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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방청석에 앉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오랜만에 공개 재판으로 진행된 '간첩조작사건’ 증인신문을 지켜보면서

'국정원 탈북 화교남매 간첩조작사건' 재판(재판장 이범균)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검찰의 공소사실을 뒤집는 결정적인 증언들이 잇따르고 있다. 판결은 매주 1~2차례 증인 신문, 다음달 5일 피고의 최후변론과 검찰의 구형을 거친 다음 8월 쯤 최종 판단이 나올 예정이다. 이번 재판에서는 드물게 공개로 진행된 지난 6월 17일 증인 신문 과정과 내용을 방청석에 앉아서 지켜본 소감을 담아봤다.

17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서관 502호. 이날은 경호원들로도 모자라 복도 의자로 법정 앞을 봉쇄하던 평소 비공개 재판 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복도 의자는 제자리에 반듯하게 치워져 있었고,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하던 경호원들도 이날 만큼은 얌전했다. 변호인 쪽 법정 증인으로 나선 이모씨와 지모씨가 공개 재판을 요구한 게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비공개로 바뀌기 전만 해도 2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방청석은 거의 만석이었다. 그만큼 사회적 관심이 큰 사안이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재판부가 '국가의 안녕질서 등을 위해 재판을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법원조직법을 근거로 재판을 비공개로 전환하는 바람에 기자들이나 지인들이 법정 입구에서 발길을 돌리거나 아예 법정을 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거의 한 달 반만에 공개된 법정 방청석엔 기자, 지인 등 10여명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건 관련 때문에 법무부로부터 체류 연장을 받은 유씨의 여동생도 방청석을 지켰다.

그동안 유씨 여동생을 비롯해 여동생과 국정원 수사관들의 대질, 탈북자 증인 등 여러 차례의 신문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비공개로 진행된 탓에 내부 분위기나 진술 내용 등은 일체 알려지지 않았다. 헌법이 보장한 ‘공개 재판’도 진행하지 못할 만큼 중대 사안이라고 검사와 재판부는 판단했지만 국민의 알권리와 재판의 신뢰성은 그만큼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변호인도 검사도 판사도, 그리고 방청객들도 하나같이 이날 증인의 입에 쫑긋 귀를 세우는 긴박감이 법정을 가득 채웠던 이유다.

먼저 증인석에 앉은 사람은 지모씨. 탈북자인 지씨는 2011년 6월 19∼26일 서울신대 북한선교연구소와 기독교북한선교회 등이 공동 주최한 동서독 통일 현장 답사 때 유씨와 함께 참여했었다. 이후 독일에서 중국을 경유해 한국에 올 때 지씨는 곧바로 귀국하지 않고 유씨 등과 함께 중국에 며칠 머물렀었다. 이 때문에 ‘7월 초순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넘어갔고 다시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 왔다’는 검찰의 공소사실과 관련해 피고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는 유력한 증인 중 한 명이 바로 지씨다.

지씨는 증인 신문에서 “7월 초 연길에서 유씨를 만났고 이후 심양, 홍콩을 거쳐 귀국할 때도 유씨와 가끔 문자를 주고받았다”고 밝혔다. “얼마나 자주 문자를 주고받았냐?”는 검사의 질문엔 “하루에 한 번 정도”라고 답했다. 이외에도 지씨는 2011년 독일 답사 때 알게 된 유씨와 행사장에서 몇 번 만났고 일상적인 내용의 문자를 주고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7월 초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공소사실을 반박하는 증언인 셈이다.

이어서 변호인 쪽의 두 번째 증인으로 이씨가 들어섰다. 이씨는 유씨의 조선족 지인으로 현재는 국내에 체류하면서 대형 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변호인 신문에서 밝힌 이씨 가족과 유씨 가족이 친해진 사연은 이렇다. 이씨는 2006년 자신이 중국 연길에서 특산품 가게를 할 때 손님으로 찾아온 유씨를 처음 알게 됐다. 이후 유씨를 통해 여동생과 아버지도 소개받았고, 평소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이씨의 호의 때문에 유씨 가족과 이씨 가족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유씨 가족은 화교 신분을 활용해 평소 중국에서 물건을 싸게 사서 북한에서 되파는 방법으로 일을 해왔다. 유씨 여동생이 중국에 올 때마다 친척보다 이씨의 집에 머물 만큼 사이가 좋았다. 이씨가 남편 등 가족들과 한국에 갔을 때는 유씨 집에 머문 적도 있었다.

이씨는 법정 진술 과정에서 검찰의 핵심 기소사실 두 가지를 뒤집는 설명을 했다. 앞서 지씨 증언 과정에서 드러난 2011년 7월 초 유씨가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탈출했다는 검찰의 기소사실과 관련 이씨는 “(피고가) 독일에서 돌아온 뒤 우리 집에 머물면서 새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며 “유씨가 현지 사정을 잘 모르니까 내가 아기를 데리고 주위를 많이 다녔지만 집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최소 3일 이상 유씨와 집을 구하러 다닌 게 맞나?”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이씨는 “맞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정황도 설명했다.

