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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전문 국회의원의 ‘경솔’ 유감일본이든 북한이든 상대를 향한 일방적 행동보다는 대화와 교류가 먼저

4월 26일 일본 아베 수상의 ‘침략’에 관한 발언은 경솔했지만 그에 대한 한국에서의 대응은 한층 더 경솔했다. ‘한국 국회의 일본 규탄 결의안 불발 코미디'는 매우 유감스러운 사건이었다. 한국 국회는 29일 일본 아베 내각을 규탄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본회의를 통과할 수는 없었다. 의결 때 남아 있던 의원수가 과반수 151명에 크게 못 미친 70명이었던 것이다. 일련의 모습을 본 일본에서는 ‘기분으로 모든 것을 진행시키고 기분으로 멈추는 한국’이라는 싸늘하고 모멸에 찬 눈으로 한국을 볼 만한 결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며칠 전이던 24일 이런 기사가 있었다. 외교통상통일위원회의 전체 회의에서 민주통합당 홍익표 의원은 이번 달 21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아소 부수상 등 각료 3명에 대해서 입국 금지를 요구했다. 홍 의원의 행동은 일본의 매스컴에도 많이 다루어졌다. 다른 의원이면 나는 무시했겠지만 홍 의원이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로 있을 때 그에게서 한 학기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의 그의 행동은 매우 유감스러운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일본에서 국회의원 출마 준비를 위해 비서관을 했을 때 받은 국회의원에 대한 인상은 두 가지다. ‘일반 국민보다 국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긍정적 부분과 ‘정치가는 역시 직업이다’라는 현실이 그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정치가라는 인상에 대해서는 별로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들이 항상 생각하는 일은 국가의 미래와 동시에 ‘다음의 선거’이다. 국가의 발전이라는 공적인 과제와 개인 생활의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활동을 한다. 다만 일반 국민보다 공적인 의식을 높이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존경해야 할 부분도 많다. 일반 국민들이 무책임하게 국회의원을 비판하면 안 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내가 지금과 같이 한국이라는 외국에 있으면서 양국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국내 사정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정치가는 양국 다 국내를 향해서 활동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외교적으로 충분한 스킬을 갖지 못한 정치가들은 상대국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하다. 일본은 한국에, 한국은 일본에 그렇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일련의 역사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의 無이해는 예를 들면 이런 일이다. 일본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선전 포고한 일본 제국을 긍정적으로 보는 일반 국민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런 일본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재차의 침략을 노리는 나라’라고 한다. 이것은 일반의 국민에게 ‘한국은 일본을 하나도 이해하고 있지 않다’라는 것을 전하는 말 이외에 다름이 아니다.

그런 이해가 없는 배경에서 한국이 재삼 요구하는 전쟁에 대한 보상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과거의 일’이다. 그것은 전쟁을 긍정하기 때문이 아니고 일본에서는 ‘한일기본조약은 개인 보상도 포함해서 전후 보상을 해결 완료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뀌기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한일조약은 1965년 한일 수뇌가 체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대통령이 인정한 것을 이제 와서 무효로 해서 문제를 되풀이한 일은 일본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일본의 태도를 불만스럽게 보고 ‘역사 인식의 문제’를 외친다. 이것은 “왜 바보 같다고 하느냐?”라고 분개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바보 같기 때문에 바보 같다”고 하는 말을 반복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논의가 될 리가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일본의 태도가 올바르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권에 있는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한국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결코 긍정하지 않는다.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있어선 안 될 일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지배가 잘못된 일이었던 것은 일본의 야망이 부수어진, 패전을 봐도 분명하다. 무조건 항복을 하는 것 외에 방법은 없었을 만큼 악함이 가득 차 있었다.

역사의 흐름을 봐서 독도가 한국 영토라고 생각하는 것에도 이의는 없다. 단지 그것에 의한 어업권 등의 문제는 사람의 생활에 관련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서로가 이야기해 주었으면 한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도 공개되는 정보가 다 올바르다고는 하지 않지만 적어도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의심할 생각은 없다.

이것들을 나는 일본과 한국을 왕복하면서 사람을 통해서 문화적으로 배웠다고 말할 수 있다. 정치가 강조했기 때문에 얻은 결론이 아니다. 교과서에 어떻게 써 있는지가 문제가 아니다. 양국 국민이 서로 교류하는 것으로 상대의 입장과 사고방식을 이해해서 자신이 문제가 있으면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런 원리이다.

필자가 홍익표 의원에게 ‘그의 행동은 매우 유감스러운 것이다’라고 한 이유를 마지막으로 정리해 보고 싶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기둥으로서 ‘대화’를 들고 있다. 이것은 국제적인 흐름으로 보아도 인간적으로 생각해도 문제가 없는 기본자세이다. 개인이어도 단체여도 문제가 악화되고 있을 때 해결책은 대화와 교류 이외에는 없다. 거절이나 무시는 문제를 단절에 끝나지기 위해서 일으키는 것이다.

북한 연구자란 북한과의 관계를 맺고 통일로 향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상대가 북한이 아니고 일본이라도 ‘입국 금지’를 제의하는 일은 경솔한 행동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파트너이지 적이 아니다. 홍 의원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활동에 참가하는 등 일본의 과거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에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그 해결 방법을 숙고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오히려 대화를 진행시키는 방법으로, 아니면 같은 의견을 가지는 일본인과의 적극적인 교류 등 방법은 여러 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일본뿐만 아니라 북한을 향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 교토대 졸업, 동국대 북한학 박사과정>

 

와다 신스케  nohos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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