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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청소년들이여, 꿈을 가지십시오...필리핀에서”올 가을 마닐라에서 탈북 청소년 대상 ‘쥬빌리 아카데미’ 개설하는 정진효 선교사

지금까지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국내 대안학교는 있었지만 해외 학교는 없었다.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해외 학교 말이다. 감히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었을 것 같다. 국내 탈북 대안학교도 재정이나 학생 모집에 힘이 부친 상황인데 해외 학교라니 언감생심이다. 필리핀 정진효(42) 선교사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탈북자를 대상으로 3개월간 역사의식, 영어, 신앙, 리더십을 집중 강의할 겁니다. 역사의식을 앞세운 것은 역사의식 없이는 통일을 말할 수도, 이룰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탈북자들을 교육시켜 통일한국을 대비해야죠.”

   
▲ 올 가을 필리핀 마닐라에서 탈북청소년 대상 '쥬빌리 아카데미'를 여는 정진효 선교사. ⓒ유코리아뉴스

학교를 짓겠다는 게 아니다. 이미 필리핀 마날라에 건물은 확보돼 있다. ‘이끌라’라는 기존 국제학교를 한국 선교사가 운영하고 있는데 그 안에 ‘쥬빌리 아카데미’(Jubilee Academy)라는 탈북자들을 위한 과정을 개설하는 것이다. 이끌라를 운영하는 선교사는 알고보니 정 선교사의 신학대학원 선배였다. 여기엔 교회와 단체간 연합사역을 해오고 있는 어깨동무사역원 대표 이승종 목사의 방문이 큰 기여를 했다. 이 목사는 해외 한인들을 위한 국제대학을 꿈꾸던 차에 최근 이끌라를 찾게 된 것이다. 이끌라는 ‘쥬빌리 아카데미’를 시작으로 중장기적으로 국제대학으로 발돋움시킨다는 게 이 목사, 정 선교사 등의 구상이다.

아카데미를 3개월로 정한 건 국내 탈북자들의 형편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은 3개월 이상 해외 체류를 할 경우 정부로부터 각종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따라서 ‘쥬빌리 아카데미’의 모든 커리큘럼은 3개월이라는 단기코스로 진행된다. 오전 내내 현지인 멘토로부터 집중 영어 수업을 받고, 오후엔 역사와 성경에 대해, 그리고 저녁식사 후엔 자유공부 시간이지만 멘토가 곁에서 탈북자의 공부를 지도한다. 마지막 2주 정도는 인근 동남아 국가 여행을 간다. 정 선교사가 특히 주목하는 나라는 태국이다.

“탈북자들은 대부분 태국을 거쳐서 한국에 들어옵니다. 그런데 태국에 머물면서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한국에 괜히 가는 것은 아닌지, 다시 중국이나 북한으로 돌아가야 할지를 심각하게 생각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안좋은 추억을 가진 태국에 직접 데려가서 그들에게 꿈과 희망, 치유를 경험케 하기 위한 거죠.”

정 선교사에 따르면 필리핀의 친구 목사가 이미 국내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한꿈학교와 연계해 지난 8년간 비슷한 교육을 해왔다. 하지만 목회에 선교, 거기다 학교일까지 병행하다 보니 친구 목사도 많이 지친 상태다. 정 선교사도 두 명의 탈북 학생들을 3개월간 데리고 산 적이 있다. 그러면서 교육에 대한 확신이 굳어졌다.

정 선교사가 이번에 방한한 것도 올 가을부터 시작하는 ‘쥬빌리 아카데미’가 한국의 정식 교육과정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를 학교측과 상의하기 위해서다. 필리핀에서는 ‘쥬빌리 아카데미’를 사립학교의 정식 교과과정으로 승인해준다는 게 정 선교사의 설명이다. 탈북학생 모집을 위해 국내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인 한꿈학교를 비롯해 여명학교, 우리들학교 등도 방문할 예정이다.

“학생 선발은 우리가 하지 않고 대안학교에 일임하려고 합니다. 학교에서 추천된 학생만 받겠다는 거죠. 올 7월 여름방학 때 일반 학생 대상 영어캠프를 하고, 탈북청소년 대상으로는 별도로 한 달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 뒤 가을에 쥬빌리 아카데미 학생으로 정식 선발할 예정입니다.”

