법정에서 유씨의 알리바이를 용기있게 증언한 조선족, 탈북자들도 재판부의 마음을 움직였다. 물론 이들 뒤엔 수년간 탈북자들을 헌신적으로 보살펴온 천주교의 김 신부, 개신교의 구윤회 목사가 있다. 이들은 탈북자가 남한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가르쳐왔다.

구 목사는 “재판 하루 전인 21일 서울구치소 접견갔을 때 ‘다시는 구치소에서 보지 말자’고 했는데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며 “저야 우성씨와 친분이 있지만 우성씨와는 아무런 친분이나 관계도 없는 변호사님들이 헌신적으로 이 사건을 맡아줘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했다.

오후 1시 40분쯤 양 변호사 등과 함께 서울구치소 정문을 걸어서 나온 유씨는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변호사님들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셔서 이렇게 설 수 있었다”며 “앞으로 열심히 보답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 22일 서울 거여동 집으로 돌아온 유우성씨가 중국의 여동생과 통화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검찰의 항소 가능성에 대해서도 유씨는 “이제 내가 직접 친구들, 중국 지인들에게 부탁해 나와 관련된 자료를 요청할 것”이라며 “훨씬 세세한 무죄증거가 늘어나는 만큼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들도 “1심에서 공소사실을 뒤집는 반대증거가 명백한 만큼 만일 항소를 한다고 해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유씨와 함께 8개월간 살았었다는 호주인 마커스 벨(호주국립대 박사과정)씨는 “우성이 구속소식을 호주에서 접했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이번 사건으로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더 안좋아졌는데 이번 판결을 계기로 탈북자들이 용기를 내고 탈북자에 대한 인식도 다시 좋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벨씨는 “이번 판결을 보며 한국 법제도(legal system)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심재원(전 민변 통일위원장) 변호사는 “국정원이 이렇게까지 자기 역량을 총동원했는데도 이걸 무죄로 깬 건 엄청난 사건”이라며 “국정원 내부 문제를 통한 개혁은 물론 시민사회, 법조계에도 큰 파장을 몰고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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