이씨에 따르면 유씨는 독일에 다녀온 뒤 6월 말경 저녁 연길에 도착했다. 이씨의 남편이 차를 몰고 유씨를 태워왔다. 그 전부터 이씨는 유씨에게 ‘집에 초청하겠다’는 말을 여러 번 했었고, 집에 방도 여러 개 있고 해서 유씨를 머물게 했다. 유씨는 7월 초, 이씨 가족과 함께 이씨 남편이 경영하던 광산의 공장에 간 적도 있다. 유씨가 좋아하던 양고기를 통째로 잡아 하루종일 먹으며 논 적도 있다. 7월 7일엔 유씨의 여동생과 아버지가 중국으로 이사를 나온다고 하는 날이어서 이씨는 남편, 유씨와 함께 아침 9시경 삼합세관엘 나갔지만 아버지와 여동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때 유씨는 굉장히 실망한 채 다시 이씨의 집으로 돌아왔다. 이씨의 이 같은 진술은 ‘유씨가 7월 초에 두만강을 건너 북한에 갔고 다시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왔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완전 뒤집는 것이다.

검찰의 또 다른 공고사실엔 2012년 설 전날인 1월 22일경 유씨가 연길을 거쳐 북한으로 탈출했고, 24일 중국으로 다시 넘어왔다고 돼 있다. 하지만 변호인 쪽은 지난해 설날인 1월 23일 이씨 가족과 유씨 가족이 노래방에서 함께 노래 부르는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며 “2012년 1월 23일 중국 노래방에서 유씨네와 함께 논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이씨는 “그렇다. 같이 놀았다”고 답했다. 다음날인 24일엔 이씨, 유씨 가족이 노래방 근처 스탠드바에 가서 놀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씨는 “유씨가 곧 한국으로 돌아가니까 설 연휴 내내 노래방, 스탠드바 등에서 계속 놀았다”고 설명했다. 1월 25일 유씨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엔 이씨가 직접 공항까지 운전을 해서 바래다주기도 했다. 22일엔 유씨가 한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이씨에게 전달했다. 따라서 설 전날인 22일부터 25일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유씨를 봤거나 함께 있었다는 게 이씨의 증언이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27일 여동생 긴급기자회견에서도 변호인 쪽은 ‘2012. 1. 23’ 날짜가 박힌 유씨 아버지와 유씨, 여동생이 중국에서 함께 찍은 대형 벽걸이 사진을 공개한 바 있다. 1월 22일부터 24일까지 북한에 있었다는 검찰 기소사실이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밖에 이씨는 신문 과정에서 국정원 수사관들의 강압과 협박 사실도 털어놨다. 이씨는 1월 10일경 유씨가 국정원 수사관들에게 체포될 때 함께 있었다. 중국의 가족들에게 보낼 선물을 유씨 편에 부치기 위해서였다. 이씨가 “이른 아침, 양말도 안신고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채 조사를 받았다”고 말을 이어가는 순간, 갑자기 재판장이 증인을 향해 “너무 장황하게 얘기해서 증인이 뭘 얘기하는지 모르겠다. 단답형으로 답하라”고 요청했다. 통상 증인 신문 과정에서 재판장이 간여하는 경우는 있지만 증인의 답변 형식을 문제 삼는 것은 이례적이란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자칫 답변 형식 때문에 증인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증인의 증언 자체마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사의 황당한 질문이 방청객들의 야유를 사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검사는 반대신문에서 이씨에게 “압수한 피고의 USB에 증인과 피고가 팔짱 낀 사진이 있던데?”라고 물었고, 이씨는 머뭇거림없이 “맨 처음 한국 왔을 때 롯데월드에서 찍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검사가 “혹시 증인의 사생활 때문에 그러는데 신문을 비공개로 할 의향이 없는가?”라고 물었고 이씨는 “괜찮다. 그냥 공개로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방청객들이 “야” “너무하다”는 말들을 검사를 향해 쏟아냈다.

이씨는 또 유씨 아버지와의 통화 내용을 문구 그대로 국정원 수사관들이 제시한 점을 들어 “전화가 도청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고, 지난 4월 27일 유씨 여동생 기자회견 후엔 국정원 수사관들이 근무중인 회사로 찾아와 강제로 수사를 하려 했다는 사실도 밝혔다.

이씨는 또 국정원,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공포감을 느꼈고, 그에 따라 사실 관계가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잘 설명하지 못한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유씨가 체포된 뒤 한 달 가량 외부 전화는 일체 받지 않았다는 사실도 토로했다.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란 것.

당시 이씨는 변호인의 전화도 거절했을 정도로 공포에 시달렸다. 이에 대해 이씨는 “국정원 수사관들이 또 보자고 하는 줄 알고 안만난 것”이라며 “나중에 변호사인 줄 알고 사실을 말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씨가 국정원에 대한 공포, 외국인 신분으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증인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결정적인 힘은 변호인을 통해 확인한 유씨 여동생의 진술서였다. 이씨는 “내가 분명히 백화점에서 노스페이스 옷을 사줬는데도 ‘사준 적이 없다’고 해놨고, 오빠(피고)가 북한에 여러 차례 드나들었다는 내용을 보고 용기가 생겼다. 걔(여동생)가 한 거짓말 때문에 유씨가 잡혀갔다고 생각해서 바로 잡기 위해 나서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동생은 지난 4월 27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국정원 수사관들의 회유와 강압에 의해 거짓 진술을 했던 것"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

지씨와 이씨의 증인 신문이 끝나자 변호인과 지인들은 “잘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교도관들의 안내를 받고 법정을 빠져나가는 유씨의 얼굴도 모처럼 환해보였다. 하지만 지씨와 이씨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라며 오히려 쑥스러워했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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