쥬빌리 아카데미의 목표는 분명하다. 통일한국의 탈북 일꾼들을 양성하는 것이다. “탈북 청소년들의 경우 한국에 있으면 제대로 정착을 못하고 떠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에도 많이 가지만 제대로 졸업도 못하고 졸업 후에도 빈둥거리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그런데 필리핀에 와보니 꿈을 찾게 됩니다. 같이 살던 학생 한 명은 필리핀에 와서 요리사의 꿈을 갖게 되었어요. 통일되면 북한에서 호텔 요리사로 일하고 싶어합니다.”

   
▲ "필리피노-탈북자-남한 사람이 한팀이 되어 통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감히 꿀 수 없던 꿈을 필리핀에서 꿀 수 있는 것, 이유가 뭘까. 남한의 탈북 청소년은 끊임없이 자신과 남한 청소년을 비교한다. 아니 비교 대상이 된다. 말 때문이기도 하고, 외모 때문이기도 하다. 정부 보조금이 적다보니 기본적인 생활도 쉽지 않다. 한국에서 살지만 한국을 무서워하고, 그렇다보니 탈북자들끼리 몰려다닌다. 남한에서 또 다른 북한을 이루고 사는 것, 그것이 남한 탈북 청소년들의 현주소다. 그런데 이런 탈북 청소년이 필리핀에 가면 어떻게 바뀔까.

“탈북청소년이 필리핀에 오면 제일 먼저 바기오지역 투어를 시키는데 첫마디가 ‘필리핀 아이들은 키가 작아서 너무 좋다’는 겁니다. 키가 작은 데서 탈북자들은 동질감을 느끼는 겁니다. 사실 필리핀 사람한테는 남한 사람, 탈북자 구분이 없습니다. 다 외국인인 거죠. 옷도 남한에서는 허접해 보이는데 필리핀에 오면 빛이 납니다. 핸드폰도 남한에 있을 때는 구닥다리였는데 필리핀에 가져오면 최신식이 됩니다. 그러면서 남한에서 경험하지 못한 자존감을 경험합니다. 남한에서 맛보지 못한 마음의 위안을 필리핀에서 맛보는 거죠.”

영어로 인한 자존감 회복도 마찬가지다. 필리핀은 세계에서 가장 영어를 많이 쓰는 나라로는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 그만큼 영어가 일상화되어 있다. 탈북청소년들에겐 학교에서 배운 걸 곧바로 일상에서 써먹기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영어를 잘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자존감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거기다 커리큘럼으로 잡혀 있는 성경공부 시간을 통해서는 도망쳐나온 북한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회복된다. 해야 할 일, 즉 사명이 생기기 때문이다. 신앙의 힘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 선교사가 미국 엘에이(LA)의 한 조그만 교회에서 교육 담당을 하다가 필리핀 선교를, 그것도 탈북자 사역을 결정하게 된 건 젊은 날 헌신 때문이다. 정 선교사는 신학교 1학년이던 1989년 김창인 목사, 유관지 목사 등의 영향을 받고 ‘북한 선교’를 평생의 사명으로 간직한다. 하지만 ‘담임목사’ ‘선교사’는 절대 안된다며 반대했던 아내 때문에 뜻을 펼치지 못하다가 나이 마흔이 넘은 지난해 친구인 아세아연합신학대 전병철 교수의 ‘미국을 버리면 전세계를 얻는다’는 조언에 힘입어 미국을 떠나 필리핀에서 탈북자 선교를 시작했다. 그의 인생의 BC와 AD가 나뉘는 순간이었다.

“지금 필리핀 사람들(필리피노) 중에도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통일을 위해 필리피노-탈북자-남한 사람을 한데 묶어서 북한에 들여보내는 게 우리 학교의 목표입니다. 이들을 통해 통일 후 북한에 국제적인 학교들이 세워질 걸 생각하면 잠이 안와요.”

쥬빌리 아카데미 문의: nksk777@gmail.com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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