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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쥬빌리코리아 기도큰모임 메시지우리에게 응한 여호와의 은혜의 해

2013 쥬빌리코리아 기도큰모임 메시지
설교자: 화종부 남서울교회 목사
제목: 우리에게 응한 여호와의 은혜의 해
성경 본문: 누가복음 4:16~21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가난한 자나 실패한 자나 힘이 없는 자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 세상은 끊임없이 성공과 돈과 권력의 신화를 찍어낸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이 없던, 유용하거나 성공하지 못한, 실패하고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자들에게 구주의 마음은 기울어 계셨다. 그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싶어하신 것, 그것이 구주가 이 땅에 오셔서 가장 하고 싶으셨던 일이다.

이 땅에서는 부자든 가난하든, 유능한 사람이든 실패자든 모든 사람의 실존 자체가 가난이다. 참된 부요와 존영과 영광에 대한 안목을 잃어버리고 이 땅에 잠시 쓰다가 두고갈 것에, 부와 명예와 성취에 마음을 빼앗겨 살아가지만 실은 모든 사람이 가난한 자들이다. 주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러 오셨다.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의를 믿고 있을 때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을 향해서 마음을 기울이셨다. 부하고 능한 자들보다 자신의 상함을 아는 자들을 위해 이 땅에 오셨다. 병자와 가난한 자와 죄인들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조국 사회는 어느 때보다 더 부요하고 풍성한 세상이지만 조국 사회 구석구석에 가난한 사람들, 하나님과 사람을 향해 심령이 상할 대로 상해 있는 가난한 자들을 볼 수 있다. 북녘 동포들은 여전히 육체적으로 가난하고 배가 고픈 실존적 가난 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이방나라로 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사야 61장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신다’고 되어 있다. 이 조국에 지금 심령이 상한 자들이 얼마나 많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패하고 넘어지고,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자신에 대해, 믿었던 사람들에 대해 실망하고 좌절한 채 심령이 상하고 곤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조국 교회의 크리스천들도 예외가 없다. 신뢰했던 목회자들로 인해 곤고하고 아픈 게 우리의 현실이다. 뉴스 지면을 장식하는 수많은 소식들이 우리의 심령을 상하게 한다. 북녘 청소년들이 또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야 하는 고통스런 현실은 우리 맘을 상하게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조국 사회의 현실이다.

선진국 대열에만 들어가면 우리의 삶의 질이 달라질 거라고 봤지만 피부로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청년실업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고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기 삶을 접어야 하는 게 바로 우리가 처한 실존적 현실이다. 오늘 본문은 그런 우리를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다. 마음이 상한 자를 위해 주님이 오셨고 그 상실감은 주님이 우리 맘을 만질 때만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위로는 이 땅을 떠날 때 얻는 게 아니다. 주님은 상한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외면하지 않으신다.그것이 주님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신다.

조국 교회는 어느 순간부터 말 잘 듣는 특별한 사람들만 사랑하는 것 같은 신화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해 왔다. 공부도 잘하고 능력도 있고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사람을 길러내면 조국 교회가 이 땅에서 영향력 있을 거라고 믿었던 신화가 지난 30년의 시기다. 어느 때보다 훌륭한 지도자들을 많이 갖고 있는 조국교회, 수많은 국회의원, 법조인, 학자들을 신앙인으로 갖고 있지만 조국 교회는 힘 한번 쓰지 못한 채 주저앉고 있다. 우리의 마음과 관점이 허망한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이 왜 오셨나? 우리처럼, 북녘 동포처럼 심령이 상한 자들, 믿을 게 없는 자들,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마음이 상한 자들, 그런 우리를 위해 오셨다. 지금은 소망을 끊을 때가 아니다. 그런 구주를 향해 눈을 들고 소망과 기대를 새롭게 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최근 많은 후배 목사들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다. 주로 교회나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인 얘기들이다. 교회사 어느 페이지를 넘겨봐도 어느 때고 한 세대를 넘어 두루두루 하나님께 쓰임받는 시대가 있었나. 하나님만이 영원토록 변함없이 교회나 사람들을 쓰실 뿐이지 사람 속에 교회 속에 특별한 게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세대와 교회를 사용하시고 그들을 들어서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만이 시대와 변함없이 신실하시다. 많은 사람들이 조국 교회를 향해 부정적인 얘기를 쏟아놓는 이 시대에 우리는 인생들을 보며 낙심하고 좌절할 게 아니라 우리의 심령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위로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다.

인생이 어떻게 대안이 될 수 있나.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질고와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구주야말로 유일한 기대와 소망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눈이 그분께 향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람을 찾는다. 구주께 눈을 맞추는 것,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부르심이고 시급한 과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욕망과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들의 도구로 살아간다. 말씀을 그렇게 많이 들으며 살면서도 세상의 종으로 살아간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들어 대가를 지불하기보다, 되도 않는 길을 가기보다 세상이 말하는 옳다고 여기는 길, 빠른 길을 가면서 조국 교회가 경건의 능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다. 정치 탓이 아니다. 교회와 성도가 끊임없이 욕망과 자아의 포로가 되어 있다. 어지간히 잘 믿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들 속에 자아가 깨지고 무너져서 정말 남들의 종이 되려고 하는, 하나님의 주인 되심이 살아나는 성도들 보기가 너무나 어렵다.

눌림과 상함과 끝없는 종살이는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실체다. 이렇게 부요하지만 위로가 없는, 사막처럼 다 말라 비털어진 이 조국 땅은 진정한 성도를 기다린다. 진정한 변화가 외부로부터 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성도의 부흥과 변화가 와야지만 이 조국은 참된 부흥과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은 죄가 왕노릇하는 곳이다.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바람을 잡을 것 같은 일에 허비하게 한다. 하지만 구주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신다. 이 은혜의 해란 안식년이 7번 반복된 이후 50년째 되는 해, 곧 희년이다. 그 희년엔 모든 빚진 자들의 빚을 다 탕감해준다. 어떤 이유에서건 종이 되고 노예가 되었는데 다 존귀와 소유, 자유를 얻게 되는 것, 참된 부요와 넉넉한 영광을 회복하는 게 바로 희년이고 은혜의 해다. 지금까지 종으로 살았든지 가산을 탕진했든지 모든 사람들이 희년이 되면 자격과 요건과 일한 것에 근거하지 않고 존귀와 영광의 신분을 회복하고 원래 하나님이 주셨던 언약백성의 존귀를 회복하는 게 바로 희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어느날인가 오늘 본문을 묵상하는데 가슴에 뜨거워졌다. 우리의 자질이나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의 문제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우리의 수많은 실패와 약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말이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언제 복을 받을 만하고 은혜 받을 만해서 복을 받은 적이 있나.

이 세상에서 분단되어 쪼개진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이 쪼개진 세상에 주님은 당신의 몸을 찢음으로 세상과 하나님, 피조물과 창조주를 연합되게 하셨다. 이 영광의, 은혜의 시대에 남과 북이 쪼개져 있고, 동서가, 세대가 쪼개져 있다. ‘그 은혜의 해가 오늘 너희에게 임하였다’는 말씀은 그 은혜의 해가 지금 분단된 남과 북에 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정치적 세상논리가 아닌 말씀으로 확신하는 성도들로 인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이 약속을 견고히 붙들고 한치의 머뭇거림없이 새시대로 나 자신은 물론 한국교회와 남한과 북한, 나아가 중국과 열방이 들어가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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