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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허위자백 뒤집는 데는 몇 시간이면 충분했다유씨 여동생, 26일 법정에서 풀려나 27일 긴급기자회견 할 때까지 1박 2일 동행취재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국가정보원 탈북화교남매 간첩조작사건’(유코리아뉴스는 이 사건을 지금까지 써왔던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대신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의 절대적 증인인 피고 유씨의 여동생이 탈북자 대상 조사기관인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서 풀려나 기자들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본보는 지난 26일 오후 여동생이 합신센터에서 풀려나 자유로운 몸이 되고, 27일엔 “합신센터에서의 모든 진술은 협박과 회유에 의한 거짓이었다”는 기자회견을 하기까지 드라마틱한 1박 2일을 동행 취재했다. 26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부터 시작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에서 변호사들, 중국인 지인과의 만남과 대화, 이튿날 기자회견과 기자회견 이후 인터뷰 등 약 11시간 동안 여동생을 만나고 나눴던 이야기를 종합한 것이다.

검찰의 기소사실과 두 차례의 법정진술을 통해 여동생은 지난해 10월 30일 합신센터에 들어온 이후부터 26일 법정에서까지 일관되게 오빠의 간첩행위를 인정해왔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그것도 1박 2일만에?

   
▲ 지난 4월 27일 오전, 유씨 여동생의 기자회견 장소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의실 모습. 사진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하는 결정적 증거 중 하나인 지난 설에 유씨 가족이 중국에서 찍은 사진이다. ⓒ유코리아뉴스

26일, 원래 오후 2시로 예정됐던 여동생에 대한 인신구제청구 재판은 판사의 사정으로 1시간이 지난 뒤 비공개로 서울중앙지방법원 408호실에서 열렸다. 여동생에 대한 인신구제청구는 피고 유씨의 요청으로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소속 황필규, 염형국 변호사가 지난 4월 12일 제출했다. 합신센터가 유씨의 여동생을 6개월간 변호인 접견 없이 장기 구금 상태에서 강제수사를 한 점, 탈북자가 아닌 화교를 탈북자 신문시설인 합신센터에서 보호하며 조사한 점 등을 들어 “유씨의 여동생을 위법하게 수용하고 있는 만큼 즉시 수용을 해제해야 한다”며 청구 소를 제기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날 재판정에 출석한 유씨의 여동생은 강제 구금 사실을 부인했다. 본인의 의사에 따라 합신센터에 있었다는 것이다. 변호인 측에서는 강제 구금 사실을 부각시켜 인권보호 차원에서 이 사건을 접근하려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유씨의 여동생이 탈북자가 아니고 화교인 점, 본인의 의사에 따른 자발적인 합신센터 수용인 점 등을 들어 재판 자체를 거부했다. 여동생이 외국인인 만큼 재판의 대상이 안된다고 본 것이다. 그에 앞서 국정원은 여동생의 합신센터 체류기한인 6개월을 3일 앞둔 지난 4월 24일 여동생에 대해 ‘비보호’ 결정을 내렸다. 더 이상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대신 출국 시한을 5월 23일로 못박았다.

