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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고통스러운 노력이 있었는가[가나안묵상] 빈센트 반 고흐가 하나님을 사랑했던 방식

 

“하나님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다.”

고흐는 그렇게 말했지요.
살아 있는 동안 그는 고통 속에서 자기 귀를 자르기도 했고 나중에는 광신자처럼 삶을 마감하였다, 고 고흐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흐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연구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거룩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라는 부제를 단 <하느님의 구두>를 쓴 클리프 에드워즈는 고흐가 얼마나 삶을 사랑했는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자기 철학이 얼마나 뚜렷한 인간인지를 잘 말해줍니다.

그러고 보면 고흐는 자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얼마나 절절하게 평화하려고 애썼는지, 그래서 자기 마음을 베풀었고, 아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나 자신과의 평화는 물론이고,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의 평화 또한 이렇게 노력하여 길어 올릴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애쓴 흔적일까요? 고흐의 그림과 그가 남긴 글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서 더욱 빛이 납니다. 우리에게는 그야말로 ‘상처입은 치유자’로 다가옵니다.

고흐의 친구가 고흐에게 묻지요. 삶의 신조가 무엇이냐고. 고흐가 이렇게 답합니다.
“침묵하고 싶지만 꼭 말을 해야 한다면 이런 걸세.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산다는 것. 곧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불꽃처럼 일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하게, 쓸모 있게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 것.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아이에게 빵 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 받는 사람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는 것이라네.”

고흐의 작품 가운데 유난히 구두를 그린 작품이 흔하지요. 고흐의 작품 속 구두에서 무엇을 느끼세요? 저는 고흐라는 한 인간이 자기 자신과, 또 하나님과, 또 주변 사람들과 평화하기 위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살았는지를 느낍니다.

   
▲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A Pair of Shoes”(1885년 작품, 암스테르담 반고흐박물관 소장)

전쟁의 소문이 무성합니다. 그만큼 평화를 향한 고통스러운 노력이 적었다는 뜻입니다. 평화 대신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애쓰며 살았을까요? 그것이 곧 우리의 불신일 것입니다. 

 

 

박명철  aim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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