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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탈북자 비례대표 국회의원 나올 때 됐다"'국내 탈북자 1호 정치학 박사'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인터뷰

김정일 이후 북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안정, 장기적으로는 불안'일 것이란 게 남한 내 전문가들이나 탈북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국내 탈북자 1호 정치학박사'인 안찬일(57)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의 전망은 다르다. 단기적으로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북한이 안정화될 것이라는 것. 근거는 북한이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바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차기 리더인 김정은이 오랫동안 서방세계의 영향을 받은 점도 북한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다. 안 박사는 "나의 전망이 다소 엉뚱하게 비쳐질 수도 있지만 현실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안찬일 박사는 1979년 당시 특수부대요원으로서 임진강을 헤엄쳐 남한으로 귀순했다. ⓒ구윤성 기자


안 박사는 1979년 당시 특수부대요원으로서 임진강을 헤엄쳐 남한으로 귀순했다. 그때부터 고려대, 건국대에서 정치학 과정을 밟아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 전신)에서 10년 넘게 근무했다. 지금은 연구소 활동뿐만 아니라 세계북한인총연맹 총재로서 전세계 탈북자들을 조직화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건국대, 서강대 등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그는 귀순 직후를 회고하며 "이명박 대통령이 당시 현대건설 사장으로 있었다. 그때 그분(이 대통령)의 배려와 권유로 현대건설에서 일하면서 고려대를 다닐 수 있었다"고 밝혔다.

안 박사의 꿈은 1000명 정도의 탈북 청년들을 육성해 통일 이후 이들을 북한 각 지역으로 파견하는 것이다. 이들을 통해 북한 재건을 하겠다는 것이다. '북한판 새마을운동'인 셈이다.

안 박사는 "남한 내 20~30대 탈북자들을 북한체제의 대안세력으로 키워야 한다"며 "김일성이 북한 초기 러시아 교사 등 450명을 데려다가 북한을 재건한 것처럼 이들에게 북한재건교육만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통일전문대학원대학교가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제는 탈북자 중에서도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나올 때가 됐다.' 탈북자들 모임에서 종종 흘러나오는 얘기다. 안 박사도 이에 공감한다. 남한 헌법이 이북5도를 다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상 적어도 5명의 비례대표 자리는 탈북자에게 줘야 한다는 게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자세라는 주장이다.

그는 현재 사랑의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은 부인의 권유에 따른 것이다. 그가 탈북자들을 만날 때마다 빼먹지 않고 권유하는 것은 '신앙을 가지라'는 말이다. 안 박사는 "탈북자들에겐 조상(정신적 지주)이 없다. 조상이 없으면 하나의 개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신앙은 하나의 조상 역할을 수행하기에 너무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박사와의 인터뷰는 최근 서울시내의 한 카페에서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김정일의 죽음 보면서 뭘 느꼈나?

   
▲ "나로서는 김정일의 죽음을 마음속으로 반길 수밖에 없다. 이제야말로 북한 동포들이 해방감을 맞게 돼 감사하다." ⓒ구윤성 기자
내가 1979년 남한으로 넘어오게 된 동기는 북한에 김정일이 들어서는 걸 보면서다. 난 그걸 북한 사회주의의 내리막길로 해석했다. 만약 북한에 김정일 세습이 안되었으면 넘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넘어온 지 이틀만에 아버지와 동생들이 요덕수용소에서 굶어죽고 맞아죽었다. 나로서는 김정일의 죽음을 마음속으로 반길 수밖에 없다. 이제야말로 북한 동포들이 해방감을 맞게 돼 감사하다.

-김정은 체제는 어떻게 보나?
난 김정은 체제를 낙관적으로 본다. 우선 북한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저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당대회 이후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자신이 있어서 변화하는 게 아니라 사회주의가 저점을 쳤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김정은이가 서방에서 교육과정을 받은 것도 긍정적인 요소다. 물론 부정적인 요소도 없지 않다. 어린 나이에 군부를 다독거리면서 체제를 안정시킬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군의 사단장급 간부 몇 명이 해고돼 사회로 방출되기도 했다. 이들이 불안요소다. 사단장들이 있다. 북한이 장마당 등을 통해 시장개념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 신호다.