변호인단은 중국인 신분인 여동생이 외국인 보호시설로 갈 것으로 재판 결과를 예상했다. 그렇게 되면 변호인 접견이 가능하기 때문에 충분히 여동생을 만나 설득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반면 국정원 측은 외국인 보호시설이 아닌 합신센터나 국정원 산하의 시설에서 여동생을 보호하려는 계산이었다. 그렇게 되면 변호인 접견을 막으면서 지금까지 여동생의 진술을 이어가게 되고 재판에서도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재판 결과는 변호인단도, 국정원 측도 적잖이 당황하게 만들었다. 판사는 “본인 의사대로 아무데나 갈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고, 변호인단은 여동생이 당연히 합신센터가 아닌 변호인단과 함께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국정원 측은 그럴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판사가 퇴정한 법정에서 양측은 1시간 반 가까이 여동생을 가운데 놓고 대립하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 시간 동안 변호인과 국정원 수사관이 번갈아 여동생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여동생은 중국의 아버지와 가족, 한국의 지인과 전화통화를 한 뒤 변호인단과 함께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단서를 달았다. 이날 하루만 변호인단과 함께하고 다음날 합신센터로 다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합신센터는 탈북자 보호, 조사기관인 만큼 탈북자가 아닌 여동생은 더 이상 합신센터에 갈 수 없다는 게 변호인 측의 설명이었고, 이것을 국정원 측도, 여동생도 받아들였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렇게 민변 사무실에 도착한 여동생은 한동안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변호인들의 질문에도 잘 응하지 않았다. 저녁식사도 죽 한 그릇을 시켜놓고 제대로 먹지 못했을 정도니까. 바깥에서 조금만 떠드는 소리가 들려도 "국정원에서 체포하러 온 것 아니냐"며 극도의 공포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저녁 9시 40분쯤 서울에 거주하는 지인이 방문하자 분위기가 반전됐다. 두 집안은 중국에서부터 알고지내던 사이로 피고 유씨가 간첩이 아니라는 걸 지인은 누구보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사무실 입구에서부터 부둥켜안은 채 엉엉 소리 내 한참을 울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지인은 여동생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그게(너의 진술서가) 사실이니? OO이가 간첩이야?” 고개를 푹 숙인 채 울기만 하던 여동생이 입을 열었다. “아니다.” 그러자 지인은 “아닌 걸 알면서 왜 그렇게 진술했니? 네 진술 때문에 OO이가 잡혀간 것 아니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네 진술 때문에 피해를 당해야 하니?” “오빠가 북한에 안갔다고 답변했는데 수사관들이 자꾸 증인을 내세우면서 ‘그렇게 했다’고 하니까….”

지인이 다시 캐물었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지. OO이가 어머니 장례식 외에 북한에 갔다온 적 있니 없니?” 여동생은 대답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 지인이 “그런데 왜 그렇게 진술했니?”라고 물었고, 여동생은 “내가 ‘그렇게’ 진술하면 오빠가 1~2년만 (감방에) 살게 해주겠다고 해서….”

이처럼 여동생 본인이 회유에 의해 거짓 진술을 했다는 걸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기자회견을 하기로 마음까지 먹게 된 것이다.

여동생이 합신센터에서 오빠가 간첩이라고 진술한 건 강압에 의한 것도 있지만 형(刑)을 줄여주겠다는 수사관들의 회유, 그리고 오빠에 대한 동정 등이 모두 작용했다.

지난해 11월 중순에서 11월 말경. 그러니까 여동생이 합신센터에 들어온 지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지나는 시점이었다. 수사관들이 여동생이 쓴 진술서를 보며 자꾸 “진술이 안맞는다”고 할 때였다. 여동생은 그때 심리적으로 극도의 불안한 상태였다. 오빠가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 오빠의 진술서, 목격자들의 진술을 들이대며 ‘오빠가 간첩이 맞다’고 했기 때문이다. 혼란과 번민의 시간이 계속되면서 여동생은 결국 자살을 결심했다. 오빠나 가족들한테 너무나 미안하고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탁상용 시계를 깨뜨리는 게 CCTV에 발각돼 결국 자살은 미수로 그치고 만다.

그리고 여동생은 자신의 진술이 외부 접견 없이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했던 것임을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여동생은 “처음엔 내가 진술을 몇 번이나 번복했었다. 계속 ‘거짓말인데’라고 말했다가 수사관들이 다시 ‘맞다’고 하고 내가 ‘아니다’고 하면서 너무 복잡해지니까 수사관들이 다시 ‘그때 본 사람이 있다’고 하니까 내가 ‘그게 맞나?’라고 해서 ‘맞다’가 되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진술을 자꾸 번복하다보니 나중엔 갔다온 걸로 되었다”고 밝혔다.