-시장 확대는 북한의 체제위기로 연결될 수도 있는데?
시장 확대는 사회주의가 저점을 쳤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북한에 핸드폰 가진 사람이 100만명이라고 한다. 이집트 오라콤의 네트워크 구축을 허용한 결과다. 북한의 전화비는 매월 1달러로 북한돈 약 4000원에 해당한다. 쌀 1kg 값이다. 그런 사람들이 100만명이 된다는 것이다. 북한이 다 굶주린다고 하지만 상인계층이 생기면서 삶의 기반이 잡혀간다고 볼 수 있다. 그게 모두 장마당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을 통해 북한의 개혁, 개방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김정은이가 올해 당장 이런 개혁, 개방을 추진하지는 못할 것이다. 약간 추상적인 것 같지만 난 지금 북한 상황이 해방직후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때 북한의 문맹률이 90%였다. 지금 북한의 컴맹률이 90%다. 그때 김일성이가 등장해 북한을 재건했다. 지금은 외모가 비슷한 김정은이가 그 역할을 하기 위해 등장했다. 북한에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북한의 장래를 긍정적으로 보는가?

북한은 2010년 말까지 스스로 '일제 말 때보다 못하다'고 했었다. 사회주의체제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출발을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대학에서 15년째 북한을 가르치고 있다. 조금 엉뚱하지만 현실에 부합하는 것이다.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계신데 어떤 곳인가?
난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연구교수로 머물렀다. 1999년부터는 콜럼비아대에서 1년간 교환교수로 있었다. 거기서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들로부터 '왜 탈북자들을 왜 통일의 대안세력으로 만들지 않느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2010년 5월 귀국하자마자 연구센터를 만들었다. 미국, 호주, 러시아 등 전세계 학자들을 네트워킹해 북한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 센터에서는 북한의 체제전환을 이미 예고했고, 탈북 청년 1000명 통일인재육성방안도 연구해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해부터 통일지도자아카데미를 열고 있다. 두 차례 걸쳐 약 100여명이 강의도 듣고 워크숍도 하고, 베트남, 태국 등에 다녀왔다. 베트남이 시장을 개방한 것도 결국 외부에 나가서 공부한 사람들을 통해서였다. 베트남 보트피플이 나갔다 돌아와서 시장 경제 건설에 앞장섰다. 베트남 같은 분단국가에 가서 자연스럽게 '앞으로 어떻게 북한을 재건할 것인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1979년 남한으로 귀순할 때 동기가 체제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존을 위해서 탈북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탈북현상을 어떻게 보나?
난 북한서 노동당원, 특수부대 요원을 했다. 북한을 떠난 지 60분만에 임진강을 헤엄쳐 넘어왔다. 요즘은 탈북해서 남한에 오려면 60시간에서 6년까지 걸린다.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들의 트라우마와 나의 트라우마는 똑같다고 생각한다. 돌아가 북한을 대한민국처럼 만들 사람들이다. 난 남한의 탈북자가 5만~10만명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북한 재건 인재도 되고 체제 압박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이들 중에서 1000명의 대학생들을 북한의 체제대안세력, 사회통합세력, 시장경제구축세력으로 키우는 것이다. 이들이 남한에서 공부한 뒤 통일 이후 북한의 한 개 시나 군을 남한처럼 만들라고 하면 남한의 어떤 엘리트보다 훨씬 잘할 것이다. 북한과 혈연 지연 학연이 있는 자들이 훨씬 리더십을 더 잘 발휘할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북한 재건도 새마을운동 같은 패러다임으로 어프로치 시킬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국내 정치학박사 1호 탈북자’로 알려져 있다. 정치에 관심이 많았나?
북한에 있을 때 아버지가 노동당 간부였다. 어릴 적부터 안중근, 안창호처럼 되라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 그때는 군대에 가면 대학에 안갈 수 있었다. 난 대학보다 군대 가서 이름 날리는 게 더 좋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내가 대학 가길 원하셔서 신의주농업대학엘 보냈다. 난 몰래 전문대로 옮겨서 군대엘 입대했다. 대학 다니는 걸 그렇게 싫었는데 남한에 여와서 14년간 대학에 다녔다. 처음 남한에 왔을 때 정부에서 '뭐하고 싶으냐'고 묻길래 운전수 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탈북자가 가고 싶다는 직장은 다 보내줬다. 당시는 탈북자가 1년에 한명 정도 왔으니까. 그 당시 현대건설 건물이 광화문에 있었다. 사장이 현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호리호리했는데 날 보더니 '앞으로 뭐 할거냐'고 물었다. 그래도 대학을 가야 하니까 고려대를 가라고 해서 그날로 지원했더니 합격이 됐다. 현대건설의 배려로 직장에는 자주 못가면서도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몇 개월 전 통일연구원장에 지원했다고 안된 걸로 알고 있는데?
우리 사회가 아직 탈북자에게 그렇게 넉넉하지 않는 것 같다. 내 바람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야망 때문이 아니다. 우리 헌법에 따르면 북한은 우리 영토이고 주권이 미치는 공간이다. 이북 5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탈북자 대상 비례대표 의원은 최소 5명은 되어야 한다. 그게 헌법에 합치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북한을 방치하는 것은 헌법을 외면하는 것이다. 북한의 의원은 627명인데 우리는 고작 299명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숫자 대폭 늘려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들으면 콧방귀 끼겠지만 통일시대를 대비한다면 심각하게 귀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탈북자가 어떻게 남북통일에 기여할 수 있을까?
탈북자 중 20~30대 청년들은 남한 내에서 충분히 실무 경험을 쌓으면서도 북한을 재건하겠다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 남한 정부도 관심 가져야 한다. 20~30대를 북한체제의 대안세력으로 키우는 일에 관심과 투자를 해야 한다. 김일성이 북한을 만들 당시 러시아 교사 등 450명을 데려다가 활용했다. 지금 탈북자 1000여명이 대학교육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이들을 북한의 한 개 시군에 수십명씩 배치할 수 있다. 북한은 앞으로 3년, 길게 봐도 5년이면 급변할 거라고 본다. 북한재건을 위한 실제적이 준비를 해야 한다. 남한엔 북한대학원대학교가 있다. 남한의 안보 전문가 키우는 게 목적이다. 이거 말고 통일전문대학원대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허가해 탈북자들의 학비를 지원해준다면 북한재건 교육만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가능하다. 남한 대학 공부는 물론 필요하긴 하지만 북한재건 교육이 훨씬 더 탈북자와 통일을 위해서도 효과적일 거라고 본다. 그다지 비용도 많이 들지 않을 것이다.

-남한의 탈북자들이 '탈북자'라는 꼬리표를 떼는 것에 대해 찬반이 엇갈리는 것 같다. 어떤 입장인가?

   
▲ "내가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이들 중에서 1000명의 대학생들을 북한의 체제대안세력, 사회통합세력, 시장경제구축세력으로 키우는 것이다." ⓒ구윤성 기자
'탈북자' 꼬리표는 당연히 떼야 한다. 여학생의 경우, 탈북자라고 하면 연애하던 총각도 떠나버린다. 인식이 너무 안좋다. 다문화가족보다 더 못하다. 물론 탈북자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그래서 내가 늘 탈북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예절 잘 지키고, 거짓말하지 말고, 성실하게 일하라는 것이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 전체주의 교육을 받다보니 비판적이고 돌출적이 될 수밖에 없다. 일차적으로는 탈북자 스스로 남한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런 다음엔 굳이 탈북자라는 걸 숨길 필요는 없다고 본다. 탈북자가 남북통일을 위해 당당히 일하겠다고 하면 남한 사람도 인정하게 될 것이다.

-탈북자에게 신앙이 왜 중요한가?
탈북자에겐 조상이 없다. 조상이 없으면 하나의 개체로 전락한다. 신앙은 조상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의지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연, 혈연이 없는 우리(탈북자)에게 신앙은 중요한 가족이자 혈연, 지연이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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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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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6-09-27 14:43:01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을 도와준게 바로 전과14범짜리 쥐명박이었다니....!!!!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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