수사관들은 KAL기 폭파사건의 주범 김현희 이야기를 하면서 “협조하면 잘 살게 해주겠다”고 여동생을 회유하기도 했다. “조사하면서 ‘간첩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고지를 받았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여동생은 “간첩죄인데 잘못을 반성하면 나라에서 보살펴주고 죽을 것(사형)도 안죽게 한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김현희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면서 ‘협조하면 잘살게 해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여동생은 “강압적으로 할 때도 있었지만 위로를 해줘서 (진술서대로) 따라간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일찍 여읜 어머니 대신 자신을 잘 보살펴왔던 오빠에 대해 여동생의 마음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여동생이 오빠의 모습을 처음 본 건 합신센터에 온 지 넉 달이 지난 3월 4일 법정에서다. 합신센터에서 했던 여동생의 진술을 유일한 법적 증거로 채택하기 위한 검찰의 증거보전절차 심리 때문에 법정에서 만난 오빠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합신센터에서는 “오빠를 만나고 싶다”고 해도 “잘 있다”는 말만 들었는데 죄수복을 입고 까칠한 모습에 수갑까지 채인 오빠를 보니 가슴이 미어졌던 것이다. 여동생은 “오빠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아팠다.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여동생에겐 그저 오빠를 위한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오빠가 교도소에 가면 누가 도와주겠나 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진술했다. 그렇게 진술하면 오빠랑 같이 살 수 있겠다, 그 생각만 했다. 오빠를 도와주고 싶고 오빠랑 같이 살고 싶었다. 오빠가 지금은 힘들어도 앞으로 잘 될 거니까, 이것만 생각했다.” 거짓 진술을 한 것도 오빠를 위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회유에 의한 거짓진술의 증거는 명백한 것으로 보인다. 오빠가 간첩임을 스스로 인정했다는 진술서에 대해 유씨의 공동변호인단인 양승봉 변호사는 “다행히 오빠는 한번도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할까 말까 고민도 했는데 그렇게 되면 지난 10년간 남한에 적응하면서 쌓은 모든 게 뒤집어지기에, 그동안 사람들에게 잘 대해줬던 게 결국 간첩행위를 위한 거였다고 여길 걸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유씨에 대한 공소사실 중 가장 큰 혐의는 탈북자 리스트를 북한 보위부에 넘겼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1월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탈북자 1만명 리스트 북한에 넘긴 정황”이란 D일보의 1면 보도로 유씨 사건은 일파만파 번졌고, 그때부터 언론들은 유씨가 간첩임을 기정사실화해서 보도했다.

공소사실에는 이 파일을 유씨가 메신저를 통해 중국의 여동생에게 넘겼고 여동생은 그것을 USB에 담아 회령의 보위부 요원들에게 건넸다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해 여동생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오빠한테 리스트를 받은 적이 없다”며 공사사실을 정면 반박했다. “그렇다면 왜 오빠한테 파일을 받았다고 진술했느냐?”는 질문에 여동생은 “그렇게 하면 일이 다 잘되고 오빠랑도 잘 살게 해주겠다는 수사관들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만일 공소사실대로 여동생이 오빠로부터 탈북자 명단이 든 파일을 받아 북한 보위부에 넘겼다면 여동생 역시 간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본인도 간첩이 되는 건데 무섭지 않았나?”란 질문에 여동생은 “많이 놀라고 무서웠다. 오빠가 한국에서 열심히 살아서 공무원까지 되었는데 나 때문에 오빠의 공든 탑이 다 허물어지는 걸 볼 수가 없어서 오빠가 유리하게 될 것만 상상했다. 내가 이렇게 진술해서 오빠가 어떻게 되었다는 걸 어제(26일)서야 비로소 알았다. 국정원에서 자꾸 주입 주고 하니까 그렇게 믿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변호인 접견을 거절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사관들로부터 '그러면 더 복잡해진다'는 말과 함께 그렇게 되면 돈을 많이 써야 하는 현실도 부담이 됐다는 게 여동생의 고백이다.

기자회견을 마친 여동생의 표정은 한결 밝아보였다. 웃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기자들이 다 나가고 난 뒤 물었다. “앞으로 만약 국정원 수사관들 앞에 다시 설 경우에도 지금처럼 당당하게 답변할 수 있겠나?” 여동생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사실은 사실이니까요. 옳은 길로 가야죠. 바른 길로 가야죠.”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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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자 2013-05-02 13:57:35

    유씨가 화교인 것은 두번째 문제고 본질은 생사람을 간첩으로 내몰았다는거죠. 우선 그것부터 유무죄를 따진 다음에 책임소재를 가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 다음에 유씨가 화교신분으로 속이고 어쩌고 한 것에 대한 평가가 나와야겠죠.   삭제

    • ㅁㅁㅁ 2013-05-01 16:37:03

      중국인신분으로 탈북자행세했으니까.. 먹튀안되게 정착금및 대학등록금등 비용들어간건 갚고
      보내야겠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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